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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수치심에 몸서리친 당신, 오늘도 낚이셨군요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캐시 오닐 '셰임 머신'

입력 2023-04-22 07:00 | 신문게재 2023-04-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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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저자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잘못된 운용을 파헤쳤던 <대량살상 수학무기>의 저자다. 그는 인간의 수치심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일체를 ‘셰임 머신(Shame Machine)’이라고 칭했다. 이 책은 수치심이 돈과 권력이 되는 현실을 낱낱이 폭로한다. 수치심이 인간의 의지를 꺾고 침묵시키며 편향성을 갖는 양상을 고발한다. 특히 디지털 대기업들이 사람들을 다투고 조롱하게 만드는 폐해를 비판한다. 그는 “수치심의 영역에서 우리 대부분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며 “이런 ‘이중성’ 탓에 수치심 안에 사업기회가 넘쳐난다”고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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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만


비만인들은 대개 의료시설 대신 심야 TV나 인터넷에서 빠른 해결책을 찾는다. 수치심에서 벗어나려다 스스로를 해친다. 덕분에 다이어트 시장은 미국에서 720억 달러 산업으로 성장했다. 비만 확산을 ‘치료’ 한 게 아니라, 비만과 더불어 ‘성장’했다.

다이어트 시장은 ‘실패’가 핵심이다. 84%가 실패하지만 다시 그 회사를 찾는다. 이 산업을 지탱하는 비결이다. 성공 기준은 턱없이 자의적이고, 신빙성이 거의 없다. 실패한 사람들의 ‘침묵’이 통계의 정확성을 떨어트려 이 산업을 더욱 키운다.

비만인들은 TV에서 필사적으로 살을 빼려는 사람들을 보며 종종 수치심을 잊고 자신감을 찾는다. 저자는 “우리가 잘못된 가정과 유사 과학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책할 때 ‘수치심 복한 산업체’는 이익을 얻는다”고 말한다.

 


◇ 약물 중독

많은 중독 회복 프로그램이 중독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며 수치심을 불어 넣는다. 1980년대 미국에서 벌어졌던 ‘크랙’ 중독자들에 대한 과잉 처벌이 대표적이다. 아이 두뇌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근거 없는 유사과학 탓에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다. 코카인 500g을 소지하면 최소 5년 형량인데, 크랙은 고작 5g만 갖고 있어도 같은 형량을 받았다.

중독자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쓸모 없는 존재로 여긴다고 자책하고, 중독을 조장하는 수치심 머신들은 이들을 ‘갱생불가’의 하찮은 존재로 계속 낙인찍는다. 지원센터조차 큰 이윤을 챙긴다. 무료 지원을 대가로 노예처럼 부리는 곳도 있다. 사회가 중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비난할수록 관련 산업은 더 크게 성장한다. 저자는 “피해자를 낙오자로 취급 말고, 도움이 필요한 가족으로 바라보자”고 말한다.



◇ 빈곤

빈곤층은 사회에서 ‘비용’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본의 아니게 ‘자격 있는 빈곤층’이 크게 늘었다. 실업수당을 신청하러 간 수백 만 실직자들은 온갖 멸시와 모욕과 마주했다. 인간적인 모욕을 견디지 못해 아예 정부 지원금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난의 책임이 당사자에게 있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그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분위기가 조성된다.

저자는 “안정된 직장이 빈곤이라는 수치심의 해독제”라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가난을 개인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빈곤층이 게을러진다는 사회 분위기 탓에 빈곤층 지원기관들조차 이들을 무시한다. 수감 후 일자리를 찾아 주는 고용지원센터에서도 협박과 강압, 수모가 빚어진다. 저자는 “빈곤층은 ‘수치심 머신에 갇힌 삶’”이라며 “사회가 빈곤층을 아무 조건 없이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 외모

아름다움은 오래전부터 완벽한 사기이자, 지칠 줄 모르는 수치심 머신이었다. 여성청결용품 회사인 ‘바지실’은 여성 낙인찍기에 반대한다는 저항적 메시지와 함께, 여자라면 매달 체취에 신경 쓰라는 암시적 메시지를 교묘하게 섞어 홍보한다. 여성들의 ‘몸매’에 대한 걱정은 관능적 여성들이 벌이는 ‘인플루언서 사업’의 무궁무진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젊음에 대한 열망과 노화에 대한 혐오, 여기에 통계조작까지 더해져 외모 산업은 날로 번창한다. 외모를 개인 선택의 잘못이라고 인식시킴으로써 수치심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존엄성 침해를 자극하려고 애쓰는 것이 수치신 머신을 해체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 사이버 불링

‘조롱’만큼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를 붙잡는 확실한 수단은 없다. 알고리즘까지 더해져 조롱은 트래픽을 올리고 수익을 높여준다. SNS에 분노를 표현하면 속이 후련해 진다. 우리가 공짜로 제공하는 끝없는 말싸움 덕에 트래픽과 광고수입은 증가한다. 값진 고객정보는 정교한 맞춤형 광고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의 시야는 점점 더 좁아지고 결국 남들을 경멸하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불행을 주기도 한다. 수치스러운 데이터를 먹고 사는 다수의 기관에게는 ‘노다지’다. ‘디지털 주홍글씨’는 깨끗이 지우기가 쉽지 않고, 또 온라인 커뮤니티의 ‘좋아요’, ‘공유하기’에 현혹된다. 수치심 네트워크 안에서 우리는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 잠깐씩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며 옹졸한 권력감이나 복수심 같은 감정에 중독된다.


