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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사람까지 죽인 무시무시한 ‘놀이’

입력 2017-01-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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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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湲덈궓濡쒖쓽 珥쏅텋<YONHAP NO-1870>


고구려전에 따르면 ‘해마다 연초에 대동강가로 모여 놀이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 놀이가 끝나면 왕은 의복을 물에 던졌고, 군중은 두 편으로 나뉘어 돌을 던지고 소리치며 서로를 쫓았습니다.

무슨 행사였을까요?

돌로 하는 전쟁이라는 뜻을 담은 ‘석전’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무서운 놀이입니다. 돌을 던져 맞추는 놀이라니….

석전 도중 사람이 죽는 사고는 비일비재했습니다. 물론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놀이는 아닙니다. 용맹스런 민족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민족고유의 집단놀이였는데요.

놀이를 통해 우환을 떨치고 한 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자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위험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민왕 23년에 석전을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성종실록에도 석전을 금지시켰다고 또 기록되어 있죠. 끈질기게 행해져 왔다는 겁니다.

석전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돌을 던지고 피하는 투석전과 몽둥이를 들고 싸우는 육박전으로 나뉩니다. 전쟁처럼 진법을 활용하기도 했죠.

한쪽이 항복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상대마을까지 쳐들어가기도 하고 며칠에 거쳐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의 기록을 보면 집단항쟁 수준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의 장정이 서로 짱돌을 던져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부러졌죠.

조선 태종 이방원은 병에 걸린 와중에도 석전 구경했습니다. 태조도 석전을 좋아했다고 전해지죠.

세종은 처음에는 지원하다 나중에는 금지시켰습니다. 양녕대군의 아들들이 석전에서 놀다 사람을 죽여서 귀양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워낙 위험하고 강력하다보니, 전쟁에 석전꾼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중종 초에는 최임이 왜구를 격퇴할 때 투입되었죠. 영조 시절에도 ‘석전 부대’로 기록되는 집단이 등장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여러 번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일제에 의해 근절되기 전까지 석전은 계속됐습니다.

오늘날, 군중이 석전을 즐겼던 이유를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권력자에 항의하는 민심의 표출구 역할이라는 거죠. 돌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 항거했다는 겁니다.

만약,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던 석전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면, 우리는 어딜 향해 돌을 던졌을까요?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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