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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헌법의 자리> 박한철

입력 2022-11-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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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저자의 헌법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헌법재판에 관한 기록이다. ‘시민을 위한 헌법 수업’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인들에게 헌법과 헌법의 가치 그리고 그것이 적용된 헌재 판결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헌법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쓴 책이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 정당 해산부터 두 차례 대통령 탄핵, 낙태죄 사건까지 주요 사건들의 행시 논쟁점과 헌재 판단의 근거를 소상하게 적었다. 무명무실해진 국회선진화법 사례 등을 통해 우리 정치권에 대한 아픈 비판과 충고도 곳곳에 담았다.


* “헌법은 정치 세력간 타협의 산물” - 저자는 헌법이 태생적으로 미래의 정치질서를 대상으로 하기에 그 개념이 추상적일 수 밖에 없어 개방적이고, 사회 구성원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구체화하기 때문에 역동적이고 형식적이라는 의미에서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적 규범인 헌법을 심사 기준으로 삼기에 헌재의 판단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고,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다 해도, 심사 기준이 법규범으로서의 헌법이라는 점에서 헌법재판은 법적 판단이며 궁극적으로 사법 가능에 해당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헌법 해석을 통해 최종적 가치판단과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해 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 현상에 따른 부담 증가와 이로 인한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 헌법적 가치질서 침해를 막는 헌법재판 - 헌법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통일을 형성하고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지도 원리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법적 기본질서’다. 무엇보다 헌법은 권력을 제한하고 합리화하는 것, 자유로운 정치적 생활과정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 나라의 최고가치로 존중되어야 할 최고 규범이라는 얘기다. 헌법은 그 자체가 목적적 규범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안정과 기본권 보호라는 지극히 중요하고 현실적인 목적을 지닌 생활규범이다. 저자는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와 헌법적 가치질서의 붕괴가 문제”라며 “국가권력의 남용, 즉 통치권과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과잉행사로 헌법적 가치질서가 침해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 수단이 헌법재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헌법 제6장에 근거해 1988년에 설치된 헌법기관으로, 헌법 적용에 있어 독점적 결정권한을 갖는 사법 재판기관이다.



* 헌재의 역할은 사회통합의 나침반 - 저자는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국회와 정치권이 손을 높은 채 경쟁적 포퓰리즘과 편 가르기 극단적 대결로 ‘정치 실종 시대’를 맞았다고 비판한다. 이에 문제와 갈등을 극단적 파행 상태로 만들고, 모든 것을 헌법재판소와 사법 영역에 떠맡기는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 현상’이 초래되었다고 지적한다. 결국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저하되고, 헌법 시스템의 악화와 훼손, 국가 공동체 위기라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철저히 구현해 갈등을 최종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해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강조한다. 보다 적극적인 헌법 해석을 통해 헌법이 갈등 해결의 수단이자 목표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단계적 가치판단에 있어 헌법을 준거의 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통합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적 가치판단 기관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 미래지향적 파단을 해야 할 것이란 얘기다.


* 제대 군인 가산점 제도(1999.12.23) - 제대 군인에게 6급 이하 공무원 채용 때 과목별 득점에 만점의 5%(2년 이상 복무) 또는 3%(2년 미만 복무) 가산점을 주는 것이 여성이나 신체장애인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한 사건이다. 헌재는 1961년부터 40년 가까이 시행된 이 제도가 아무런 재정적 뒷받침 없이 제대군인을 지원하려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초래했으며, 특히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와 보호’에도 저촉된다고 판단했다. 제도 폐지는 여성 고용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과 장애인이 공직사회에 적극 진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도 되었다. 7급 여성 합격자 비율이 1995년 1.5%에서 2015년에는 37.4%까지 상승했다. 7.9급 공무원을 시작으로 외교관 법조인 등 다른 공직에 진입하는 비율도 크게 늘었다. 여성 공무원 비율은 50%에 육박하며 양성평등의 새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 수도이전 사건(2004.10.21) - 서울시 공무원 등이 “국회가 헌법 개정 절차도 없이 신행정수도 관련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노무현 정부가 신행정수도를 충청권에 건설해 대한민국 수도를 이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법에 위헌결정을 내렸다.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헌법 개정’이 없는 한 헌법으로서 효력을 갖는데, 신행정수도법은 ‘법률 제정’ 형태이므로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이라 판단했다.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충청권 반발이 거셌다. ‘관습헌법’을 둘러싼 비판도 거셌다. 정치권은 이후 이해관계에 따라 여전히 수도 이전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만들어 내거나 그들의 사전 합의가 필요한 것이지, 특정 정치지도자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문법은 불문법에 의해 보완이 필요하다”며 성문법과 불문법의 조화를 강조한다.