◇ 차별

‘캐런(Karen)’은 흑인에게 특권과 권력을 휘두르는 백인 여성을 지칭한다. 과거 응원의 대상이던 이런 행태는 이제 인종차별로 엄청난 모욕을 듣는다. 이젠 동성애도 수용되는 문화가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 반하면 표현의 자유 등에 기댄 비합리적인 배척이 일어난다. <해리포터>를 쓴 J.K.롤링 같은 특권층은 세계적인 작가였다는 이유로 ‘젠더 논쟁’에서 더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실수할 자유와 함께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앨리배마 주지사 선거에 나섰던 조지 윌리스가 인종차별적 유세 도중 총상을 입고 입원했을 때 경쟁자였던 흑인 여성 셜리 치솜의 병 문안에 자괴감을 느끼고는 다음 선거에서 ‘인종 단합’을 공약으로 내 걸었던 사실을 강조한다.



◇ 인셀(Incel)

많은 이들이 동정(童貞)을 저주로, 독신(獨身)을 불명예로 여긴다. 여성에게 거절당하고 불만을 호소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인 남성들을 인셀(비자발적 독신자)이라고 한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애쓴다. 심지어 22세에 숫총각인 자신을 열등하게 느끼고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엘리엇 로저를 성인(聖人)으로 숭배하며 찬양한다. 일종의 자기부정이다.

이들은 일반의 여성을 페모이드(Femoid, 로봇 여성)라 부르며 모독한다. 사실상 남성우월주의다. 이들은 성적 엘리트가 우위를 점하면 안된다며, 일부일처제를 채택해 여성을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혐오집단에 머무는 남자들은 대부분 ‘소속감’ 때문이었다며, 그곳을 빠져 나오는 이들을 사랑과 용서로 받아주자고 말한다.



◇ 공공 에티켓

코로나 대유행 기간동안 마스크 착용이라는 ‘사소한 자유 침해’보다 서로에 대한 ‘책임’이 더 중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마스크 착용자들을 ‘겁쟁이’라 불렀다. 정치적 논리가 개입하면서 정책 도입이 늦어졌고, 다수의 코로나 환자가 확진 사실을 숨기거나 부인했다. 이런 수치심의 역효과는 환자 뿐만아니라 모두를 위험에 빠트렸다.

백신도 처음에는 배척당했다. 유사과학과 음모론 속에 사회적 공포감 조성이 백신 거부를 낳았다. 하지만 이내 백신을 접종받지 않고 버티는 사람은 게으르고 이기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정당한 모욕주기였다. 저자는 “‘부드러운 독려’만으로도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잘못된 권력, 정당한 저항

‘권력자의 수치심 건들기’를 저자는 ‘펀치 업(punching up)’이라고 표현했다. 수치심을 건설적으로 활용해 유익한 결과를 끌어내는 행위다. 미국 시민권 운동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대표적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의 인도 소금시장 독점에 항의해 390km의 ‘소금행진’을 펼쳤듯이 사회의 기득권을 바꾸는데 효과가 크다. 저자는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강한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미투 운동도 펀치 업 캠페인의 성공사례다. 오랜 세월 성적 학대에 침묵해야 했던 여성들이 수치심을 이겨내고 목소리를 냈다. 검색 알고리즘에서 발견한 인종 차별적 요소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구글에서 쫓겨난 팀닛 게브루와 동료들의 저항 역시 한 명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 준 사례다.



◇ 수치심은 누구의 책임인가

저자는 모든 사회 문제는 수치심을 주지 않고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저렴한 공공주택 보급, 약물 남용자에 대한 클리닉 보조, 빈곤층에 대한 조건 없이 지원금 등이다. ‘외로움’과 ‘불신’이라는 이중의 사회악이 주는 고통을 기반으로 성장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그런 곳에서 기부금을 받는 정치인을 모욕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무엇보다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강조한다. 남들이 약자를 놀릴 때 동참하고 싶은 욕구를 억눌러야 한다고 말한다. 공감하고, 되도록 다른 사람의 말을 믿으려 노력하자고 권한다. 모두가 실수하는 존재이고, 우리 주변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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