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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줄 모르는 사회가 음식중독의 원인

‘성과사회’ 부작용으로 ‘피로사회’ … 탄수화물중독은 쉬고 싶다는 반증

입력 2016-08-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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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의지가 약해서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압박하고 철저하게 절제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조급하고 자극에 민감하고 충동적이다. 쉴 줄 모르는 사람들의 뇌는 많이 지쳐있다.


뇌를 스마트폰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고성능으로 만들었는데 배터리가 나가버리는 것과 같다. 지쳐 있는 뇌는 세로토닌이나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생기고 감정과 충동 조절에 어려움이 생긴다. 우리는 피곤하고 힘들거나 외로울 때 24시간 배달음식과 편의점을 통해 손쉽게, 아주 빠르게 뇌를 자극하는 맛을 구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놓여 있다. 과거에는 음식을 구하려면 사냥을 해야 했고 농작물을 경작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현대사회는 그렇지 않다.


모두가 갈망하는 것들을 더 빨리, 더 쉽게 얻는 것을 성공이라 여긴다. 그것이 돈이든지 멋진 몸매든지 사랑이든지 말이다. 한편으로 빨리 얻지 못하면 그만큼 더 크게 허기진다. 이런 심리적인 허기는 한병철의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언급한 ‘성과사회’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과거의 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에 의해 이뤄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란 “할 수 있다”가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이고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해야 하기에 자아는 피로해진다.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뒤처지는 느낌이 앞선다. 과잉자극, 과잉활동에 피로해진 자아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심심함과 쉼이 필요한데도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인정받으려 한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뉴욕에 사는 여류화가 존시는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에 기대는 대신 창문 밖 담쟁이덩굴의 잎새만 바라본다. 마지막 잎새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채 존재 자체만으로도존시에게 커다란 삶의 의미를 전해 준다. 인생의 위기에서 정신과 의사를 찾는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나는 그들을 공감해주면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어떤 시점에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나뭇가지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잎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했던 것이다”라고.


지금 우리 모두는 꼭 무엇을 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들은 쉴 수 없는 병에 걸리고 사회도 쉴 줄 모르게 되었다. 진정한 ‘인간성’을 뒤로 하고 갈망하는 것들을 가지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소망하는 것들이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확인받는 것은 너무도 잔인하며 맨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운 일이다. 이때 심리적인 허기가 일어나고 뱃속에서는 음식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친다.


식사한 직후에도 배가 자꾸 고프다면 ‘내가 심심해서 먹게 되는구나’, ‘지금 짜증이 나 있구나’, ‘화가 났구나’ 등 여러 가지 감정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 몸이 단 것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나 좀 쉬게 해달라’는 외침과도 같다. 단 음식과 같이 특정음식을 계속 찾는 습관은 의학적 원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당연히 조절이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음식 하나 못 참는 자신을 제발 구박하지 말자. 이럴 때 필요한것은 오히려 스위치를 끄는 일이다. 식욕조절 호르몬은 수면과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밤에는 몸과 정신을 과잉활동하게 하는 각성스위치를 끄고 수면스위치를 켜야 한다. 음식중독의 해결을 위해 ‘쉼’과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늘도 잠시 쳐다보고 자연 속에 가만히 머물러보자. 지친 뇌들은 아무리 얘길 해도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고 창조성이 떨어진다. 주변을 돌아보며 잊고 지냈던 지인들에게 선의를 베풀어보자. 음식에 대한 집착이나 마구잡이로 먹는 행동은 겉으로 보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그 이면에 깔려있는 내면의 상태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음식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 현대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이러니하게 들릴 것이다. 어느 때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몸에 좋은 음식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편이 되어 주지 못한다.


항상 자신을 부족하고 결핍된 상태로 여기니 자신을 학대하는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인 것이다. 모든 중독치료의 첫걸음은 시인하는 것이다. 음식중독이 될 때까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허기를 채우기 급급했던 동기, 상황, 외로움, 자존감 결여 등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자신을 포장하는 여러가지 타이틀을 벗고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자신에게 질문해봐야 한다. 본인을 잘못 정의하니까 거기에 맞춰 거짓된 삶을 살고, 이런 스트레스로 인해 모든 중독이 시작된다.


각자 자신만의 색깔이 있으며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주는 게 바로 자존감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내 모습으로는 어떤 만족감도 있을 수 없다. 자존감이나 자기존중감은 개인의 능력이 얼마만큼인지,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좌우되는 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며 주관적이다.


한 30대 중반의 전문직 여성이 직업적으로는 최고의 성공을 거뒀어도 지나가는 말로 옷차림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면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을 수 있다. 여성들은 특히 남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혹독한 점수를 준다.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된다면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자신을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뜻하기도 한다. 감정을 스스로 관리하고 내 몸과 마음의 욕구에 귀기울일 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찾아온다. 자존감이 회복되면 굳이 과도하게 애쓸 필요도 없어지고 다른 사람 들의 이야기에 자연히 스트레스가 줄어들면서 호르몬 분비체계가 정상적으로 바뀌어서 결국에는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없어진다. 음식이 일상의 행복이 아닌 중독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과의 전쟁을 멈추고 지친 내 마음과 몸을 돌봐줘야 한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 뇌는 스트레스성 뇌탈진 상태에 빠지게 되고 불면증, 주변 사람에 대한 예민한 반응, 탄수화물과 같은 특정 음식에 대한 탐닉, 지나친 흡연과 음주, 행복둔감증, 자기 비하 등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상이 바쁘고 지칠 때 ‘나는 왜 즐기지 못하는 걸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 인생의 성공은 행복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자신에게 야박하게 구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행복은 ‘그만하면 잘하고 있어’라고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는 데서 시작한다. 몸에서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이 특정 음식을 먹게 된다면 그것은 감정적으로 먹고 있는 것이며, 그 이면에 먹어도 배고픈 ‘심리적 허기’가 깔려 있음을 명심하라. 음식중독이라는 단어가 벗어날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의 메타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다스리는 훌륭한 도구’로써 활용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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