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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팬데믹 거친 ‘걷기’, 그 의미의 시적·개인적 변화 ‘StepXStep’

[Culture Board] 코리아나미술관 기획전 'StepXStep'

입력 2023-09-13 18:00 | 신문게재 2023-09-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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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 ‘StepxStep’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실내 운동이 어려워지면서 ‘걷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그 의미도 달라졌어요. 걷기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행위지만 그것을 예술가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어떻게 읽혀질지,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 행위가 얼마나 다양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흥미로웠어요.”

‘신체’를 테마로 하는 코리아나미술관이 진행하는 국제기획전 ‘Step X Step’(9월 14~11월 30일 코리아나미술관)은 서지은 책임 큐레이터의 설명처럼 ‘걷기’에 대한 새로운 의미 찾기 여정이다. 2003년 문을 연 코리아나미술관은 판매가 아닌 모기업인 코리아나화장품의 기업 철학과 정체성을 담기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는다. 

그 20주년을 기념하는 ‘Step X Step’에는 60년대부터 ‘보행예술’이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예술가들의 주제가 되는 ‘걷기’에 대해 인문학적 해석이나 철학적 메시지를 담기 보다는 ‘신체’에 초점을 맞춰 은유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서 큐레이터의 표현처럼 ‘걷기’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의 행위지만 한 걸음 나아간다는 의미”이며 “굉장히 많은 훈련을 통해 체득된 행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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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StepxStep’ 중 브루스 나우만의 ‘과장된 태도로 정사각형 둘레를 걷기’(왼쪽)와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걷기’(사진=허미선 기자)

 

이번 전시에는 타임지가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한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미디어 아티스트이기도 한 차이밍량,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듀오 폴린 부드리와 레나테 로렌츠, 미국의 에브리 오션 휴즈, 스웨덴 출신의 클라라 리덴 그리고 한국작가 강서경과 신제현 등 걷기를 안무적 몸짓, 사회적 행위에 빗대 해석한 현대미술가 7팀의 작품 15점이 전시된다.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이 더 잘 드러나도록 S자로 걷기를 반복하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걷기’(1968)와 ‘과장된 태도로 정사각형 둘레를 걷기’(1967~1968) 등 속 ‘콘트라포스토’(신체에 율동감과 곡선미를 주기 위한 S자형 자세)는 거장 브루스 나우만이 2021년 베니스비엔날레 개인전까지도 지속해온 탐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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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StepxStep’ 중 차이밍량의 ‘행자’(사진=허미선 기자)

 

1994년 ‘애정만세’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차이밍량의 ‘행자’(2012)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홍콩 침사추이 거리를 느리게 걷는 수도승의 모습을 담은 26분짜리 영상작품이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 요우쿠를 통해 만들어진 연작으로 홍콩을 비롯해 타이페이 등 9편이 제작됐다.

스웨덴 스톡홀롬 소재의 세르겔 광장을 평범하게 걷는 듯 보이지만 바닥에 누워 걷기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주한 에브리 오션 휴즈의 ‘감각과 지각’(2010)은 사람들의 모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광장이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공간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따른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반복하며 맨하탄의 위험한 지역들을 걷는 클라라 리덴의 ‘진보의 신화’(2006)과 ‘그라운딩’(2018)도 만날 수 있다. ‘그라운딩’은 월 스트리트가 있는 글로벌 금융 중심지이자 자유의 여신상, 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태리 그리고 비극적인 참사 9.11 테러가 있었던 뉴욕의 로어 맨하튼(Lower Manhattan)을 배경으로 걷는 행위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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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StepxStep’ 중 클라라 리덴의 '그라운딩'(사진=허미선 기자)

 

영국 트립합 밴드 매시브 어택의 1991년 발표곡 ‘미완성의 감정’(Unfinished Sympathy) 뮤직비디오에서 영감 받은 ‘그라운딩’은 걷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통해 많은 것들을 만나고 때론 넘어져 좌절하지만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을 은유한 작품이다. 

불안하거나 불안정한 상태일 때 인간은 현실을 인식하고 접촉함으로서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한다는 심리학 용어 ‘그라운딩’(접지기법)에서 제목을 딴 작품으로 땅과의 접촉과 일어서기의 반복을 통해 자본의 거대한 힘 앞에서 연약할 수밖에 없지만 어떤 행위든 계속해 나가야 하는 개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2021년부터 조선시대의 유랑악보 ‘정간보’를 바탕으로 홍콩에서 초등학생들과 진행한 워크숍을 린넨과 직물에 이미지로 구현한 강서경 작가의 ‘자리 검은 자리-동-cccktps’(2021~2022)과 신제현 작가의 커미션 작품 ‘MP3 댄스-스텝’(2023)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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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StepxStep’ 중 강서경의 ‘자리 검은 자리-동-cccktps’(사진=허미선 기자)

 

‘걷기’라는 주제에 맞게 작품의 배치 역시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Step X Step’의 마지막은 폴린 부드리와 레나테 로렌츠의 ‘거꾸로 걷기’(2019)가 장식한다. 5명 퍼포머의 몸짓을 통해 “우리는 과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눈 덮인 산에서 이동 방향을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신발을 거꾸로 신은 쿠르드족 게릴라 여성들의 행위를 비롯해 솔로무와 군무, 거꾸로 재생되는 듯한 사운드와 어색한 움직임 등을 통해 걷기의 모호함과 양면성을 각인시킨다. 영상 재생의 마지막은 화려한 조명과 음악 등으로 관람객들을 퍼포머로 끌어당기며 경계를 허물고 작품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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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StepxStep’ 중 폴린 부드리와 레나테 로렌츠의 ‘거꾸로 걷기’(사진=허미선 기자)

 

“말을 통해 100% 소통이 가능하지 않고 많은 오해가 생김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대화에 얼마나 무책임하게 신뢰를 가지고 있는지를 표현하는” 신제현 작가도 ‘MP3 댄스-스텝’을 통해 관람객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MP3 댄스-스텝’은 “신선이 구름을 밟듯 앞으로 걷기” “호랑이가 앞발을 들 듯” 등 춘앵무보의 시적·개인적 전승을 접하고 ‘굴절’에 주목한 신제현 작가의 신작이다. 그는 춘앵무, 발레, 검무, 태권도 등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퍼포머들에게 같은 지시어를 들려주지만 전혀 다른 행위와 걸음으로 실행되는 ‘굴절’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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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StepxStep’ 중 신제현의 ‘MP3 댄스-스텝’(사진=허미선 기자)

 

전문 포퍼머들의 영상이 흐르는 4개의 LED와 나란히 자리한 빈 화면은 관람객들의 체험을 위한 장치다. 포퍼머들과 같은 지시어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5번째 화면을 채우며 작품을 완성시킨다.

팬데믹 이후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와 가치가 변한 걷기에 대해 신제현 작가는 “단순한 무게 중심의 이동이었던 걷기는 개인을 나타내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춘앵무’가 시적·은유적 계승으로 시대와 개인에 발맞춘 것처럼”이라고 강조했다.

“환경적인 문제를 투여하고 있기도 하죠. 기름이나 에너지를 쓰는 교통수단을 되도록 덜 이용하려는 노력이랄까요. 개발도상 상태일 때는 차나 기차를 타고 빠르게 오가며 시간을 줄이는 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이동시간을 늘이는 대신 에너지를 줄이고 건강을 챙기는 시대죠, 그 가치관의 변화가 ‘걷기’에 담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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