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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1950년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 선물’

입력 2016-12-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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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이 지났다. 피비린내가 멈추나 했더니, 중공군이 쳐들어왔다. 전세는 삽시간에 역전됐고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결정했다. 그렇게 흥남부두 철수작전이 시작됐다.

병사 10만 5000명, 차 1만 7000대, 군수물자 35만톤, 그리고 피난민 20만명. 그 날, 흥남은 또 다른 전쟁터였습니다. 원래 군 병력만 철수시키는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기간 동안 피난민은 공산주의를 거부하며 유엔군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군은 이들을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국군 1군단장 김백일 소장과 미 제 10군단 민사부 현봉학 고문은 피난민도 함께 데려갈 것을 요청했고 여의치 않으면 국군이 걸어서 철수하겠다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모든 선박을 동원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하라. -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처참했습니다. 20만명의 피난민이 부두에 몰려있었지만 마지막 남은 배에는 고작 13자리만 남아있었습니다.

배에 있는 무기를 모두 버리고 빠짐없이 태워라. -레너드 라우 선장-

국군은 군수물자를 모두 버리고 60명 정원의 230배가 넘는 1만4000명을 배에 태웠습니다. 16시간에 걸쳐 눈에 보이는 사람을 모두 배에 태운 겁니다.

희망을 태운 배는 12월 23일 마침내 출항했습니다. 바로, 기적의 배라 불리는 ‘메러디스 빅토리 호’입니다. 항공유 수송선인 이 배는 모든 짐을 하역하고 흥남으로 와서 가장 마지막까지 머문 배였습니다.

추위와 공포, 굶주림 속에서 3일간 항해를 마친 빅토리호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마침내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습니다.

거제도에 도착한 다음날 흥남으로 중공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빅토리호에 오르지 못했다면 피난민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 겁니다. 모든 일이 기적이었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기적의 배”
한국 정부는 1955년 라루 선장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승무원 전원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004년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을까.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황량한 고난의 항해 속, 하늘의 손길이 내 뱃전을 인도하고 있었다”
-레너드 라우 선장-

크리스마스에 기적처럼 탈출한 1만4000명의 사람들, 희망이 그들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 아니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영화 ‘국제시장’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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