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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불치의 절망 딛고… 생존수영 '잎새뜨기'를 전파하다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김철기 대한파킨슨병협회 체육이사

입력 2016-09-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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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기 대한파킨슨병협회 체육이사(사진=유병철 기자)

“파킨슨병입니다.”

김철기(59)씨는 지난 2011년 1월, 의사에게서 불치병 진단을 받았다.

고려대, 서울대 학사, 와튼스쿨 MBA, 한국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까지. 누가 봐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승승장구하던 그가 드라마에 나와도 식상하다고 치부될 것 같은 불치병에 걸린 것이다.

누구라도 좌절할 만한 상황에서 김씨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지난 2014년 ADB를 퇴사한 이후 2년만에 ‘잎새뜨기’라는 이름의 생존수영 전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김씨는 요즘 하루하루를 전보다 훨씬 신나고 힘차게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몸이 허락할 때까지 전국을 누비며 ‘물에 뜨는 인류’를 만드는데 최대한 공헌하겠다는 게 그의 새로운 목표다.


◇고통 속에서 만난 수영

김씨는 파킨슨병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ADB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노력해 업무에서도 좋은 평가를 꾸준히 받았지만 병마는 깊어져만 갔다.

“2013년에는 프로젝트 성과에 대해 영업국에서 작성한 자체평가보고서 전부를 재평가해서 확인하는 프로세스를 총괄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효가 떨어지면 몸이 굳어져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지요. 결국은 제 집무실 귀퉁이에 전기 마사지 의자를 구해다 놓고 거기에 누워서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지요.”

 

몇 달간 악전고투하며 업무를 마무리하는데 성공했지만 더 이상 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결국 김씨는 미련없이 사표를 제출했다.

예상보다 빠른 은퇴였기에 계획은 없었다. 당장의 병마와 싸우는 게 더 시급했다. 파킨슨병은 현재 약물과 수술 등의 방법을 통해 증상을 잠시 완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하다. 의사들은 본질적으로 운동을 위한 치료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기퇴직 이후 김씨는 수영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쉬지도 않고 두시간 이상 수영을 할수도 있었지만 점차 몸이 굳어져가며 한번에 25미터를 가는 것도 어려워졌다.

“저에게 수영 지도를 해주던 안치권(45) 코치가 직접 개발한 ‘누워뜨기’를 배웠지요. 병이 깊어지며 수영이 어려워지자 대신 조용한 유아풀 같은 곳에 누워서 둥둥 떠다니며 ‘이렇게 좋은 걸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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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민도르섬에서 '잎새뜨기' 생존수영을 시연한 청소년들(김철기 제공)

김씨가 물위에 떠서 보급방안을 고민하는 동안 안 코치는 누워뜨기를 이용한 생존수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 본 김씨는 생명을 살린다는 의미로 ‘잎새뜨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안 코치와 함께 전국을 돌며 생존수영을 가르치는 강사로 거듭나게 됐다.

잎새뜨기 생존수영은 정확히 말하면 수난사고 상황에서의 생존술이다. 물에 빠졌을 때 체력소모를 줄이고 체온을 유지하면서 물에 떠서 구조를 기다리는 방법이다. 

 

요령은 입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셔 몸의 부력을 최대한 크게 하는 것이다.

 

누운 자세로 온몸의 힘을 뺀 채 양팔을 부드럽게 머리 위 또는 옆으로 넓게 벌린다. 얼굴과 두 발끝이 수면에 뜨도록 한다. 특별한 수영 동작은 하지 말고 체온과 체력을 유지한다.

김씨는 “몇시간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뜰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씨는 ‘익사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구하자’라는 캠페인을 기획·총괄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필리핀 마닐라 남쪽에 있는 민도로섬 산타크루즈 해변에서 400여명의 청소년에게 잎새뜨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민도로섬의 청소년들은 해안가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마치 떠다니는 잎사귀처럼 누운 채 한 시간여 동안 물 위에 떠 있었다. 고작 서너시간 정도의 요령을 배워 물위에 뜨게 된 것이다.

그의 노력에 국내에서도 잎새뜨기가 서서히 보급되는 추세다. 부산소방학교는 지난 3월 경남지역의 우수 구조대원 30명을 시작으로 잎새뜨기 생존수영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5월 2~3일에도 대원 12명이 수난상황에서의 대처방법으로 잎새뜨기 생존술을 체계적으로 익혔다.

최근에는 소방관들 뿐만 아니라 국민안전처 등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직은 느리지만 시민들에게도 보급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용산 청소년수련관, 잠실 한강 수영장 등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잎새뜨기를 가르쳤다. 

 

 

지난달23일용산청소년수련관에서
용산 청소년수련관에서 김철기씨가 한 학생에게 '잎새뜨기'를 지도하고 있는 모습(김철기 제공)

 

◇행복과 불행은 선택일 뿐

김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지는 벌써 6년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매일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동네 야산을 오르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산을 내려와 수영장에 다녀오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반나절도 채 되질 않는다.

그나마도 오랜 시간 한 곳에 머물러 있거나, 약효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근육이 굳어버린다. 매일 생존을 위해 사투를 진행하고 있는 그가 이렇듯 열정적으로 생존수영의 보급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첫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질수도 있지요. 지금 하고 있는 ‘생명살리기 미션’이 길지 않은 제 남은 여생에서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김씨는 인터뷰 내내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때 잎새뜨기를 전국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기본틀을 갖추고 싶다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김씨의 몸은 굳어갔다. 시원한 카페를 나와 여름의 뙤악볕을 정면으로 받으며 30분이 넘도록 움직인 후에야 조금씩 몸이 풀려갔다. 김씨는 따가운 햇빛으로 인해 이마에 연신 땀방울이 영글어 가는 상황에서도 찌푸린 기색 하나 없이 환한 미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주제넘는 얘기 같지만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행복과 불행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불치병을 안고 살면서도 그전보다 더 행복하게, 더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답니다.“
 


△경북 김천 출생(1957) △김천고등학교 졸업(1975)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1982) △서울대학교 국제경영학 석사(1985) △미 와튼스쿨 MBA Finance (1994) △한국은행 (1982~1995) △아시아개발은행(ADB, 1995~2014) △파킨슨병 진단(2011. 1) △잎새뜨기 생존술(Leaf Float) 수영 입문 (2014) △코치 자격 획득(2016) △대한파킨슨병협회 체육이사 (2015 ~ 현재)

유병철 기자 ybsteel@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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