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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네 사람씩 희망을 그려드립니다"

[나이를 잊은 사람들] 크레파스 조각화가 목석애

입력 2015-0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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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크레파스가 유아용 그림도구라고 했던가. 여기 크레파스로 희망을 그리는 이가 있다.

‘하찮은 나무와 하찮은 돌이라도 사랑하면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다’라는 예명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며 사랑을 전하는 따뜻한 화가 ‘목석애(木石愛)’

 

‘크레파스 조각화’로 유명한 목석애(木石愛·58) 화백은 호스피스병동, 소년원, 푸르메재단 등을 찾아 죽음을 앞둔 환자나 꿈을 잃은 소년들의 모습을 그려준다. 

 

그가 이곳 저곳을 다니며 20년 동안 그린 캐리커처만 21700여개. 환자나 아이들뿐만 아니라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주친 사람, 본인과 만나는 이들이 종종 그의 모델이 된다.

 

목석애 화백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를 크레파스화한 작품(목석애 제공)


◇ 그림과 늘 함께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 그릴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미술에 대한 꿈은 놓지 않았다. 꿈을 이루고자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며 미대에 입학도 했지만 뻔한 것만 가르치는 교수들과 이상이 달랐던 그는 얼마 안 가 그만뒀다.

그 후 롤모델인 신동우 화백의 발자취를 따라 길거리 화가가 되어 계속 그림을 그렸다. 199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는 이를 통해 더 큰 그림 세상에 눈을 뜨면서 그의 그림 인생에 대한 확신은 더 커졌다.

◇ 투박한 크레파스가 그만의 화법으로 


사진 (2)
목석애 화백 그림의 기본재료인 크레파스.

 

크레파스. 다소 투박한 느낌의 미술도구라는 생각은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사라진다.

장인적 기교를 발휘한 그의 작품은 신비로움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 크레파스로 그린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치밀하다.

사실 크레파스는 매우 다루기 힘든 미술도구다. 유화처럼 덧칠이 쉽지 않으며 색감과 질감도 한계가 있다. 목 화백은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법을 찾아냈다. 종이 위에 크레파스를 여러번 겹칠한 후 칼날로 긁어내고 새기고 문질러 원하는 그림을 그려냈다.

처음부터 크레파스를 그림 그리는 도구로 사용하려했던 건 아니었다.

“아내의 생일이 다가와서 생일 선물을 해야 하는데 당시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그림을 선물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물감을 살 돈도 없었기에 비싼 물감 대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죠. 새 크레파스를 사지 못하고 어린이들이 내놓은 중고시장에서 어렵게 구한 크레파스로 탄생한 작품인데 아내가 선물을 받고 기뻐했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내에게 선물한 바로 그 그림이 크레파스 조각화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이때부터 목 화백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크레파스 조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 3시간씩 30명의 캐리커처…“한가족 같아” 


사진 (1)

그는 캐리커처를 그리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글귀를 그림 밑에 써 준다. 자신의 글귀로 위안을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한번은 혈액암으로 투병하는 남성에게 ‘나비처럼 훨훨 날아 많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글을 써줬는데 이를 본 환자의 아내가 통곡한 적이 있다. 목 화백은 “처음에는 그 상황이 어리둥절했지만 알고 보니 그날이 환자가 장기 기증서에 도장을 찍은 날이었다”고 설명했다.

목 화백은 “봉사를 나갈 때마다 3시간씩 20∼30명의 얼굴을 그린다”며 “얼굴을 그리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 애잔한 마음과 함께 한가족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희망을 그린다고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재능기부를 통해 자신이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죽음을 앞두고도 웃는 모습을 떠올리니 도저히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더군요. 매일 아침 집에서 나올 때마다 오늘도 네 사람 이상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자고 다짐합니다. 저의 작은 수고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힘들어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 “대안학교 설립으로 희망 전하고 싶어” 


사진

목 화백의 최종 꿈은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저 역시 힘든 시절을 겪었기에 제가 개발한 화법뿐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든 희망을 갖고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것처럼요.”

글·사진=조민영 기자 mine8989@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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