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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디테일한 금융정책 펼쳐야

입력 2021-11-11 14:08 | 신문게재 2021-11-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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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거기엔 아름다움과 심오한 조화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다. 자연의 디테일 속에는 악마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악마는 디테일 그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편견과 배타 속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늘 시비가 되는 것이 바로 ‘디테일의 악마’다. 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88%에게 지급한다고 정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경계선상에 있어 혜택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악마’로 느껴질 것이다. 대개의 정책이란 것이 어떤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 안에 드는 경우 혜택을 주거나 제한을 가하는 형식이고 그건 정책이 가지는 본질적 한계다.

 

저소득층이나 저신용자를 위한 금융지원제도 또한 정책이란 점에서 같은 고민이 있다. 저금리나 정부보증 등으로 금융소외계층을 지원하는 정책금융상품에도 일정한 소득이나 신용기준 등이 있어 기준의 경계선에 있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도 그러한 경계선문제를 갖고 있다. 그나마 법원의 회생이나 파산면책 제도에서는 구체적 타당성을 살필 수 있다.

 

신복위의 채무조정을 잘 거쳐 변제계획에 따른 상환을 완료해 신용회복이 완료된 어떤 자영업자의 얘기다. 신용정보회사의 신용등급은 상향되었는데 개별 금융회사나 보증기관에 채무조정 기록이 남아있어 대출을 받지 못했다 한다. 신용등급이 높아져 정책금융상품 대상도 되지 못했다. 차라리 채무조정을 하지 않았으면 일부 정책금융상품 신청 대상은 되었다며 푸념한다. 이런 점은 가히 ‘디테일의 악마’라 할 수 있다.

 

저소득층에게 저금리로 대환 해 주면 일정부분 부담을 줄여주는 측면은 있지만 그렇다 해서 부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소득으로 채무 원리금을 일정기간 내에 상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본질적 해결이 될 것이다.

 

‘디테일’을 언급한 김에 한 가지 짚는다.한 사람의 삶 전체를 통관해 볼 경우 그 속에는 다양한 ‘디테일’이 있다. 기쁨도 있지만 고통과 좌절도 있다. 그러나 그 기쁨, 고통, 좌절 모두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빵 한 조각은 별 의미 없는 디테일이겠지만 장발장에게는 삶에 직결된 사태였다.

 

30만원이 없어 일주일 후에 50만원을 갚기로 하고 불법 사채업자에게 빌려 몇 번만 연체하면 ‘죽음의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소위 ‘30-50’대출인데 이자도 비싸지만 일주일 후에 갚지 못하면 이자가 원금이 되는 식이기 때문이다. 

 

민간기구인 더불어사는사람들은 평균 30만원을 빌려주는데 무이자·무보증이다. 지난 10년간 4500여명에게 16억을 대출해 주었다. 대손율은 3% 정도에 불과하다. 재원은 주로 기부금이다. 규모는 작아도 이 정도 기간의 성적이라면 성공적 모델이라 할 만하다. 하나의 예를 든 것이지만 민간이 자발적으로 자체 재원을 마련해 정부가 하기 어려운 ‘디테일’을 보듬고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정부 정책금융재원의 아주 작은 규모라도 이런 민간기구들을 통해 조금씩 소외된 부분을 어루만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편견과 배타로 디테일을 만연히 ‘악마’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디테일 속의 ‘천사’를 찾으려 노력하면 찾아지리라.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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