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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전혀 다르지만 닮은 우리 이야기, 화가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 ‘에곤 쉴레’

입력 2023-12-15 19:00 | 신문게재 2023-12-1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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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 에곤쉴레
화가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 ‘에곤 쉴레’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

 

당대 유명한 화가들 중 (뮤지컬화할) 인물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했던 지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 첫 번째는 당시 유행했던 아카데믹한 화풍이나 대중들이 인정하는 화풍을 넘어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화가였어요.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이 그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스스로의 삶과 비교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할 여건을 마련해줄 수 있도록요.”

정찬수 연출의 설명처럼 뮤지컬화할 화가의 선택 기준은 자신만의 세계관 구축과 더불어 “그림과 그들의 삶이 얼마나 연결돼 있느냐”였다. 그래서 ‘모딜리아니’(Modigliani)와 ‘에곤 쉴레’(Egon Schiele, 2024년 3월 10일까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2관)다.   

 

‘라흐마니노프’ ‘빈센트 반 고흐’ ‘더 픽션’ ‘파가니니’ ‘파리넬리’ ‘살리에리’ ‘어린왕자’ 등의 제작사 HJ컬쳐가 지난해 첫 선을 보인 화가시리즈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와 에곤 실레(김준영·황민수·양지원·최민우, 시즌합류·가나다 순)의 삶을 60분짜리 두편으로 엮은 옴니버스 뮤지컬이다.  

 

모딜리아니 에곤 쉴레
화가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 ‘에곤 쉴레’ 창작진과 출연진. 왼쪽부터 백혜빈 작가, 문동혁 작곡가, 정찬수 연출, 모딜리아니·에곤 실레 역의 양지원·황민수·최민우(사진=허미선 기자)

 

해외진출과 학교 대면 혹은 영상 공급을 위해 ‘괴테의 변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더 와일드의 변론-거짓의 쇠락,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으로 구성된 변론시리즈에 이은 두 번째 옴니버스 뮤지컬이다.

정찬수 연출이 전한 두 가지 기준으로 선정된 두 화가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한 인물들이다. 정 연출은 “같은 시대에 활동했고 짧은 인생을 살았으며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며 “모딜리아니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고 에곤 실레는 인정받았음에도 결핍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의 목소리가 당대에 통용이 됐느냐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이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덧붙였다.

 

“모딜리아니는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던 화가다 보니 화상이라는 존재가 그림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전파해요. 반면 생전에 영예를 누린 에곤 실레는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고 삶을 구축하죠. 그 죽음도 전혀 다르게 표현됩니다. 모딜리아니는 많이 슬프지만 에곤 실레는 관객분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신나게 마무리됩니다.” 

 

백혜빈 작가는 “두 화가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뮤지컬 제안을 받으면서 눈에 띄었던 키워드는 ‘비극’이었다”며 “본인들도 자신의 삶을 비극이라고 생각할지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고 화가시리즈의 시작점을 밝혔다.

 

에곤 쉴레
화가시리즈 뮤지컬 ‘에곤 쉴레’에서 에곤 실레를 연기 중인 황민수(사진제공=HJ컬쳐)

 

“그들의 짧은 생을 3분 40초라는 시간과 여름이라는 키워드로 은유적 표현을 썼습니다. 모딜리아니의 ‘3분 40초’는 일반적의 가요의 길이로 삶을 살아가면서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건 그림 뿐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름은 28세, 청년의 시기에 세상을 떠난 에곤 실레의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죠. 뜨거운 인물이기도 했고 그의 삶이 여름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어 백 작가는 “그림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다 보니 전시회라는 틀로 시작했다”며 “하지만 모딜리아니를 마지막 순간에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자화상을 그리는 이야기로 구성했다면 에곤 실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사경을 헤매면서 자신의 가장 화려했던 전시회를 떠올리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부연했다.

“두 화가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보니 일반적으로 이해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정서와 감정을 중점적으로 다뤘죠.”


연출적으로는 목소리를 키워드로 마이크로 표현된다. 정찬수 연출은 “모딜리아니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지 않는 세계와의 대립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며 “에곤 실레는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확성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세계들을 뛰어다니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마이크의 형태에 따라 자세나 몸 상태, 감정 등이 표현될 수 있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모딜리아니
화가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에서 모딜리아니를 연기 중인 최민우(사진제공=HJ컬쳐)

“모딜리아니는 쓰러져 가는 마이크를 활용합니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향할 수 없는 마이크죠. 에곤 실레는 높낮이, 거리감 등이 다른 마이크를 통해 어디서든 누군가든 그의 말을 들어주고 있어요. 이 말을 들어주는 형태와 하고 싶은 말의 감정, 관계성 등은 에곤 실레가 직접 마이크를 움직이며 자신의 무대를 만들어 갑니다.”


