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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의 교육시선(視線)] 놀지 못하는 교육, 날지 못하는 교육

입력 2018-08-31 08:00 | 신문게재 2018-08-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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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직장인에게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화두라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이 관심사다. 말 그대로 워라밸은 일과 삶의 조화지만, 스라밸은 공부와 삶의 조화다. 워라밸이 워크(work)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서 삶의 균형이 깨진다고 생각한다면 스라밸은 스터디(study) 시간이 너무 많아서 놀 시간이 없어지고 있는 아이들의 삶을 대변하는 개념이다. 워라밸이든 스라밸이든 일과 공부는 놀이와 분리되어 있다. 일하는 시간은 하기 싫은 노동이고, 공부하는 시간 역시 하고 싶어서 하는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어서 하는 노동이다. 워라밸과 스라밸의 공통점은 각자가 하고 있는 일과 공부는 놀이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노동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공부를 벗어나 빨리 놀이시간을 더 늘려야 삶과 공부의 균형이 잡힌다는 가정을 갖고 있다. 왜 일과 공부는 따로 하는 독립적인 활동으로 나뉘게 되었을까? 일과 공부와 놀이는 하나로 통합되지 못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놀이가 실종된 일과 교육은 의미는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재미는 없다. 재미없는 의미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고, 의미 없는 재미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재미있게 놀지 못하면 의미 있게 날지 못한다.

‘논어’에 보면 공부를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자기는 좋아하지 않는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의 공부다. 위인지학의 공부는 노동이다. 또 다른 공부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다. 이 공부는 놀이로서의 공부다. 자신이 하면 재미있는 분야를 찾아서 즐겁고 신나게 공부한다. 위인지학으로 공부하는 아이에게 스라밸은 무너지지 말아야 할 금지노선이다. 왜냐하면 노동으로서의 스터디 시간을 최소화 시켜야 라이프에서의 놀이나 휴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위기지학으로 공부하는 아이에게 스라밸은 필요할 때 지킬 수도 있는 마지노선이다. 공부 그 자체가 놀이이자 휴식이기 때문에 굳이 공부와 놀이 간에 균형을 맞추거나 양자를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심리학자 칼 융도 “창조성은 지성에서 나오지 않고 놀이 충동에서 나온다”고 했다. 공부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공부는 즐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삶을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 수단이 되지 못한다. 반대로 공부를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며 즐겁고 재미있게 하는 위기지학의 의미라면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놀아야 하는 창조성의 원천이 된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힘겹지만 자기를 발견하는 노동과 배우는 학습, 그리고 놀이가 통합될 때 이루어진다. ‘논어’ 옹야편(雍也篇)에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知者 不如樂之者)라는 구절이 있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지자(知者)는 위인지학 입장에서 노동으로 공부하는 사람이고, 호자(好者)는 좋아하는 분야를 잡아서 공부하지만 아직 자기 것으로 내면화시키지 못한 사람이다. 낙자(樂者)야말로 위기지학 입장에서 즐겁고 재미있게 공부해서 공부와 일과 삶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사람이다. 놀이로서의 공부는 생활 속의 이슈와 부단히 연결시켜 고민해보게 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부단히 성찰하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이 재미있으면 공부의 결과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교실보다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교실에서 창의성은 살아 숨 쉰다. 장난도 작란(作亂)에서 나왔다. 난동(亂)을 일으키는(作) 공부야말로 창조의 텃밭을 일구는 놀이다.

 

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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