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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백의의 천사는 지옥에서 일한다.

입력 2018-08-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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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꿈을 키우던 A씨. 7월 초 서울 모 대형병원 신입 간호사 채용면접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질문을 받았다. “올 초, 우리 병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죠” “본인은 어떤 방법으로 버틸 거죠?” 입사 6개월 만에 목숨을 끊은 신규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27살의 앳된 신규 간호사가 목숨을 끊은 지 약 8개월이 지났건만 해당 병원 측은 사과는커녕 여전히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찰 역시 뚜렷한 증거가 없어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간호사를 꿈꾸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그 내막엔 ‘태움’이라는 비인간적인 조직문화가 있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가 교육을 명분으로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간호사 10명 중 4명이 태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 할 만큼 피해 범위도 크다. (대한간호협회,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7275명 대상) 일반적으로 신규 간호사가 부서에 배치되면 경력 2~3년 이상의 프리셉터와 맺어져 1~3개월가량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프리셉터: 신규 간호사를 교육하는 지도 간호사

이 과정에서 신규 간호사는 살인적인 근무환경에 노출되는데 선배 간호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일을 배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한다.

보통 신규간호사들의 업무 적응을 위해 8~12개월의 적응기간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간호사는 ‘앞가림’만 급급하게 하는 수준에서 교육이 끝난다.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활동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2/3수준이다.(2015년 기준) 인력난으로 간호사 한 명당 돌봐야 할 환자가 많고,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다.

과도한 업무와 태움의 공포 속에서 신규 간호사 10명 중 3명은 이직을 선택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간호사 1명 당 19.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5.4명, 일본은 7명의 환자를 맡고 있다.

2008년,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신규 간호사 두 명이 잇따라 사망한 사건이었다. 일본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국가 차원에서 ‘신규 간호사 연수제도’를 기획해 간호사들의 현장 적응을 도왔다.

효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신규 간호사의 의료사고 발생률이 9.8%에서 7.8%로 2%포인트 가량 줄었으며 이직률 또한 2007년 9.2%에서 2012년 7.9%로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8개월 전 이미 꽃다운 나이의 간호사가 목숨을 끊었건만 ‘간호사 태움’ 논란은 여전하다. 간호 인력들의 과도한 업무와 신규 간호사의 현장 적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그동안 관습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고 괴롭힘을 당연시하진 않았는지, 간호사도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 출처=게티)

김지은 기자 sooy09@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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