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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지금이야 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뮤지컬 ‘파과’

[Culture Board]

입력 2024-03-13 18:00 | 신문게재 2024-03-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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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과
뮤지컬 ‘파과’ 투우 역의 김재욱(왼쪽부터), 조각 차지연, 류 최재웅(사진제공=Page1)

 

구병모의 장편소설 ‘파과’가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다. 제목 파과는 부서진 혹은 흠집이 난 과일(破果)과 여자 나이 16세(破瓜)를 이르는 말로 상품가치가 없는 과일과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이팔청춘이라는 극과 극의 의미를 가진다.

뮤지컬 ‘파과’(3월 15~5월 26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는 ‘곤 투모로우’ ‘차미’ 등의 제작사 페이지원이 선보이는 4년만의 신작으로 ‘순신’ ‘서편제’ ‘더 데빌’ ‘아마데우스’ ‘헤드윅’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잃어버린 얼굴 1895’ 등의 이지나 연출작이다. 

 

이지나 연출을 비롯해 ‘넥스트투노멀’ ‘스프링어웨이크닝’ 등의 이나영 작곡가·음악감독, ‘맥베스’ ‘비더슈탄트’ ‘셰익스피어인러브’ 등의 서정주 무술감독,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을 비롯해 연극 ‘82년생 김지영’, 무용극 ‘호동’ 등의 박은혜 무대 디자이너 등 창작진들이 의기투합했다. 

 

뮤지컬 파과
뮤지컬 ‘파과’ 연습 중인 조각 역의 구원영(왼쪽)과 차지연(사진제공=Page1)

 

65세의 여성킬러 조각(爪角, 구원영·차지연, 이하 가나다 순)을 통해 부서지거나 흠집이 난 채 잊혀진 존재, 농익다 문드졌지만 여전히 은은한 단맛이 남아 있는 과일, 화려하게 불타오르다 사라져버진 불꽃놀이, 설탕 한 스푼에서 한껏 부풀어 오르다 눅진해져버리는 솜사탕과도 같은 것들에 대해 다룬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변화를 마주하게 된 조각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다룬 원작의 여정을 그대로 따르는 ‘파과’에 대해 이지나 연출은 “나이듦에도 아직 살아있는 단맛을 은유하는 인간에 대한 찬양, 지독히 스산한 사랑이야기 같은 조각의 인생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잔혹하고 냉혹한 킬러였던 조각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던 투우(김재욱·노윤·신성록)를 만나면서 나이듦, 연민, 망설임 등의 낯선 감정들을 처음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뮤지컬 파과
뮤지컬 ‘파과’ 연습 중인 투우 역의 노윤(왼쪽부터), 신성록, 김재욱(사진제공=Page1)

 

‘파과’ 관계자는 “평생 외면하고 억눌러 왔던 인간으로서의 희로애락이라는 감정 자체를 처음 마주하고 인정하며 ‘변화’하는 조각의 장면 장면들이 내레이션을 통해 표현된다”며 “그렇게 변화하는 조각의 감정이 관전 포인트”라고 전했다.

나이가 들면서 마주하는 변화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조각, 그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투우, 변화의 발단이 되는 류와 강 박사(박영수·지현준·최재웅) 등의 관계를 통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조각의 변화를 이끄는,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영향을 주는 류와 강 박사를 한 배우가 연기하는 것도 눈여겨볼 설정이다.  

 

이지나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는 ‘뮤지컬은 이래야 한다’라는 기존의 법칙을 최대한 피하고 강력한 액션이나 내레이션 등 뮤지컬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유니크한 시도, 변칙을 주는 다양한 도전들을 통해 우리나라 작품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전했다.

 

뮤지컬 파과
뮤지컬 ‘파과’ 연습 중인 류 역의 지현준(왼쪽부터), 박영수, 최재웅(사진제공=Page1)

 

넘버는 ‘죽음의 향기’ ‘싱싱한 과일’ ‘봄날의 햇살’ ‘날 기억할까’ ‘살리는 자와 죽이는 자’ ‘너의 선택’ ‘보통의 나날’ ‘한순간의 꿈’ ‘방역업자에게 은퇴란 없다’ ‘지키고 싶은 것’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등 록발라드, 팝 등이 포함된 다양한 장르의 26여곡에 이른다.

 

관계자 전언에 따르면 “세련되고 뮤지컬 음악같지 않은” 넘버들 중에는 이지나 연출, 정재일 작곡의 총체극인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넘버를 변주한 ‘남겨진 나를 본다’ ‘류를 떠올리다’ 그리고 조각 역의 차지연이 작곡한 ‘흔적만 남은 칠판’도 있다.  

 

이나영 작곡·음악감독이 이끄는 8인조 오케스트라는 매회 무대에 올라 피아노, 첼로, 비올라 등 클래식악기부터 드럼, 퍼커션, 일렉트릭 기타까지를 활용하며 다채로운 선율과 넘버별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뮤지컬 파과
뮤지컬 ‘파과’ 연습 중인 어린 조각 역의 유주혜(왼쪽)와 이재림(사진제공=Page1)

 

냉혹한 킬러이자 묘한 인연으로 얽힌 조각과 투우의 시점을 시각화한 어둡고 높은 수직 벽체, 계단과 난간으로 이루어진 다층 구조물을 중심으로 한 무대도 볼거리다.

 

차갑고 날카로우며 어둡고 무거운 철재가 작품 전반의 느와르적 정서를 표현한다는 박은혜 무대 디자이너는 “매시 재질의 이동 벽체들과 회전무대를 이용해 한 무대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구현되거나 과거의 시간으로 전환 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조각과 투우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파과(破瓜)처럼 찬란하게 빛났던 시절이 있다. 풋풋하다 향긋해지고 한껏 물이 오른 시절을 지나 결국 썩어 문드러지는 파과(破果)처럼 누구나 나이가 든다. 그 변화를 맞이하는 태도는 결국 저마다의 몫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순간들이 이어진 지금은 소설 속 문구이자 뮤지컬 ‘파과’의 마지막 넘버처럼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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