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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활활 타오르다 연기처럼 사라진 인류의 흑역사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트래비스 엘러버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입력 2023-09-02 07:00 | 신문게재 2023-09-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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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영욕(榮辱)의 현장이었다가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불가사의한 40곳’을 소개한 책이다. 애초부터 사라질 운명이었거나, 세상의 변화에서 도태되었거나, 시간의 무게에 그대로 잠식된 곳들이다.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장소들의 지명사전이자 우리가 잊고 내버려둔 추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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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상수시 궁전

 

◇ 독재자 영웅의 꿈 ‘아이티 상수시 궁전’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는 지금도 정치 부패와 조직 폭력이 만연하다. 아이티의 전설적인 건축물이 ‘근심 걱정이 없는’이라는 뜻을 지녔던 ‘상수시 궁전’이었다. 아이티의 왕이자 혁명의 영웅 ‘앙리 크리스토프’가 거처하던 곳이다.

크리스토프가 가장 집착했던 프로젝트가 ‘요새 궁전’을 짓는 것이었다. 1810년에 공사 시작 직후에 그는 앙리 1세로 즉위했고, 이 궁전을 서인도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로 짓길 원했다. 하지만 공사는 길어졌고, 왕은 독재자로 변해 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수시 궁전은 1842년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도저히 복구가 어려운 처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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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도 제도의 아름다운 작은 섬 ‘몬트세랫’

 

◇ 마이클 잭슨의 녹음 스튜디오 ‘폴리머스’

1980년대 록과 팝 음악 팬들은 ‘몬트세랫’을 기억할 것이다. 서인도 제도의 작은 이 섬에 1979년 ‘AIR 스튜디오’가 들어섰다. 비틀스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녹음 스튜디오였다. 앨튼 존과 마이클 잭슨, 듀란 듀란, 다이어 스트레이츠 같은 유명 가수들이 이곳을 찾았고 1989년 봄에는 롤링 스톤스가 ‘스틸 휠즈’를 제작했다. 이 앨범이 AIR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마지막 음반이었다.

그 해 9월 허리케인 ‘휴고’가 섬을 참혹하게 망가뜨렸다. 섬 전체 건물의 85%가 파괴되었다. 1995년 7월에는 35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수프리에르헬스 화산이 폭발했고 한 달 후에도 격렬한 두 번째 분출이 있었다. 1997년에는 더 강력한 폭발이 이어져 몬트세랫의 수도 플리머스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 영화 007 속 명소 그곳 ‘크라코’


이탈리아 바실리카타 지역의 ‘크라코’는 해발 300m가 넘는 점토와 바위 언덕 꼭대기에 들어선 중세 마을이다. 남북의 강 사이에 위치한 덕에 농업 도시 겸 군사 정착지로 번성했다. 하지만 끊임 없는 가뭄과 기근, 홍수, 지진에 시달렸다. 1956년에는 전염병까지 돌았고 1963년에는 격렬한 지진이 강타했다. 1040년에 노르만인들이 지었던 요새 건물은 이제 텅 빈 건물 잔해만 남았다.

아름다운 이 마을은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라는 영화 덕분에 1979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2008년 제임스 본드 영화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일부가 이곳에서 촬영된 이후부터 건축물 보호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지질적으로 너무 불안정하고 지진과 산사태 위험이 여전해 현재는 커다란 스크린 속 배경으로 등장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웨스트피어
골격만 앙상하게 남은 웨스트피어.

 

◇ 날개 잃은 바다 위 나비 ‘웨스트피어’

17세기 말에 “바닷물이 통풍치료제”라는 헛소문이 돌면서 영국 남부의 평범한 어촌 브라이트헬름시가 사치스런 해안 휴양지 ‘브라이턴’으로 다시 태어났다. 1823년에 이곳 최초의 부두인 ‘체인피어’가 지어졌고 1869년에는 주철 기둥 위에 400m짜리 구조물을 올린 고급스런 바다 위 산책로 ‘웨스트피어’가 세워졌다.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바다 위 나비’라는 극찬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검증되지 않은 건축 방식이었다. 하지만 곡선형 주철 벤치에 2000명이 앉을 수 있고, 무굴제국 건축 양식을 흉내 낸 로열 파밀리온과 동양풍 키오스크를 갖춰 연간 방문객이 60만 명을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태풍과 불안정한 구조에 2003년의 방화 사건까지 더해져 운명을 다하게 된다.



