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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영화 '서울의 봄' 대박이 불편한 이유

입력 2023-12-07 06:31 | 신문게재 2023-12-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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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석 산업IT 국장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서울의 봄’이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달리는 등 초반부터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람객이 500만 명을 넘겼을 정도다. 벌써부터 BTS나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 전성시대’ 계보를 이을 대작이란 평가가 나온다.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전부터 주목 받았던 이유는 초호화 캐스팅 외에도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1979년 12·12 사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상징성이 컸다. 어두웠던 현대사를 경험하지 못한 MZ세대에게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의 봄’ 흥행 성적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런데 누적 관람객 숫자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를수록 더 큰 공허가 밀려오는 것은 왜 일까. 역사를 다룬 영화가 성공작으로 평가 받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진실 규명이 필수다. 롱런하는 예술(영화)은 언제나 진실(역사)과 한 몸 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12·12 군사 쿠데타와 이듬해 광주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 이른바 5공과 6공을 거치면서 12년간 집권하게 됐다. 묘하게 반복된 숫자 ‘12’는 검찰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우리 근현대사에 어두운 부분으로 남게 됐다.

특히 광주민주화 운동은 여전히 진실 규명이 미흡한 상태다. 그 시발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 서술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운동은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하면서 시작 됐다’고 기록해 역사 왜곡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어 전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회고록을 출간해 (광주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써야 했던 대한민국 군인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정리해 공분을 샀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런 비난에도 불구, 그나마 대중들이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부분은 노 전 대통령 남매의 역사와의 화해와 치유의 행보였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지난 2019년 8월 광주묘역을 처음으로 찾아 부친을 대신해 참배했다. 그해 12월에는 광주 ‘오월 어머니집’을 찾아가 진실 규명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공개했다. 노 변호사의 누나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도 2019년 12월 전남대 병원에 1000만원의 성금을 냈다. 당시 국민들은 부친을 대신해 광주와 역사의 상처를 끌어안으려는 노 남매의 행보에 의미 있는 박수를 보냈다.

가장 마뜩잖은 부분은 노씨 남매가 2019년과 2020년 반짝 주목을 받은 뒤 그 어떤 진실 규명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노재헌 변호사는 지난 2021년 5월 광주를 방문,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공연을 관람하다 관객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퇴장했다. 진정성을 상실한 탓이다. 한 대를 더 건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는 지난 3월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광주를 방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족에게 거듭 사죄했다. 당시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던 전씨의 행동을 고려, 1만명 이상 명의의 선처 탄원서가 재판부에 접수됐다.

진실 규명을 갈망했던 광주 시민을 포함한 국민들은 두 전직 대통령의 자녀와 손자의 행동에 실낱 같은 기대를 걸었으나 실망만 커진 꼴이 됐다. 굳이 믿고 싶지 않지만, 노재헌 변호사가 부친을 대신해 사죄한 것을 노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꼼수로, 전 전 대통령 손자는 자신의 마약 투약 혐의 선처 전략으로 보는 불편한 시각도 존재한다. 노씨 남매와 손자 전씨가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앞에는 영화에 앞서 광주 시민들과 역사 앞에 내 놓은 분명한 선약이 있다. 그저 약속을 지켜 화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실마리만이라도 남겨주면 된다. 매섭고 쓰라린 상흔 조차 우리가 오롯이 품고 가야 할 역사의 흔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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