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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주저앉는 일본, 부활하는 일본> 전창수 외

입력 2022-07-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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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해 일본의 우경화를 이끌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명을 달리 했다. 그의 죽음이 향후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일본을 연구하는 소장학자들이다. 고정되고 단면적인 일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함께 다양성과 다이내믹스가 존재하는 일본을 설명하려 책을 썼다고 한다. 그 의도를 100% 달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을 조금은 다른 종합적 시각에서 보고자 했던 노력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 역전된 한일간 경제지표 - 휘청이던 일본 경제에 코로나19는 치명타를 안겼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도 조금씩 줄어 들었다. 한국의 1인당 명목 GDP는 1990년에 일본의 25.5% 수준이었으나 2020년에는 78.6% 수준까지 좁혀졌다. 역전된 지표들도 있다.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는 2018년에 한국이 4만 3001달러로 일본(4만 2725 달러)를 이미 추월했다. S&P 등 세계 신용평가기관들은 일본보다 한국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에 일본의 대표 석학 노구치 유키오 히터스바시대 명예교수는 “일본이 한국에 G7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며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한일 역전의 배경에는 한국이 잘 한 것도 있겠지만 일본이 너무 못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 유치한 ‘국뽕주의’ 경계를 - 일본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이제 한국이 선진국이고 일본은 후진국”이라며 여론을 호도하는 유치한 ‘국뽕주의자’들이 있다. 우리의 최근 일본제품 불매운동 때문에 일본이 무역적자를 기록했다며 지나치게 비약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일본 무역수지가 이미 2011년부터 10년 이상 적자이거나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의 흑자만 기록해 왔다며, 우리 불매운동과 관계없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의 무역적자는 고착화되어 있었다고 비판한다.

* 성숙한 채권국 일본, 다음은? - 일본은행에 따르면 2020년 일본의 해외 보유 자산은 1145조 엔에 이른다. 부채 789조 엔을 빼면 순자산이 360조 엔에 가깝다. 무려 2조 1500억 달러 규모다. 영국 GDP보다 더 큰 규모의 금융자산을 해외에 보유한 셈이다. 덕분에 일본은 30년 넘게 대외순자산 1위 국이다. 한국도 4775억 달러에 이르지만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은 2011년 이후 ‘성숙한 채권국’이다. 생산비용 상승으로 자국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하락해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되는 반면 해외투자 증가로 소득수지 흑자폭이 커져 경상수지는 흑자를 보인다. 이 단계를 넘으면 ‘채권 붕괴국’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무역 적자가 확대되어 소득수지 흑자규모를 넘게 되고 그 결과 경상수지 적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기업까지 과잉저축 대열에 - 현재 일본은 ‘과잉 저축’ 상태다. 1991년부터 2005년에 걸친 불황기에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빚을 줄여나간 덕분에 자금부족 상태에서 자금잉여 상태로 전환되었다. 1999년부터는 가계와 기업이 모두 저축하는 주체로 바뀌었다. 2002년부터는 가계를 누르고 기업이 최대 저축 주체가 되었다. 1900년~2000년대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진 것은 이렇게 기업의 목표가 ‘이익의 최대화’에서 ‘채무의 최소화’로 바뀌면서 투자가 축소되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실제로 일본 기업 34만 곳 가운데 24.4%인 8만 4000곳이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아베노믹스 경기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저온 호황’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 가난한 나라가 되어버린 일본 - 2020년 기준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1인당 명목 GNI는 4만 1513달러로 세계 28위다. 1995년 4만 3495달러, 세계 6위에서 상당히 뒷걸음질친 것이다. 기업이 돈을 빌려 신규투자를 해야 소비도 살고 물가도 오르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는 열심히 빚을 내 정부지출을 늘렸고 결국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2021년 6월 국채와 차입금 등을 합친 일본 정부의 빚은 1220조 엔을 넘어섰다. 1인당 1억 원의 빚을 진 셈이다.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256%로, OECD 평균인 80%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빚 갚는 데만 매년 예산의 22.3%를 쓴다. 저자는 “최소 2050년까지는 일본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60대 이상이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70%를 보유한 점도 문제다. 주식 채권 같은 직접금융을 통해 성장자금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은행을 경유해 정부 부문으로 전부 흡수된다. 성장 없이 고령층이 보유한 저축만으로 연명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 ‘군사대국’ 꾀하는 일본 - 일본 사람들은 일본을 ‘대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라고 생각한다. 특히 군사대국이라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본의 2022년 국방예산은 5조 4005억엔(약 57조 원)으로 한국의 55조 2277억 원과 별 차이가 없다. 저자는 그러나 일본이 분명히 군사대국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평화헌법 개정 추진과 방위비 예산 증가, 미일동맹의 역할 변화, 일본 국내 여론의 변화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일본은 평화헌법 9조의 ‘전쟁 포기와 비무장’ 조항을 개정해 자위대를 군대로 격상시킨 후 자율적인 군사활동을 통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베 총리 재집권 동안 10년 연속 방위예산을 늘리며 ‘GDP의 1% 이내’라는 구조를 허물려 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빌미로 2% 까지 상향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일본 군사대국화의 명백한 한계 - 저자는 그러나 일본의 군사대국화 추진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한다. 첫째, 일본의 전체적인 국가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가 재정은 악화되고, 대학 연구기반은 위기 상황이며, 중국과의 경제력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둘째는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고령화와 소자화(저출산)다. 이는 경제성장 뿐 아니라 안보에도 커다란 제한 요소로 다가온다. 자위대 운용 인력의 절대 부족과 함께 군 인재 확보에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셋째, 평화국가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보수 세력의 핵무기 보유 혹은 ‘비핵 3원칙’ 재검토 논의를 많은 일본인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핵 알레르기’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국력은 쇠퇴하고 잠재 성장력은 둔화되고, 재정 파탄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군사대국을 통해 권력국가로 나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주장이다.

