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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들리지 않기에 부드러운 라테를 만들 수 있었죠”

[열정으로사는사람들] 청각장애인 최초로 스타벅스 부점장에 오른 권순미 바리스타

입력 2017-01-09 07:00 | 신문게재 2017-01-0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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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최초 부점장인 권순미씨(올림픽공원남문점 근무) 2
권순미 부점장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사진=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장애를 넘어서는 도전과 의지,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동료 장애인들과 도우며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코끝에 맴도는 원두향이 가득한 커피 매장에 그보다 더욱 향기로운 미소로 손님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바리스타가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부점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권순미(38·여) 씨가 그 주인공.

장애의 편견을 넘어서 이제는 매장 운영과 동료 파트너들과의 소통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는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담아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부점장이 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이전과 달라진 점은 이제는 매장의 전반적인 운영을 바라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 제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졌다는 것이죠.”

권 부점장은 보청기를 통해 작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2급 중증 청각장애인이다. 두 살 때 앓은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수백 명의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커피전문점에서 장애를 딛고 성공스토리를 써내려간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입사 4년 만에 무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부점장으로 승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스타벅스입니다.”

매장에 들어설 때마다 듣게 되는 기분 좋은 인사말도 그에겐 하루에 수백 번도 더 소리 내 연습한 노력의 산물이다. 다른 파트너들이 쉽게 해내는 주문 역시 권 부점장은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고 이해하는 구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고객의 입모양에 오롯이 집중하는 동시에 포스(POS)까지 처리해야 하니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든다. 당연히 어려운 점도 많았다.

“겉보기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티가 나지 않아 손님이 불렀는데도 미처 응대를 하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럴 때는 ‘제가 청각장애인이어서 고객님의 주문을 못 알아들었어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라고 부탁 드리죠. 숏과 톨 사이즈처럼 입모양이 비슷한 경우에는 컵을 들어서 재차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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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코리아 최초로 청각장애인 부점장이 된 권순미씨가 부점장 입문 교육을 수료하고 승격 임명식에서 축하를 받고 있다.(사진=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지난 2011년 장애인 정규직 채용 1기로 입사한 권 부점장을 시작으로 현재 스타벅스의 전국 매장에는 150여명에 달하는 장애인 바리스타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배로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장벽을 허무는 데 앞장서고 싶기 때문이다.

“신입 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제게 스타벅스에서 장애인은 어디까지 승진을 할 수 있냐고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장애인도)동등한 입장에서 승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점장 자리에 오른 권 씨를 통해 장애인 바리스타 후배들도 용기를 갖고 꿈을 이어가고 있다. 권 부점장 자체가 장애를 가진 이들의 희망이 된 것이다.

“외국에서 저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신 교포분이 있으셨어요. 한국에서 장애인의 차별이 심한데도 어떻게 서비스업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은 장애를 갖고 있는 자식이 걱정이 돼 이민을 갔다고 하시면서 저를 보니까 너무 대견하고 기쁘다고 응원을 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네요.”

권 부점장은 청각장애인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장애인이니까 안 돼. 느려.’ 이런 외부의 편견들이 장애인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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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를 딛고 스타벅스 올림픽공원남문점에서 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권순미씨(사진=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장애는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불편한 것이지, 마음과 능력에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속도가 더디고 느릴지라도 노력과 열정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느리고 답답해도 이해를 해주고 기다려 주는 배려를 부탁 드려요.”


권 부점장은 장애를 장점으로 극복해냈다. 카페라테를 만들 때 비장애인의 경우 소리로 우유스팀을 조절한다면 그는 미세한 진동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촉각을 활용해 라테를 만든다. 그만의 감각을 통해 부드러운 우유거품과 라테아트를 탄생시켰다. 지난해 2월에는 최고의 바리스타를 꿈꾸며 커피마스터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쟁쟁한 동료들 틈에서 당당히 부점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올해에는 점장으로 올라서기 위한 교육을 앞두고 있다. 권 부점장은 취업을 앞둔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을 사랑하려는 노력을 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타인의 평가에 자유로워져 자신의 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소극적인 마음으로 주춤거리지 말고 적극적인 마음과 긍정적인 자세로 먼저 도전하세요.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세요.”

권 부점장은 오늘도 외친다. “안녕하세요. 스타벅스입니다.” 그가 외치는 희망의 구호가 커피향기처럼 멀리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박준호 기자 ju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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