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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와의 사투 30일… 두려움과 긴장이 보람으로

한국 에볼라 긴급구호진 대원들 기자회견

입력 2015-02-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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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데 어찌나 긴장했는지 부츠 안에 신어야 하는 덧신을 부츠 밖에 신고 있더라. 극도의 긴장 속에 보호의를 입고 실시한 4시간 가까운 첫 치료활동 후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에볼라 긴급 구호대 1진으로 활약했던 해군 의무장교 이태헌 대위가 전한 당시 상황이다. 

 

이 대위를 비롯한 대원 9명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한달 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와 사투를 벌였다. 

 

이들은 귀국 후 21일간의 격리 관찰기간이 끝난 지난 15일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각자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기자회견하는에볼라대응해외긴급구호대

기자회견하는에볼라대응해외긴급구호대 (연합)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1진 의료팀장 신형식(51)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을 비롯해 육군 의무장교 오대근(39) 중령, 해군 의무장교 이태헌(35) 대위, 육군 간호장교 오지숙(29) 대위, 박교연(28)·최우선(26)·홍나연(31) 간호사는 이탈리아 비정부단체(NGO) ‘이머전시’가 운영하는 시에라리온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ETC)에서 지난해 12월 27일부터 30여 일간 에볼라 환자를 돌봤다.

이들의 활동 초반 가더리치 ETC에서는 국제 의료진 25∼26명이 환자 33∼34명을 돌봤다.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에 견줘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박교연 간호사는 “날씨가 너무 더워 낮 근무에 2시간 동안 옷(보호의)을 입고 일을 하다 보면 땀이 많이 났다”며 “탈수가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 간호사가 에볼라환자에게 주사를 놓던 중 주삿바늘에 손가락을 찔리는 사고가 발생하자 대원들의 심적 불안감은 더해갔다.

구호대장인 신형식(51) 국립중앙의료원 감염센터장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우리 동료가 사고로 같이 일하지 못하고 독일로 이송됐던 점”이라고 말했다.

목숨을 잃는 환자들을 지켜보는 것도 큰 고통이었다.

한국에볼라구호대의료진의현지활동
의료진의 현지 활동 모습 (연합)
이태헌 대위는 투병 끝에 숨진 두 살배기 환자 ’알리마‘가 기억에 남는다며 “울고 있는 아기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려 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작아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이 대위는 치료 중 잠시 의식이 돌아온 알리마에게 젖병을 물려 준 순간을 떠올리며 “아기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국 구호대를 비롯한 국제 의료진의 노력으로 가더리치 ETC를 포함한 시에라리온 내 에볼라 상황은 점차 호전됐다.

오대근 중령은 “가장 보람된 때는 사망 환자보다 퇴원 환자가 많아지는 날이었다”고 전했다.

홍나연 간호사는 에볼라로 가족을 잃고 혼자 생존해 ETC 경비원이 된 현지인을 만났던 경험을 전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며 환자를 치료해 이런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생사의 경계로 떠나는 대원들을 바라보는 가족과 연인의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애정이 더 깊어지는 계기도 됐다.

구호대 지원을 알고 서울로 찾아온 이태헌 대위의 아버지는 ‘정말 좋은 뜻인 건 알겠는데 차마 내 자식은 여기 못 보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이 대위는 “옆에 있던 어머니도, 저도 울었다”며 “결국 제 뜻을 꺾지 못하셨다”고 전했다.

홍 간호사는 “남자 친구가 세 마디를 했는데 ‘왜, 미쳤어, 죽고 싶어’였다”며 “떨어져 있음으로 좀 더 애틋해짐이 있었다”고 했다.

대원들은 격리 기간 접촉이 금지된 탓에 면회 온 가족들을 안아주지 못했다며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안아주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대원들은 또 이번 구호대 파견으로 쌓은 경험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전염병 대비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신형식 센터장은 “한 지역에 전염병이 생기면 어느 지역이든 파급될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능력 있는 나라가 가서 진료하고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브릿지경제 = 이형구 기자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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