* 일본의 원자력 회귀, 왜? - 최근 원전 재 가동을 추진하면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으로 일본의 원자력 정책이 회귀하고 있다. 전력생산의 탈 탄소화가 중차대한 과제가 된 상황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원자력 에너지를 ‘그린 에너지’로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2021년 초 기준으로 일본은 46미터톤이 넘는 플루토늄과 0.6미터톤의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 수 천개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한국사람들은 일본의 원자력 회귀에 대한 미심쩍음이 남아 있지만, 저자는 5조 달러가 넘는 세계 3위 규모의 부자나라가 이제껏 누려온 것 들을 내려놓고 핵무장의 길을 선택할 것이란 생각은 근거가 매우 빈약한 ‘억측’이라고 일축한다. 특히 ‘세 개의 E(3E)’, 즉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 경제성(Economic efficency), 환경(Environment)의 기반 아래 일본이 에너지 정책을 펼치고 있음을 강조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안전 문제가 잠시 흔들렸지만 일본은 최근 안전(Safety)을 추가해 ‘3E+S’라는 개념을 내놓고, 이제는 에너지 자급률을 후쿠시마 이전(약 20%)보다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일본의 2030년 전원(電源) 구상은 석유 3% 미만, 석탄과 석탄가스 각 26%, 27% 안팎, 원자력 20~22%, 그리고 재생에너지 22~24% 선이다.

* 역사수정주의와 아시아 화해 사관 -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은 침략이 아니라 아시아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냉전이 끝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종식되자 일본 대표 우파단체인 ‘일본회의’는 일본의 전통과 역사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가치를 찾아냈다. 황실 존경, 헌법 개정, 명예 회복, 자부심 등이 새 가치가 되었다. 이런 역사 수정주의 관점에서는 과거 일본이 저지른 피해의 역사를 밝히고 교육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과 자긍심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우파 세력의 뒤에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있다. 그 반대의 역사 인식이 ‘아시아 화해 사관’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와 고노 요헤이 전 관장장관이 대표적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토대로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과 다름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도덕적인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불법’ 정도까진 아니었다는 것이다.

