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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라이선스 브랜드' 유감

입력 2023-10-31 14:14 | 신문게재 2023-11-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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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생활경제부장

‘Discovery’, ‘National Geographic’, ‘CNN’, ‘BBC Earth’…. 해외의 뉴스·논픽션 방송채널 이름이지만, 국내에 판매되는 패션브랜드 이름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패션업계에는 패션과 상관없는 다양한 분야의 상표를 라이선스로 활용한 이른바 ‘라이선스 브랜드’가 급증하고 있다. 예일대, 코넬대, UCLA, 케임브릿지 등 해외 유명 대학교도 국내에서 캐주얼 패션 브랜드가 됐으며, 심지어 ‘코닥’, ‘팬암’, ‘라이프’ 등 이미 사라진 해외의 유명 상표들도 국내에서 패션브랜드로 거듭났다.

이처럼 패션과 상관없는 라이선스 브랜드 의류들이 국내에 넘쳐나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외국인이 지나가다 옷을 보고 당신은 CNN직원 입니까?”라고 물어본다는 농담부터 “이러다 KBS, EBS 브랜드도 나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라이선스 브랜드는 지난 2012년 패션기업 에프앤에프(F&F)가 글로벌 논픽션 전문채널 ‘디스커버리’의 상표를 활용해 아웃도어 브랜드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디스커버리의 성공에 고무된 에프앤에프는 기존에 라이선스를 확보해뒀던 미국 메이저리그 ‘MLB’ 브랜드 사업도 확대해 성공을 거뒀다.

디스커버리와 MLB는 국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덕분에 에프앤에프는 지난해 증시 상장 패션기업 중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특히 MLB코리아는 중국 시장까지 진출해 기록적인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라이선스 패션 비지니스의 가장 큰 장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표를 활용함으로써 그 상표의 이미지와 개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패션업계에서 새 브랜드를 론칭하고 브랜드 정체성을 시장에 각인시키기까지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적인 인지도와 대중적인 호감도를 확보한 상표를 활용하면 그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어 단시간에 브랜드를 각인 시킬 수 있다.

한 패션전문가는 “브랜드가 가진 고유한 이미지와 개성을 발굴해 자사가 가진 의류 기획, 생산력과 결합해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괜찮은 사업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기업이 수익을 위해 정당한 로열티를 주고 브랜드를 들여와 사업을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고, 이를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같은 라이선스 브랜드의 장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고 개발해 긴 시간에 걸쳐 브랟드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대중에게 각인 시키는 과정을 건너 뛰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더욱이 최근 라이선스 브랜드가 늘어나면서 품질 논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를 보고 적지 않은 가격에 샀지만 품질에서 실망했다”는 소비자들의 구매후기가 적지않게 눈에 띈다.

“자체 상표로 고품질 제품을 내놓는 것보다 품질이라도 유명 라이선스를 붙이는 것이 판매량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한 패션업계 관계자의 발언은 브랜드의 유명세를 품질이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을 설명해준다.

지난해 기준 약 45조7700억원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 패션업계에 넘쳐나는 각종 라이선스 브랜드를 보노라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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