전혀 다른 성향의 두 화가는 마이크를 활용하는 방법도 다르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는 게 정찬수 연출의 전언이다.

 

밴드 제비뽑기의 멤버이자 브로콜리너마저에서도 활동했던 문동혁 작곡가는 “모딜리아니는 드라마적 요소가 많아서 감정선을 따라 음악이 흘러갈 수 있도록 했다”며 “에곤 실레는 각각의 곡, 특히 오프닝 넘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했다.

“에곤 실레라는 인물이 굉장히 도드라지는 캐릭터라서 돋보일 수 있게끔, 에너지가 넘치는 곡들로 구성했죠. 데이비드 보위를 많이 상상하면서 썼습니다.”

초연에 이어 두 번째 시즌에도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로 돌아온 황민수는 “너무 달라보이지만 안에 가지고 있는 건 사실 같다”며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모딜리아니는 기침 등 신체적인 불편함을 좀 더 드러내면서 망가져가는 몸을 이겨내서라도 꿋꿋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있습니다. 에곤 실레는 결핍이 많았지만 그 결핍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부딪혔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속으로는 무섭고 두렵지만 당당했던 데 포인트를 두고 연기하고 있습니다.”

 

양지원은 “둘은 너무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의 이면을 찾고자 했다는 특별함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인간의 이면에 대해 그리고 저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에곤쉴레
화가시리즈 뮤지컬 ‘에곤 쉴레’에서 에곤 실레를 연기 중인 양지원(사진제공=HJ컬쳐)

 

“연출님께 모딜리아니를 연기할 때는 마이크를 쓰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어요. 사람들이 입, 겉모습만 쳐다볼 뿐 내 진짜 눈동자를 봐주지 않는 데서 느끼는 모딜리아니의 결핍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에곤 실레는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결핍을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최민우는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르게 대처하는 두 사람의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며 “모딜리아니는 어떤 상황에 계속 기가 죽고 결핍이 생기는데 에곤 실레는 정말 급진적으로 나아가려는 상반된 모습들이 재밌었다”고 전했다. 

 

“모딜리아니는 살아온 생애와 비슷하게 노래와 극을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표현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에곤 실레는 개척해나가는 포인트들이 흥미로웠죠.”

이어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최민우는 “나의 예술”을 꼽았다. 그는 “저는 모두의 삶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며 “극에서는 ‘나의 예술을 위해’이라고 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 목표나 꿈이라는 서브 텍스트를 생각하며 연기 중”이라고 설명했다.


모딜리아니 에곤 쉴레
화가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 ‘에곤 쉴레’에서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를 연기 중인 양지원(왼쪽부터), 최민우, 황민수(사진=허미선 기자)

양지원은 “모딜리아니가 자신을 알아봐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답답함을 ‘아’ 한 단어를 음율에 실어 표현하는 신을 가장 좋아한다”고 꼽았다.


“저 역시 아주 어릴 때부터 가수를 준비하는 등 예술 계통에서 노력하다가 뮤지컬 배우까지 됐어요. 제가 생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제가 생각하는 예술이 예술이 아닌 것처럼 평가받을 때도 굉장히 많았죠. 그래선지 ‘모딜리아니’를 준비하면서 그 장면이 많이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황민수는 “저 역시 ‘모딜리아니’에서는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동의를 표하며 “같은 선상에서 ‘에곤 쉴레’의 ‘여름의 끝’ 마지막 대사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을 보탰다.

“에곤 실레가 ‘세상은 항상 우리에게 뜨겁게, 열정적으로 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세상에서 나라고 말이 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거야’ 라고 당당하게 되묻는 대사죠.”

정찬수 연출은 “두 인물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그들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우리가 어떤 위치에 놓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극 중에 ‘정말 어려운 시기’라는 대사가 있어요. 저희 화가시리즈도 사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초연을 했거든요. 그런 시기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예술을 해 나가야 하는지까지 연결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관객들도 이 힘들고 갈수록 다양한 위기가 닥쳐오는 시기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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