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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횡재세와 횡재(橫災)

입력 2023-11-22 06:15 | 신문게재 2023-11-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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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석 IT·산업국장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이 된 윌리엄 3세는 반란 진압에 많은 돈이들자 호화주택에 세금을 부과했다. 처음에는 벽난로 유무로, 그 뒤에는 창문 수가 기준이 됐다. 이내 주택엔 창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창 없는 집들이 나타났다. 지금도 유럽 고택에 창 없는 집이 많은 이유다.

1698년,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는 수염을 후진국의 상징으로 봤다. 강대국이 되기 위해 귀족들에게 수염 자를 것을 명령했다. 오랜 풍습이고 러시아정교가 중시하던 상징 이었으니 쉬울 턱이 없었다. 결국 세금 카드를 뺏다. 이른바 수염세 였다. 이 세금은 예카테리나 여제 때 폐지됐다.

1700년대 중반,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는 이렇게 탄식했다. “Nothing is certain but death and taxes.”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세금과 죽음 뿐 이라고….

오죽하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엮은 경전, 논어 조차 ‘가혹한 정치(무리한 세금 징수)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고 했을까. 세금은 사람들에게 옳든, 그르든 관습은 물론 생활양식까지 통째로 바꿔버리는 엄청난 물리력이다.

이런 세금이 요즘엔 ‘바람에 날아온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windfall tax)’이란 의미의 횡재세로 부활했다. 국민 주머니를 파먹던 세금이 기업의 주머니를 비집기 시작한 시기다. ‘횡재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으로 떼돈을 번 군수품 생산기업이 대상이었고 1980년대 석유회사로 번졌다. 현재도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자 상당수 유럽 국가에서 횡재세를 메기고 있다. 목적은 전쟁의 참화가 만든 극단적 침체와 불평등 해소였다.

그런 횡재세가 국내에서도 논란이다. 올 초 정유업(SK·GS·오일뱅크·에쓰오일)에서 불거진 횡재세가 금융업으로 판을 키워가고 있다. 3분기까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누적 이자이익이 30조원을 넘기면서 눈치 없는 ‘성과급 파티’까지 벌였다. 급기야 윤 대통령이 ‘은행 종 노릇’이란 자극적인 표현에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은행권은 소상공인과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는 가운데 고금리를 틈타 막대한 이익을 거뒀고, 임직원들이 나눴다. 은행권의 특성상 초과 이익이 났다면 사회 취약계층과 나눴어야 마땅했다. 날 선 비판을 받는 이유다. 다만, 그 해법이 시장경제의 틀을 넘어서는 안된다. 자칫 은행권의 손실흡수능력 저하나 외국계 금융사의 해외 이전 촉진이란 부작용도 봐야 한다.

정유업종은 은행업과 분명하게 결이 다르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 채굴(유가급등 직접 수혜)과 정제 판매까지 하는 엑슨모빌이나 쉐브론 같은 해외 메이저와 사업구조부터 판이하다. 또, 2020년에는 정유사들이 연 5조원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냈다. 횡재세 부과 논리라면 이 때 정부가 손실보전을 해 줬어야 했던 것 아닌가. 논리적 모순이다.

어쨌든 양 업계는 횡재(橫財)가 아닌 뜻 밖의 재난, 횡재(橫災)를 만난 셈이 됐다. 물론, 기업의 과도한 폭리는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징벌적 세금에는 형평성과 합리적 과세도 함께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법인세를 내는 만큼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나온다. 횡재세 부과가 현실화된다면 기업들은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까지 가져 갈 공산이 크다. 세법의 핵심은 정책이 아니라 공정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면 그 뿐이다.

지금이 어떤 때 인가. ‘죽은 자식도 살려낼 것 같다’는 선거철 앞이다. 국민들에게 정유사와 은행권을 좌표 찍어봤자, 대다수는 총선용 ‘표퓰리즘’ 쯤으로 치부할 것이다. 정부는 시장경제의 틀과 법리 공방을 넘어 횡재세를 메길 자신이 있는가.

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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