◇ ‘일본의 하와이’ 하치조로열 호텔


일본 도쿄에서 287㎞ 떨어진 섬 ‘하치조지마’는 목가적인 아열대 화산섬이다. 무성한 녹음에 바다는 맑고 푸르다. 오키나와나 하와이까지 갈 필요없이, 열대에서 짧은 휴가를 즐기기에 이상적인 곳이었다. 1964년 전까지 일본 당국이 휴가를 국내에서 보내라고 명령한 덕분에 ‘일본의 하와이’로 널리 사랑 받았다.

1963년에는 바로크 양식의 하치조로열 호텔도 호화롭게 세워졌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분수로 꾸민 정원은 베르사유 궁전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이 점점 부유해지고 해외여행이 쉬워지면서 태양과 서핑을 찾는 사람들은 ‘진짜 하와이’를 찾게 되었고 이곳은 2006년에 문을 닫게 된다.
 

니코시아
전쟁의 참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니코시아 국제공항 내부.

 

◇ ‘아프로디테의 탄생지’ 니코시아 국제공항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키프로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곳이다. 동·서양의 교차로이자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가 만나는 매혹적인 땅이다. 모래사장 바닷가에서 1년 중 300일 이상 햇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 섬의 1만 년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정복과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수도 서쪽에 1930년대에 지어진 니코시아 국제공항은 가장 생생한 증인이다.

키프로스는 1960년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1974년 그리스와 튀르키예 민족 간 긴장이 끝내 폭발했다. 그리스 민족주의 진영이 쿠테타를 일으키자 튀르키예가 무력 침공했다. 공항 관제탑과 이착륙장도 폭격을 당했고 결국 UN 군이 개입해 비무장 완충 지대인 ‘그린 라인’을 설정했다. 하필 공항은 그 한 가운데 위치했다.



◇ ‘카멜롯의 저주’ 카멜롯 테마파크


영국에서 ‘아서왕’은 전설이다. 앵글로색슨 침략자를 물리치려 12차례나 전투에 나선 강력한 전사로 그려진다. 랭커셔 주는 왕의 충성스런 기사였던 랜슬럿이 그곳에서 성장했다는 구전을 바탕으로 1983년 테마파크 ‘카멜롯’을 세워 ‘마법 왕국 카멜롯’이라 홍보했다.

관광객들은 멀린의 마법사 학교에 입학하거나 뤄터래프팅 기구를 타며 스릴을 즐겼다. 한창 때는 한 해에 100만 명이나 찾았다. 하지만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경축 행사 유치전에 실패하면서 다시는 문을 열지 못했다. 근처 고속도로에서 보이던 카멜롯의 상징 ‘롤러코스터’ 마져 2020년 2월에 마지막으로 분해되었다.

 

헤군기지
발라클라바 잠수함 기지 외부

 

◇ 크리미아 전쟁의 흔적 ‘발라클라바 잠수함 기지’

1853년부터 1856년까지 크리미아 반도에서 유럽 연합군과 러시아간 크리미아 전쟁이 벌어졌다. 당시 혹독한 겨울 추위를 피하려 눈과 입 구멍을 제외하곤 머리 전체를 덮는 양모 모자 ‘발라클라바’가 크게 유행했다. 그 이름을 딴 지역이 냉전 시기에 소련의 극비 잠수함 기지로 쓰였다.

1957년에 소련은 산 밑으로 120m를 파 핵 추진 잠수함을 최대 9기까지 정비할 터널 공간을 구축했다. 소련이 해체되어 반도가 우크라이나로 넘어간 후에도 기지에는 잠수함이 주둔했다. 1993년 기지가 퇴역한 후 우크라이나는 이곳에 2003년부터 박물관을 열어 대중에 공개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다시 반도를 합병하면서 러시아 국방부가 통제하면서 푸틴의 초상화가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 열차의 무덤이 된 ‘우유니 소금사막’

19세기 말에 불리비아를 착취했던 영국은 칠레 북부에서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를 잇는 철도를 건설했다. 광대한 소금 평원 ‘살라르데 우유니’의 우유니 역은 비료와 폭약 원료였던 초석이나 질산나트륨을 실어 나르는 요충지가 되었다. 이 주변을 차지하려는 전쟁 끝에 볼리비아는 칠레에 져 핵심광물지인 이곳을 잃어 ‘영해’ 없는 내륙국가가 되었다.

볼리비아는 이후 칠레와 협정을 맺고 1889년 해발고도 최대 3962m의 산악지형에 철도를 부설했고 우유니는 다시 신흥 도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직전, 초석을 대체할 인공 질산염이 개발되면서 이 지역은 급격하게 쇠퇴한다. 우유니에서 1.6㎞ 정도 떨어진 외곽에 막다른 철도와 녹슨 증기기관, 텅 빈 무개화차와 객차 등 한 때 철도 전성기의 자취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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