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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PFF2020]문성근 이사장 "통일되면 세계 5대 강국 도약 시간문제"

올해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 중 처음으로 오프라인 개막식을 연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직장인,배우,시사MC,정치인,그리고 영화제를 맡기까지
"부친이 쓴 '문익환 평전'다시 꺼내든 이유는......"

입력 2020-06-2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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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서의 영화제를 통해 진정한 평화에 대한 창구를 이어가고 있는 문성근 이사장.(사진제공=PIPFF)

 

“만약 통일이 되면 5대 강국에 들 수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분단의 비극이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그들의 이익을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올해로 2회째는 맞는 그리고 문성근 평창국제평화영화제(평창영화제) 이사장은 고인이된 아버지 문익환 목사의 평전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고 했다.통일운동가였던 부친은 당시 정권의 핍박을 받았고, 자신 역시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에 오랜 기간 올라 불이익을 당했다. 그가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화제를 맡은 건 어쩌면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작년에 강원도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간 20년이 넘은 부산국제영화제에도 관여를 안 할만큼 ‘영화제=행정업무’란 인식이 있었거든요.그런데 동계올림픽을 통해 평창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상태였고,제가 그동안 구상해왔던 문화교류로서의 남북 접촉 ‘창구’가 맞물린거죠. 올해부터는 ‘남북’대신 ‘국제’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영화제의 이름을 짓는 건 제 아이디어가 한 몫했죠.”

최근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영향으로 무관객 영화제가 속출하고, 남북 경색이 심화된 와중에서도 영화제를 열기엔 쉽지 않았다. 지난 1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가장 영화적인 사건”이다.지난해 평창남북평화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제1회 행사를 의미 있게 치른 평창영화제는 올해 평창국제평화영화제로 이름을 바꾸고 개최 시기도 한국전쟁 발발 시기인 6월로 변경했다.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 중 처음으로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개막식을 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벌여놓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와 한일 위안부 합의등을 보면서 아버지의 책을 다시 읽었죠. 그제서야 ‘1989년에 왜 평양을 가셨을까?’에 대한 답이 보이더라고요. 책의 구절마다 정교한 이야기가 오고 간걸 느낄 수 있어요. 아버지가 김일성 주석을 만나 ‘굳이 우리가 나뉘어 져 있을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대화’를 하셨더라고요. ‘통일’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남과 북의 무역 장벽을 완화, 국가의 연합적인 면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거죠. 물론 하나의 정권으로 가는건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럼에도 통일은 대한민국이 세계 5대 강국으로 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은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 그리고 ‘노사모’(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활동,민주통합당에 들어가 정치활동을 하면서 ‘배우’와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그의 뿌리는 무대였다. 극단 연우무대를 통해 데뷔 후 영화 ‘경마장 가는 길’,’‘그 섬에 가고 싶다’,‘101번째 프로포즈’,‘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등에 출연하며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최근 2년 간은 드라마로 6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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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에서의 문성근 이사장과 방은진 집행위원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사진제공=PIPFF)

 

“솔직히 외화는‘매트릭스’때부터 안 본 것 같아요.블랙리스트의 영향도 있었지만 배우활동중 유독 영화쪽 제안이 뚝 끊겼어요. 시간이 흐르고서는 ‘내가 지금 출연하는게 맞는건가’라는 노파심이 들 정도로 다양성이 실종된 상태더라고요. 물론 나이도 들고, 드라마를 통해 악역이미지도 얻고, 분량이 줄어드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영화판이 재미 없어졌달까.”

영화계 고참이기도한 그는 그렇다고 꼰대스런 입장을 고수하지도 않았다. 문이사장은 “문화가 갖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한 것”이라면서 “작품으로 손해보지 말고, 돈을 벌어야 한다.단지 작품이 사회적,기능적인 요소도 신경써야 하는데 요즘 너무 획일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일침했다.

그는 오랜 시간 한국이 유교국가로 ‘선비의식’에 사로잡힌 시간을 예로 들며 “공동체 의식에 가장 앞서 있으면서 남의 평가에 예민한게 바로 ‘선비’다.전세계 어디서도 이렇게 헌신하고 투쟁하며, 그 원동력으로 성공을 이끈 민족이 드물다”라면서 “우린 이미 코로나19의 대응책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의 선진국화를 알린 상태다. 후배들이 자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돌아보면 1989년부터 2010년까지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극복할 최적기였다는 생각도 듭니다.그럼에도 우리가 갖춘 자본과 기술의 힘을 믿고,남북의 갈등구조를 깨고 정신적인 자유를 누린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고 봐요.”

평창=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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