* 혼란스러운 아베의 역사 인식 - ‘국제질서사관’이 있다. 과거를 반성은 하지만 그 시기와 대상이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 외교에 국한된다. 아시아 국가들의 피해에 대한 책임의식이 더 희박하다. 무엇보다 1910년 한국을 강제 병합하고 식민지배한 것을 외교의 성공사례로 인식한다. 아시아 화해사관 사이의 공통점은 만주사변 이전의 일본 외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2013년 아베 총리는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역사수정주의자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런데 2015년 전후 70주년 행사 때는 정부 담화를 통해 “일본은 세계의 대세를 보지 못해 유교적경제적 경색을 힘의 행사에 의해 타개하고 또는 그 세력을 확대하려 했다”며 국제질서사관을 선택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반발이 따랐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정치적 행위였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역사수정주의가 미국 중심의 대외 전략 노선과 충돌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외정책적 필요에 따라 역사 문제에서 친미적 성향의 사관을 채용한 것일 뿐이었다.

* 일본의 새 의제 ‘국경낙도(國境落島)’ - 일본인들은 국경에 대한 인식이 거의 희박하다. 그런 일본에서 2013년 해양기본계획이 발표되었는데, 국경에 근접한 섬을 의미하는 ‘국경낙도’가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섬의 전략적 안보적 경제적 가치에 주목해 관련 법제도 정비가 강화되고,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예산 지원을 통해 변방의 무인도 섬들이 속속 국가 전략 요충지로 변모하고 있다. 도서지역의 인구 수를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재정적 지원도 뒤따랐다. 동아시아 해양 영토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갈등이 배경이었다. 독도 남쿠릴열도 센카쿠제도 갈등을 경험하면서 섬들이 주요한 영토로 인식되어 특별 관리되었다. 일본은 2000년대 이후 관련 주요 기관을 통합정비해 종합적인 해양관리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국민들 관심이 높지 않아 일본 정부는 섬을 직접 관리하는 지자체와 지역 주민 협의체에 대한 지원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 멈춰 있는 북·일 시계 - 2002년 9월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때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진전이 있었다. 2014년 5월에는 ‘스톡홀름 합의’로 북한이 일본인 납치피해자 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본은 대북 독자 제재의 일부 해제와 인적 왕래 규제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하며 해빙 무드가 조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 12월 일본이 유엔에 북한 인권 결의안을 제출하자, 북한은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북한은 일본을 제국주의·군국주의 국가이자 철천지 원수로 규정한다. 보천보 전투 등 항일무장투쟁을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의 중심으로 인식한다. 식민지배 과거사와 역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을 비난하면서 특히 자위대 실전화, 군사력 강화 등을 통해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을 책동한다며 반발한다.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관계개선을 더욱 어렵게 한다.

* 풀리지 않는 간극 ‘일본인 납치’ - 일본인 납치 문제에 관한 북한의 일관되고 공식적인 입장은 “이미 해결했다”이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납치 사실을 처음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2014년 스톡홀름 합의로 완전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다시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북한으로선 수령의 ‘무오류성’을 훼손하는 일이기에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귀환조치된 5명 외에 12명이 아직 미해결 상태라는 입장이다. 2004년에 북한이 보낸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임이 밝혀지면서 북한 불신은 극에 달했고 관계개선은 요원해 졌다. 저자는 북한이 식량 문제 등 경제정책과 코로나 방역사업을 정책 우선순위에 놓고 내치에 집중하다 보니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관계개선을 이루려면 북미 관계개선을 전제로 식민지 지배의 사죄와 배상, 역사 문제와 인권 문제, 일본의 대북 독자 제제 등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다룰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북한이 166차례에 걸쳐 490만 엔을 재일동포 자녀들에게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으로 지원했다는 점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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