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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지금 우리의 극단적인 근미래 그리고 희망 ‘슈뢰딩거의 소녀’

[책갈피] ‘슈뢰딩거의 소녀’

입력 2023-11-13 18:00 | 신문게재 2023-11-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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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자키 유리의 SF단편소설 모음집 '슈뢰딩거의 소녀'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다룬다(사진=픽사베이)

 

65세가 되면 8개월 안에 죽게 되는 ‘예순다섯 데스’부터 수학이 금지돼 이를 위반하면 사형에 처해지는 왕국에 떨어진 명문고 재학 소녀 이야기 ‘이세계 수학’, 이런저런 이유로 자취를 감춰버린 꽁치 맛 재현을 위해 연대하는 ‘꽁치는 쓴가, 짠가’, 세상에서 사라져야할 존재가 돼버린 비만인들의 서바이벌 게임과 연대를 다룬 ‘살 좀 찌면 안되나요’, Z 바이러스 팬데믹을 맞은 도시 이야기 ‘슈뢰딩거의 소녀’ 그리고 제물 풍습이 남아 있는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펜로즈의 처녀’까지.

 

근미래의 니폰, 도키오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들은 어쩌면 진짜 우리의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른다. 남녀, 보수와 진보, 국가 간, 세대 간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며 혐오와 불통으로 점철되는 사회가 심화된다면 마쓰자키 유리의 SF단편소설 모음집 ‘슈뢰딩거의 소녀’ 속 디스토피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환경파괴, 식량부족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세운 65세면 죽어야 하는 정책과 반드시 이루고 싶은 걸 적은 ‘65 리스트’ 존재하고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는, 죽음의 공포를 전문적으로 치유하는 불법의사도 존재한다.

수학을 금지하다 못해 사용자에게는 사형까지 시키는 왕국은 수학점수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겐 천국일까. 비만율 억제를 내세워 정권을 잡은 국민건강증진당이 뚱뚱하다고, BMI 수치가 높다고, 의료비에 부담을 준다고 해고하는 데서 더 나아가 죽이기 위한 ‘다이어트왕 결정전’이라는 대국민 이벤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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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소녀|마쓰자키 유리(사진제공=빈페이지)
좀비를 연상시키는 Z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와 인간의 곁을 지키는 경호AI ‘프렌드 아이’, 사람을 제물 삼는 콩데이 섬 등 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세상은 극단적이다. 사라진 꽁치 소금구이 맛을 재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소녀의 이야기 ‘꽁치는 쓴가, 짠가’ 속 세상은 애교 수준이다.

사실 굳이 미래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불거지고 심화되는 나이든 이들과 젊은 사람들의 갈등, 비만을 혐오하는 눈길, 본질은 보지 않고 점수와 경쟁으로만 점철된 일들, 굳이 수학이 아니더라도 진정 원하는 것에 눈 감아야 하는 현실, 환경파괴 등으로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들, 점점 잦아지는 바이러스 팬데믹 등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다.

그에 대처해 노인의 일괄 사망, 합법적인 혹은 게임처럼 즐기는 비만인 살해, 일촉즉발의 생존게임 등 극단적인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슈뢰딩거의 소녀’ 속 디스토피아로 갈 출발선에 우리는 이미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디스토피아’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우중충함이나 칙칙함, 기계적인 차가움, 인간성을 상실한 비정함, 우울감 등은 다소 덜하다. 오히려 핑키시(Pinkish)하고 때로는 유쾌하며 가볍고 단순하며 또 어떤 때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현실의 부조리를 닮았다.

그래서 양자역할을 바탕으로 한 다세계 이론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odinger‘s Cat) 가설이나 인간과 교신이 가능한 지적 외계생명체 문명의 수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 보통은 증명 보다는 암기로 알고 있는 이차방정식 등을 소재로 함에도 일상적이며 온기가 돌며 희망적이다.

그렇게 작가는 꽤 있을 법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지금의 문제를 비틀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핵심은 연대와 용기다. “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라던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던 무라사키는 죽기 1년 전 자신을 닮은 사쿠라를 만나 후계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애쓰다 희생한다.

스스로가 좋아서가 아니라 항상 수학 만점을 맞는 옆자리 남학생 다니야마와 같은 학교에 가고 싶어 암기가 통하지 않는 어려운 수학문제만 출제되는 명문 기요토대학 진학을 꿈꾸던 에미는 수학이 금지된 왕국에서의 경험으로 수학을 좋아하게 되고 진학 보다는 진짜 좋아하는 것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더불어 말도 안되는 대국민 이벤트로 비만인을 죽이려는 정부에 대항하는 리바운드·못타이나이·야케구이의 눈물겨운 연대가 촉발시킨 정권퇴진, 사라진 꽁치 소금구이 맛을 재현하는 소녀·증조할머니·숯쟁이 그리고 촉각 재현 AI 등의 의기투합 등에는 본질을 꿰뚫고 삶을 온전히 나로서 살아내는 데 유효한 메시지들이 담겼다.

그렇게 ‘슈뢰딩거의 소녀’는 SF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지금의 사회 현상과 문제들을 반영하고 근본적으로 질문하게 한다. 유난하지 않지만 유니크하게, 슬프지만 유쾌하게, 차갑지만 온기가 돌게, 얼토당토 않지만 동화처럼 천진하게 그리고 때로는 사랑스럽게.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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