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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설탕의 달콤함, 그 뒤에 숨은 제국주의와 디아스포라의 기원…‘정연두-백년 여행기’

입력 2023-09-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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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작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세대초상’ 앞에 선 정연두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과거 유럽의 단맛은 꿀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설탕이란 거를 아라비아에서 들여오기 시작한 시점부터 신대륙을 발견하고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과 설탕공장을 짓고 흑인들을 호텔에 데려다 일을 시키는 등 그런 이주 과정들이 있었어요. 사람을 이주시키는 농업의 역사인 동시에 가장 달콤하지만 아픈, 식민의 역사이기도 하죠.”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2024년 2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하 백년 여행기)에 대해 이렇게 전한 정연두 작가는 “어떤 뿌리가 이동돼 새로이 뿌리를 내렸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정연두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상상곡’ (사진=허미선 기자)

 

지난해 하와이 이주 역사를 작품으로 선보였던 정연두 작가의 새로운 ‘백년 여행기’의 토대는 멕시코 대농장주들의 대리인 존 G. 마이어스, 일본 이민 회사인 대륙식민합자회사와 일본인 다이조의 결탁으로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디아스포라다.

“하와이와 멕시코 이주의 공통점은 사탕수수, 애네켄(애니깽이라 불리던 용설란의 일종)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식물의 역사는 한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싼 노역이 필요했던 당시와 맞물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식물들을 유럽에서 키울 수 없어 신대륙을 찾아나서고 아프리카인들이 남미, 중앙아메리카 등으로 이주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야 말로 ‘비터스위트’(Bitter-sweet), 설탕의 달콤함 뒤에 숨은 아픈 역사다. 시각예술과 퍼포먼스, 공연과 영화, 다큐멘터리와 픽션, 개인과 사회 등을 접목하고 넘나드는 정연두 작가의 ‘백년 여행기’는 2022년 9개월여 동안 제주에서 생활하며 방문한 월령리 일대의 백년초 자생 군락에서 접한 설화에서 시작됐다.  

 

정연두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백년 여여행기-프롤로그’(사진=허미선 기자)

 

멕시코에서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제주에 뿌리를 내렸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백년초 설화, 그 식물의 이식에서 작가는 타의에 의해 뿌리가 뽑혀 멕시코에 자리잡은 한인들의 ‘이주’를 떠올렸다.

1905년 인천 제물포 항에서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 유카탄 주의 수도 메리다에 도착한 275가구 1000여명에서 시작된 한인 이주기 100년사를 다루는 이번 전시에서는 2022년작 ‘백년 여행기-프롤로그’를 비롯해 2023년 신작 ‘상상곡’ ‘백년여행기’ ‘세대초상’ ‘날의 벽’ 등 5작품을 선보인다.  

 

정연두 작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날의 벽’ 앞에 선 정연두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2년여에 걸친 3번의 멕시코 방문, 한인 이민 2~5세 후손들의 인터뷰, 과거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 촬영 등의 여정과 그 결과물이 사진과 영상, 텍스트와 사운드, 공연과 설치 등으로 담긴다.

애초 밧줄을 짜내던 에네켄, 멕시코에서 제주로 이주한 백년초의 서사를 담은 ‘백년 여행기-프롤로그’에 대해 정연두 작가는 “제주의 작은 작업실에서 (에네켄 농장을 형상화한) 미니어처 무대를 만들어 손으로 연기하는 이대열 배우가 에네켄에 얽힌 서사와 백년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정연두 작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백년 여행기’(사진=허미선 기자)

 

이외에 멕시코 이민 관련 텍스트를 기반으로 작가가 연출한 한국의 판소리, 일본 전통음악 기다유(분라쿠), 멕시코의 마리아치, 당시 ‘황성신문’에서 멕시코 이주를 부추기는 광고가 4개 채널에서 동시에 플레이되는 ‘백년 여행기’, 마주보는 두대의 대형 LED 패널에서 일명 ‘애니깽’ 후손들의 부모·자식의 모습을 대칭시키는 ‘세대 초상’, 설탕 뽑기 형태의 다양한 세계 마체테(농기구) 모양 오브제가 즐비한 ‘날의 벽’도 만날 수 있다.

‘날의 벽’은 디아스포라의 어원적 원류인 유태인들의 ‘통곡의 벽’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살탕의 달콤함과 제국주의·디아스포라의 기원이 되는 설탕의 정치학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이 앞에서는 9월 20일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서경식 명예교수 강연, 10월 4일과 11일에는 ‘날의 벽’을 주제로 4명의 클래식 작곡가가 작곡한 4곡의 연주가 진행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정연두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상상곡’(사진=허미선 기자)

 

정연두 작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백년 여행기-프롤로그’(사진=허미선 기자)

 

정연두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날의 벽’(사진=허미선 기자)

 

정연두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 중 ‘백년여행기’(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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