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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 예스맨의 눈물 上] '거절 없는' 승무원 삶…마음의 병으로

전체 직업 중 감정노동 심각도 '최고'
항공업계 정상화되며 기내 소란행위 증가
무리한 요구지만...매뉴얼상 거절 못해
"스트레스 줄일 방안 본격적 고민해야"

입력 2023-11-30 06:43 | 신문게재 2023-11-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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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김포-하네다 항공노선 운항이 재개되며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에서 항공사 승무원들이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자주> 엔데믹 이후 항공사 국제선 여객사업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노선 재개로 승객이 늘자 항공사들도 인력 확충에 나섰다. 대표적인 직군이 객실 승무원이다. 이들은 항공사 전체 인력 중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부푼 꿈을 안고 승무원이 됐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진상 승객들이 상당해서다. 여객 수가 회복되면서 기내 소란행위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객실 승무원들의 노동강도는 덩달아 심해졌다.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이들은 항공사가 정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항공사 객실 승무원이 처한 현실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퇴근 후 웃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시간의 비행 동안 진상 승객을 상대하고 나면, 몸에 수분이 하나도 남지 않은 느낌이었다.”

대형항공사에서 7년 동안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했던 A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다시 웃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저서 <관리된 마음>에서 ‘감정노동’이란 단어를 소개했다. 많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표정이나 몸짓을 만들기 위해 감정을 관리하는 일을 뜻한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일이 다반사인 서비스직들은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직업이 항공사 객실 승무원이다. 우울증,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등으로 고생하는 승무원이 많다는 게 전·현직 승무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승무원 감정노동 실태

항공업계에 혹독한 시간이 지나고 정상화에 성큼 다가서면서 항공사 직원들의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국회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회복되면서 기내 소란행위가 꾸준히 증가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은 133건, 2021년 85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객사업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던 2022년에는 264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252건의 불법행위가 발생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기내 흡연이 1804(81%)건으로 가장 많았고, 폭언 등 소란행위 204건(9.14%), 성적수치심 유발행위 79건(3.54%) 순이었다.

객실 승무원은 대표적인 서비스직이다. 특히 ‘고객 중심주의’가 강한 직업 특성상 근로자들의 감정소모가 상당히 높다.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2014년 말부터다. ‘땅콩회항’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정신건강 보호에 대한 요구는 높아졌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3개 직업의 종사자 5667명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수행 정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항공사 승무원이 심각도는 5점 만점에 4.7점으로 가장 높았다. 고객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줘야 하는 서비스직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기내와 공항 곳곳에서 YES맨이 돼야 하는 승무원들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하늘 위 YES맨, 위협받는 정신 건강

“라면 물이 너무 많다, 물이 너무 적다, 면이 너무 익어서 못 먹겠다는 컴플레인을 연달아 받으면서 라면을 계속 조리했다. 조리 가능한 마지막 시간까지도 그 승객은 재조리를 요구했다.”

대형 항공사에 근무 중인 승무원 B씨는 경력이 승객의 무리한 요구에도 YES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회사 매뉴얼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에서 ‘NO’를 외칠 수 없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베테랑 승무원임에도 이런 상황은 익숙지 않다는 것이 B씨의 설명이다.

저비용항공사(LCC)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LCC에서 3년 차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C씨는 “LCC의 경우 조금만 지연돼도 대형항공사와 비교하며 폭언을 일삼는 승객들이 상당히 많다”고 설명한다. C씨는 “이래서 싼 거 타는 게 아닌데 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으면 비수가 돼 꽂힌다”며 “그런 말을 듣고 퇴근한 날은 자존감이 떨어져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토로했다.



◇업무 환경 개선돼야

코로나19 이후 항공사들은 채용 열풍이 쏟아지고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팬데믹 시기 채용이 없었다 보니 최근 채용 경쟁률은 100대 1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객실 승무원이 됐지만, 감정노동으로 인한 문제들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많은 지원자들이 실망하고 있다.

항공사 취업을 준비 중인 윤승연(가명·22)씨는 “먼저 꿈을 이룬 (대학)동기로부터 승객으로 인한 비행 스트레스가 상당하니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평생 승무원을 원했고, 학교도 그에 맞춰 항공운항과를 진학했기 때문에 일단 도전은 지속할 거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항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과한 요구를 원하는 승객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지만, 서비스 기대치가 높은 항공산업 특성상 직원은 입 밖으로 거절의 뜻을 꺼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며 “여전히 승무원이 인기 직종이고, 항공산업 회복으로 승무원 수도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일 방안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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