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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풍운의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23일 별세…‘3김 시대’ 종언

입력 2018-06-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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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별세
김종필 전 총리가 23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4월 김 전 총리가 서울 신당동 자택의 모습. (연합)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를 겪으며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렸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이른바 ‘3김 시대’의 한 축인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한 이후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정치사에 등장했다.

 

5·16쿠데타 세력 간 권력다툼으로 1963년 1차 외유에 나선 데 이어 1964년 ‘김종필-오히라 메모’ 사건, 1968년 3선 개헌 추진세력과의 충돌 등으로 고난을 겪었던 김 전 총리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리며 또 한 번 수난을 겪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4위에 그쳐 낙선했다. 다만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개 의석을 확보해 다시금 정치권에 복귀했다.

 

김종필 전 총리 별세
사진은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가운데), 김영삼 민주당(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악수하는 모습.(연합)

 

이어 1992년 대선에서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고,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를 지지했다. 김대중 후보의 당선으로 김 전 총리는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김 전 총리는 ‘국민의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써 명실상부 2인자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내각제 파동과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 앙금 등은 공조 파기로 이어졌고, 김 전 총리 역시 정치적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이후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10선 도전 실패와 함께 고작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참패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날 김 전 총리의 별세로 격변의 시기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온 3김 시대는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됐다.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김 전 총리의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예리씨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한국 정치사 거목,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
사진은 고 김 전 총리가 2015년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부인 박영옥씨 빈소에서 조문 온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대화를 하던 모습.(연합)

선민규 기자 su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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