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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사실이 아니라는 거짓말

입력 2022-06-01 15:00 | 신문게재 2022-06-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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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검찰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새로운 정부의 인사청문회 후보자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할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어떻든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는 그나마 나은 경우다. 이 말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국민적 관심사가 된 만큼 소란을 일으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대놓고 거짓말하는 정치인들이나 장관 후보자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리도 뻔뻔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 ‘자기정당화’(Self-justification)다.

다수의 정치인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고 해롭거나 부도덕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의 결과가 사소하든 중대하든 “내가 틀렸다. 내가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결과를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낮을수록 어려움 또한 커진다. 바로 그 때문에 ‘빼박’ 증거 앞에서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거짓말 전략을 이용한다. 대표적인 세 가지 거짓말 전략을 살펴보자.

첫 번째 전략은 자기가 나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부도덕하다거나 처음부터 나쁜 의도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거짓말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데도 굳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건 발각되었을 때의 부담보다는 거짓말로 얻어지는 단기적 보상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의 거짓말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때 얻게 되는 보상을 보다 크게 느끼며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거짓말과 허위의 난무는 우리 사회가 단기적인 보상을 얻기에 적합한 환경임을 반증하는 셈이다.

두 번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면 마지못해 실수는 인정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전략이다. 이때는 유체이탈 화법이나 수동태로 말하는 신공을 발휘한다. “해서는 안 될 행동이지만 경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라며 여전히 좋은 의도였다는 걸 강조한 후 최악의 방법을 선택한 것에 대해 거듭 해명한다. 이러한 행동 역시 자기정당화에 빠져 후폭풍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세 번째는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방법으로 자기중심적으로 기억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거나 혹은 되도록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려 애쓰는 전략이다.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죄책감을 없애기에 급급해 관심 밖으로 밀어낸다. 중대한 사건부터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이르기까지 기억이 자기중심적으로 왜곡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예를 들면 기부금을 실제보다 더 많이 낸 것으로 기억하고 투표하지 않은 선거에서 투표했다고 기억한다.

바로 이 때문에 기억 연구자들은 니체의 다음 말을 즐겨 인용한다. “내 기억이 ‘내가 그것을 했다’라고 말한다.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라고 말하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기억이 굴복한다.”

기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허위 기억에 의지하면 자신을 용서하고 과실을 정당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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