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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기업 망치는 ‘풍요의 덫’

입력 2023-09-06 06:28 | 신문게재 2023-09-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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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석 산업IT국장

“똑똑한 사람과 미친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손정의), “미친 사람이 이기죠.(뉴먼)” 2016년 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애덤 뉴먼 위워크 CEO 간에 오간 투자 후일담이다. 손 회장은 “제가 보기엔 아직 덜 미친 것 같습니다”라고 결론 낸 40분 안팎의 짧은 만남에서 44억달러(약 5조800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사업을 더 혁신하고 키우라는 의미였다.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단박에 47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미국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치고 금융위기로 실직이 넘쳐나던 시기, 위위크는 세계 공유 오피스 최고의 혁신 기업이었다. 값싼 사무실을 찾는 실직자들로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한 때 세계 120개 도시에서 80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막대한 실탄까지 거칠게 없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위위크는 2019년 자금난과 부실경영의 민낯을 드러내며 IPO(기업공개)에 실패했다. 오만 경영과 독단적 지배구조가 문제였다. 뉴먼은 자가용 비행기 안에서 대마초를 피워댔고, 자신 부동산을 위워크에 임대해 사익을 취했다. 현재 위위크의 시가 총액은 3억달러 안팎으로 쪼그라들었고, 상장폐지 위기다. 2017년까지 185억달러를 쏟아 부은 손 회장은 “어리석은 투자였다”고 후회했다. 유니콘 기업 위워크는 이렇게 실패의 아이콘이 됐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내재 역량과 자율 통제에 실패하면 슈팅스타(별똥별)에 불과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승자의 오만이 기업을 망친 사례는 적지 않다. 1920년대부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GM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세계 최초로 전기자동차 EV1을 대량생산했지만, 2002년 돌연 생산중단과 회수 조치를 단행했다. 시장에서는 GM이 엔진차 팔아 먹을 욕심에 전기차를 버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GM은 전성기 때 미국 시장 점유율이 57%에 달했지만, 2009년 파산보호까지 갔다. GM 몰락의 핵심 역시 ‘승자의 오만’이었다.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에 취해 ‘기술개발·품질혁신·원가절감’에 실패한 것이다.
 

한 때 영업이익률 70%를 자랑했던 코닥의 몰락도 다르지 않다. 1900년 1달러에 소형 카메라 브라우니를 출시하며 대표적 혁신기업으로 떠오른 코닥은 한 때 영업이익률이 70%에 달했다.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했지만, 상용화하지 않았다. 필름 팔아먹을 욕심에 안주한 것이다. 1981년 소니가 디지털카메라 상용화에 참패할 때 까지만 해도 코닥의 판단이 옳아 보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디지털카메라 보급이 빨라진 뒤 코닥도 2001년 이지쉐어를 출시했지만 늦었다. 2002년과 2007년 각각 카메라 탑재 휴대폰과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이다. 코닥은 결국 2012년 파산했다. 모토롤라나 노키아, 엔론 등도 ‘과거 성공 답습’과 ‘과도한 자신감과 오만’, ‘당장 이익에 현혹된 근시안’의 덫에 빠져 침몰했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은 “역경을 이기는 자가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자는 한 명도 안 된다”며 ‘풍요의 덫’을 경계했다. 흔히 요즘을 뉴노멀(New Normal), 혹은 뉴애브노멀(new abnorma)시대라고 한다. 누구나 빠르게 강자가 되기도 하고, 다시 약자가 되기도 하는 혼돈과 불확실이 겹친 격변기다. 한때 유럽의 성장동력으로 칭송 받던 제조업 강국, 독일이 이제 유럽경제의 짐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변화하는 디지털시대의 파고 속에서 혁신을 게을리한 채 풍요의 덪에 빠진 탓이다. 이제 막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 자칫 우리 스스로 오만에 빠져 혁신의 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되돌아 볼 때다.


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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