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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예술 작품은 죄가 없다

입력 2023-09-18 14:03 | 신문게재 2023-09-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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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4세기 수도회 창설자 아우구스티노가 설파했다는 이 경구는 용서, 관용과 관련해 종교적 또는 철학적으로 다양한 의미와 해석을 낳고 있다.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기에 죄 저지른 자를 막상 용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이는 영화 ‘넘버3’ 대사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정말 X같은 말장난이지.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X같은 00들이 나쁜 거지.”

임옥상 작가의 여직원 강제 추행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로 시끄럽다. 서울시가 일본군 위안부 추모 공원 ‘기억의 터’에 설치된 임 작가의 작품 2개(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를 포클레인, 대형트럭까지 동원해 2시간만에 전격 철거했다. 그 동안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등 여성 단체의 반발로 철거가 지체되자 새벽부터 007작전처럼 경찰이 출입로 5곳을 통제해 기습 철거에 성공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반발이고 누구를 위한 철거인가?

최영희 전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장의 입장에 귀기울여 보자. 최 위원장은 임 작가의 유죄 선고가 내려지자마자 분노하면서 기억의 터 누리집에서 임옥상의 이름을 지우자고 서울시에 연락했다. 하지만 그는 포크레인의 철거작업을 막으려 했다. 절차적·실체적으로 철거는 옳지 않다는 이유다. 서울시가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약속을 어겼으며 무엇보다 “임옥상만의 작품이 아니다”라는 점이 중요했다. 많은 시민들도 모금에 동참했고 다른 여성작가와 피해자들의 증언, 의사가 반영된 ‘집단 창작물’이기 때문에 임옥상 개인 비리만으로 철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철거는 그만큼 단순하지 않은 과정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가 찬양했던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 가곡이 지닌 음악사적 가치는 폄하될 수 없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바닷가 공중폭격장면에 바그너 ‘발퀴레의 기행’보다 더 어울리는 음악이 있을까?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The Who의 피트 타운젠드는 한때 아동포로노 소지 혐의로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작곡하고 연주한 록넘버들은 아직도 그의 공연장 뿐 아니라 드라마 ‘CSI’ 주제가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죄인의 죄는 한없이 미워해도 죄인의 작품은 그 죄와 분리해 바라본 결과가 아닐까? 모차르트, 카르바조, 피카소 등 그 옛날 예술가의 사생활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그들은 인권의식도 법률도 허술하고 미디어, SNS도 없던 시절에 요리조리 그물을 피해갔는지 모른다.

임옥상의 성추행 범죄를 비호해서는 당연히 안된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여성 인권 범죄를 차별적으로 대했던 여성단체들의 모순도 혐오스럽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예술적 가치와 상관없이 예술가 개인의 상황에 따라 철거·삭제되는 황당함은 분명 잘못됐다. 오늘 추앙받던 예술 작품이 내일 갑자기 나락에 떨어지는 비극을 시스템적으로 막아 보자. 적어도 공공기관이라면 법률이나 내부지침으로 철거에 대한 요건을 사전에 세세하게 마련해야 한다.

죄가 미우면 사람도 밉고 그 사람 작품도 꼴보기 싫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예술가는 사라져도 예술은 영원하다. 예술가 아닌 예술을 감상하고 존경하자. 아무리 죄가 미워도 다시 한번.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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