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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간만에 '깔깔'거리며 본 영화 '싱글 인 서울'

'로맨스 명가' 명필름의 이름값 톡톡
트렌디하고 힙한 정서 스크린 한가득

입력 2023-12-0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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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인서울
파주 출판 도시를 배경으로 세트장이 아닌 실제 사무실을 대여해 찍은 것도 밝고 쾌적한 영화 속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무려 3년전 크랭크인 했지만 지금도 어딘가 있을 법한 인물군상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 ‘싱글 인 서울’속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저 영의정 신발도 가져가.”

한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체류중인 학생들 사이에서 ‘쏠쏠한 용돈벌이’로 불린 어그 부츠를 이렇게 야무지게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여대생 가족을 둔 한 남동생이 집 현관에 나뒹구는 같은 색 같은 모양의 어그부츠를 보고 ‘누나 친구들의 신발‘’이라고 이름붙인 ‘짤’을 기억한다면 영화 ‘싱글 인 서울’은 충분히 즐기면서 볼 작품이다.

극중 스타 논술강사이자 파워 인플루언서인 영호(이동욱)는 늘 여자에게 차인다. “오빤 너무 착해”,“자기가 사준 사진기는 두고 갈게”등이 단골멘트인걸 보면 호구에 가깝다.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연인에게 서두에 밝힌 대사를 하는걸 보면 퍼주는 스타일인 것만은 확실하다. 국문과 출신으로 한때 작가를 꿈꿨던 그는 아이들에게 ‘글 잘 쓰는 법’을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엔 서투른 남자다. 구구절절한 문장보다 사진 한 장과 짧은 문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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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글 인 서울’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각 도시의 싱글들의 삶을 책으로 엮으려는 편집장 현진(임수정)은 그런 영호를 대타 작가로 섭외한다. 사실은 거의 반 협박 수준으로 출판사 사장의 강력 추천이 있었다. 영호의 글은 군더더기 없지만 까탈스럽고, 자기애가 강한게 흠인데 그건 자신의 전공이기에 일단 책 출판을 결심한다. 다행히 바르셀로나에서 싱글로 살며 컨셉에 딱 맞는 수준급의 글을 보내오는 홍작가(이솜)의 팬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늘 책으로만 소통하는 홍작가는 한국에 고정 독자들이 많고, 그에 비해 영호의 글은 신선한 맛이 있어서 새롭고 재미있는 컨셉의 책이 나올것만 같다. 그런데 복병은 신인작가이자 알고보니 학교 선배인 영호다. 싱글 찬양은 봐주겠지만 편집장으로서의 의견이나 개인적 삶에 알게 모르게 선을 넘는다. ‘혼자여서’가 아니라 ‘혼자니까’를 구분짓고 자신의 차 안이 더러운거나 새 집을 알아보는데 여간 훈수를 두는게 아니다. ‘싱글 인 서울’은 그렇게 혼자가 좋은 남자와 혼자는 싫은 두 남녀의 ‘썸’을 통해 관객들의 심장을 저격한다.

결론만 말하면 이 영화는 마냥 설레이지만은 않는다. 적당히 현실적이고 또 그만큼 가슴 아프다. 동시에 공감과 희망으로 끝을 맺는데 한마디로 ‘진부하지 않은 뻔함’이 가득한다. 말이 쉽지 참 연출하기 어려운 장르가 로맨스인거니까. 무엇보다 일단 ‘첫사랑의 향수’를 주 전공삼아 늘 기대 이상의 수작을 내 놓는 명필름 작품이니 믿고 봐도 좋다.

‘싱글 인 서울’은 ‘접속’이후 무려 7편의 로맨스영화를 만든 명필름이 ‘건축학개론‘ 이후 11년 만에 내 놓은 말랑말랑한 작품이다. ‘접속’의 PC통신, ‘후아유’의 아바타 등 당대 트렌드를 힙하게 엮어온 경력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싱글인 서울
극중 세련된 미술과 조명은 이 영화를 보는 또다른 재미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접속’LP판을 특별제작해 슬그머니 배치한 명필름의 센스에 박수를.(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그간 45편의 영화를 내 놓은 명핌름의 심재명 대표는 “처음 회사를 만들면서 한국의 워킹 타이틀이 되어보자는 포부가 있었던것도 사실”이라면서 “앞에 소개된 영화 말고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광식이 동생 광태’,‘시라노; 연애조작단’까지 당시 트렌드를 적용해 동시대성을 담아내면서 보편적인 감정을 녹여낸 작품들을 내놨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싱글 인 서울’의 재미는 또 있다. 적당히 힙한 ‘전문직 남녀의 로맨스’ 속에 남녀 각자의 기억속에 각인된 첫사랑이 관객들에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영호는 대학생인 자신과 달리 직장인이었던 첫사랑에 대한 이기심만 기억했다면 정작 당사자는 철없고 징징대던 치기어린 남자로 당시를 추억한다. 그들 사이에는 두 권의 책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만화 ‘20세기 소년’‘은 둘 다 뛰어난 명작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전혀 다른 소설과 만화책이라는 점이 사랑은 해도 영원히 이해되기 힘든 ’남녀‘의 운명을 가늠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찰떡 호흡을 스크린에 가득 채운 임수정과 이동욱의 연기 외에도 장현성,김지영, 이미도,이상이,지이수등이 보여주는 ‘활어같은 연기’ 는 이 영화의 진정한 보석이다. 피와 살점이 튀는, 근 현대사의 비극을 굳이 스크린으로 보며 분노하는데 질렸다면 두말없이 ’싱글 인 서울‘이다. 누군가 옆에 있어도 외롭거나, 기꺼이 혼자이거나, 모태솔로여도 봐야 할 영화의 탄생이 유난히 반갑다. 103분.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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