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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고인 물'되지 않으려는 송강호 "관객에게 '이게 영화지'라는 반응, 자신있습니다"

[人더컬처] 영화 '거미집' 송강호
"약 20년 전 필름으로 영화 찍던 치열함과 욕망 되살려 낸 작품"
"정답인 연기하면 감동없어, 우리가 모르는 답 표현하는게 배우의 숙명"

입력 2023-09-25 18:30 | 신문게재 2023-09-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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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에게 ‘거미집’은 그간 ‘괴물’ ‘밀양’ ‘놈놈놈’ ‘박쥐’ ‘기생충’ ‘비상선언’ ‘브로커’에 이은 칸국제영화제 8번째 초청작이다.(사진제공=바른손이앤에이)

 

배우 송강호의 등장은 짧지만 강렬했다. 1997년 영화 ‘넘버 3’에서 헝그리 정신에 대해 말하는 그의 조폭 연기는 주연급인 한석규, 최민식을 누를 정도로 대중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가 ‘살인의 추억’ ‘박쥐’ ‘괴물’ ‘의형제’ ‘설국열차’ ‘변호인’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이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소 마르고 촌스러운 얼굴에 코믹한 대사에 능통했던 송강호의 변신은 늘 파격을 거듭했다. 

 

한강 매점에서 손님이 주문한 오징어 다리를 슬쩍하는 소시민부터 사람의 피를 갈구하는 신부, 세계 멸망 후 유일하게 남은 담배를 맛보는 한국인 등 겹치는 역할은 없었다. 그가 데뷔 이래 처음으로 감독 역할을 맡은 ‘거미집’은 1970년대 꿈도 예술도 검열당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성공적인 데뷔작 이후 긴장감에 쫓기듯 차기작을 마무리 지은 감독 김열이 그가 맡은 캐릭터. 하지만 ‘걸작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촬영이 끝난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기로 하면서 출연했던 배우들과 제작자 그리고 현장에 들이닥친 검열관까지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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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3년 차 송강호는 “상을 받는 것 보다 좋은 건 ‘그래 이게 영화지’ 싶은 현장에 있는 것”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사진제공=바른손이앤에이)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영화관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작품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한국 영화 현장과 선배 배우들 그리고 거장들의 작품 전체를 오마주한 작품이에요. 당시 현장과 작품에 대한 태도, 제작을 향한 열정, 시스템에 대한 웃기고 슬픈 이야기랄까. 늘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저에게도 ‘거미집’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결과물에 만족합니다.”

 

송강호는 과거 김지운 감독과 찍은 ‘조용한 가족’의 촬영을 추억하며 “집에 오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사연으로 모두 다 죽는데 당시에도 ‘이런 영화는 찍으면 망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관객수 30만명만 넘어도 대박으로 평가되던 시절, 38만명이 보러 오더라”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김지운 감독과는 ‘반칙왕’으로 또다시 만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밀정’에 이어 ‘거미집’이 무려 5번째 협업이다. 27년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김지운 감독에 대해 송강호는 “장르적 변주를 통해 새로운 영화로 대중의 갈증을 풀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첫 작품부터 범상치 않았다”고 말했다.

 

거미집
흑백에 1.66:1의 화면 비율로 영화 속에 또다른 작품이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을 가진 영화 ‘거미집’. 해외에서의 호평과 달리 국내에서는 시사회 직후 “어둡다” “대중성이 약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제공=㈜바른손이앤에이)

 

재능과 욕망이 불일치할 때 드러나는 감독의 예민함과 톱스타 배우들의 스케줄 조율 그리고 ‘돈이 되는 영화’를 찍기 위한 여성 제작자와 그 후계자의 기싸움 등 ‘거미집’의 등장인물 역시 만만하지 않다. 모두의 반대 속에 무리하게 결말을 수정하는 김열은 촬영을 감행하지만 결국 관객들은 끝까지 모호한 표정을 통해 인간에게 완벽한 만족이란 애초부터 가능한 감정이 아님을 깨닫게 만든다. 송강호는 그 지점에 대해 “굉장히 단순하고 순수한 욕망인데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 단순하다”고 풀이했다.

 

“저의 욕심도 거창하지 않아요. 새로운 작품으로 작게나마 한 걸음 나아가는 것, 늘 관객들 곁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실로 오랜만에 ‘그래. 이런 게 바로 영화 현장이지’라는 감정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밤을 새워가며 될 때까지 찍지도 않아요. 법적으로 그럴 수도 없잖아요. 그럼에도 그 안에서 필름으로 찍던 시절의 설렘과 에너지, 긴장감이 올라오더라고요.”

 

송강호은 ‘거미집’에 대해 “흥행은 둘째다.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십분 발휘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그이지만 참고가 될 만한 상황이나 행동은 일부러 기억 속에서 지웠다. 그저 “어떤 특정한 감독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류 감독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송강호
그의 차기작은 송강호의 첫 드라마 데뷔작이 될 ‘삼식이 삼촌’이다. 1960년대 초 격동기를 살아낸 두 남자의 뜨거운 욕망과 브로맨스를 다루는 드라마로 ‘거미집’의 각본을 쓴 신연식 감독의 작품이다.(사진제공=바른손이앤에이)

 

‘보편적인 정서’가 자신의 캐릭터에 거는 주문이었다. 다만  촬영장에서 혼자 주문을 거는 모습이라든지, 상대방을 설득하는 감독의 역할을 통해 인간의 자연스런 희로애락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던 건 확실해요. 일반적인 드라마와 다르기도 하지만 어떤 수위로 이 영화만의 리얼리즘을 만들어 내야 할지, 중심을 잡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경험상 진짜 해답은 배우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연습 혹은 고민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후배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한데 제 대답은 늘 같아요. 정답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정답을 적으면 안 된다는 거죠.”

 

그는 “머릿속에 있는 정답을 적으면 맞아도 감동이 없다, 우리가 모르는 답을 적어내야 하는데 그게 또 정답이어야 하는 게 연기인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수많은 배우들이 그와의 호흡을 언급하고 롤모델로 꼽은 이유에 대해 송강호 특유의 선문답은 여전했다. 

 

비록 통편집 되는 아픔이 있었지만 과거 ‘넘버3’ 때 조연과 단역배우로 만난 적 있는 오정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국민배우 송강호’의 깊이를 거들었다. 오정세는 “극 중 김열 감독(송강호)이 최 국장(장광)이 들어왔을 때 도망가는 장면이 있지 않나. 앵글이 잡히지도 않는데 선배가 매번 달리는 걸 보면서 다시금 초심을 다잡았다”며 남다른 존경을 표했다.

 

“이런 시기일 수록 한국 영화가 관객들에게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야 한다고 봅니다. 생소한 영화와 장르라도 시도조차 없다면 틀에 박혀있는 영화만 계속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영화적인 느낌이 강한 ‘거미집’의 관객 반응이 정말 궁금한데 ‘와, 이게 영화지’란 반응이 객석에서 나온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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