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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소년가장서 인생설계사로…"각 사람의 때는 모두 다릅니다"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인식' 강연하는 한정수 강사
"죽음 염두에 두고 자신의 처지 깨달아야"

입력 2016-12-19 07:00 | 신문게재 2016-12-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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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말고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기업의 대표이사였던 한정수(70) 인생재설계 강사는 사장님보다 ‘선생님’으로 불리는 게 더 좋다고 연신 강조했다.

2013년 즈음부터 강연을 시작해 이제까지 대기업 CJ나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등 청중 1만명을 만나온 한 강사의 주 분야는 ‘인식’(認識)이다.

“인식이란 한 마디로 은퇴자에게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은퇴해 앞으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강의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한정수 강사는 “200명을 모아놓고 강의하면 끝나고 나서 30명이 다가와 인사하거나 강의 잘 들었다고 말한다”고 했다.

경로당 2곳, 이동푸드마켓, 사랑쌀나눔운동본부 등 4곳에서 봉사도 겸하는 그는 원래 봉사나 강연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66세에 대표이사직을 사퇴하고 지하철 무료 요금과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낯설어 이에 적응하는 데 보름이 걸린 와중에 대한노인회에 전화해서 진로 상담을 받았다. 그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추천받길 원했으니 대뜸 “가까운 경로당에 가서 봉사하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한정수 강사는 “청중 1만명에게 ‘은퇴 후 바로 동네 경로당에서 봉사하시겠어요?’리고 물었더니 단 1명도 손 들지 않더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으로 새 시작을 하려고 경로당을 찾아간 그는 욕설도 들었다. “젊은 사람이 경로당에는 왜 와? 나가서 일해”라고 말이다.

그는 재정난에 시달리던 경로당을 위해 기부를 부탁하러 다니면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한국언어문화원에서 스피치를 배우고 전국웅변대회에서 특등에 오르며 연단공포증을 해소했다. 한 강사는 공포를 없애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특등’은 특별상일 뿐이지 정규 수상이 아니더라고요. 3년 뒤에 다시 웅변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아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3년 한정수 강사는 한 신문의 기사를 보고 ‘시니어파트너즈’라는 회사에 강사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재미로 등록했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마련해준 강연을 시연한 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수강생들의 박수를 받고 강사의 길을 결심했다. 현재는 고려대 액시전(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전임 강사, 각당복지재단 죽음학 지도사 등으로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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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수 대표의 강연 모습. (사진제공=한정수 대표)

 

‘인식’ 말고도 그가 강의하는 ‘죽음학’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면 지금의 삶을 충실하게 살 수 있다는 내용으로 △1년에 1번씩 유언장을 쓰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전치매의료의향서 △장례유언서를 써 놓는 실천 과제를 권한다.

한정수 강사는 “경로당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면 ‘왜 굳이 죽는다는 사실을 끄집어내느냐’며 기분 나빠하는 분들이 있다”며 “그런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해 ‘동물의 왕국’ 등 재미있는 예시를 들어가며 재미있고 가볍게 죽음학을 풀어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자들이 체면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할 바를 찾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권했다. 중학교 때 부친의 타계로 가장이 되는 바람에 대학을 야학으로 나와 공부를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한 강사는 ‘인생은 농사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람에게 적용되는 때가 있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피치를 익힌 저에게 우연히 강사 과정이 눈에 들어왔듯이 준비를 충실히 하면 인생 2막을 어떻게 열지 길이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년가장으로서 신문 돌리던 이야기, 유격으로 군대 생활하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강사는 볼펜을 달라더니 한자를 쓰기 시작했다.

“매울 신(辛)에 한 획만 더 그으면 다행 행(幸)이 됩니다. 고통과 다행은 한 끝이라는 것이죠. 왼손이 다쳤으면 오른손이 안 다쳐서 다행이고 돈을 잃어도 사람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라 다행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한 강사는 남은 여생은 후학, 즉 인생재설계 강사를 기르고 싶어 관련 준비를 마친 상태다. 그가 속한 강사들의 협동조합 ‘다가치포럼’은 ‘미래교육전략 전문가’ 민간 자격증을 획득했으며 내년 숙명대 평생교육원에서 미래설계전문가 양성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 강사는 “만들어진 지 7개월 밖에 안된 단체인데 강연 질이 좋아 자격증이 빨리 나왔다”며 “내년을 기대해주시라”라며 인상 좋은 미소를 짓는다.

신태현 기자 newt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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