* 호주제 사건(2005.2.3) -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하고 이를 직계비속 남자를 통해 승계하는 호주제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사건이다. 호적부는 이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되고 2008년부터는 개인별로 신분관계를 공시하는 가족관계등록부로 전환되었다. 헌재는 “호주제가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써, 호주승계 순위와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고 판단했다. 호주제가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의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혼인과 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 1항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 결정으로 호주제는 1960년 민법 시행 이후 45년 만에 폐지되고 ‘양성 평등사회’의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고…’라는 민법 제781조 제1항도 개정되었고, 여성에 대해 6개월 간 재혼금지 기간을 둔 민법 제811조는 폐지되었다.



* 시각장애인 안마사 독점 사건(2008.10.30) - 시각장애인에 한해 안마사 자격을 부여한 보건복지부령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을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3년 헌법소원심판 때는 위헌결정이 났으나 이후 국회가 2006년 의료법을 개정해 시작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제도의 줄 근거를 마련한 탓에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우리 헌법 제11조 제1항 전문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헌재는 그러나 시각장애인에 대한 복지 대책이 시급한 현실에서 안마사가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라고 판단했다. 또 이것까지 비시각장애인에게 허용하면 시각장애인 생계 보장 대안이 충분치 않다며 이들을 우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저자는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라는 직업을 독점하게 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배려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초래하는 불평등한 처우를 어떻게 정당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스포츠 마사지나 피부 미용 마사지 등 비시각장애인에게 허용되지 않는 안마의 경계가 모호해 발생하는 마사지업계의 소모적인 갈등과 규범 괴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정책 수립 및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친일 재산 환수 사건(2011.3.31) -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서 과거사 청산을 위해 친일 행위로 축적한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도록 한 조치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사건이다. 2005년 12월에 법이 제정됨에 따라 친일본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대상자들의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자 그 후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청구가 기각됐다. 헌재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법의 귀속 조항이 입법 목적 달성의 적절한 수단이 된다고 보았다. 반민족규명법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 중 사안이 중대하고 범죄가 명백한 4가지 행위만을 재산귀속 대상을 한정했고,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실이 입증되면 귀속을 막을 수 있도록 ‘선의의 제3자’ 보호조항 같은 예외조항도 두었다고 판단했다. 이런 귀속 조항이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하지 않으며 특히 과거사 청산의 정당성 등을 고려할 때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이 결정으로 친일 재산 환수 작업이 지속되었고, 1000억 원 이상의 토지가 국가로 귀속되었다. 저자는 이 판결이 우리 헌법 전문에 담긴 3.1 운동 정신을 계승해 역사적 정의를 실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긴급조치 사건(2013.3.21) - 민주화 이후 과거사 진상규명 움직임에 따라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속속 개시되면서, ‘유신헌법’에 의해 이뤄졌던 과거 긴급조치의 위헌여부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을 받았던 청구인이 30년 후인 2009년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10년에는 유신헌법 제35조와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을 판단해 달라며 헌법소원심판까지 청구했다. 헌재는 유신헌법 위반자를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 1호와 이를 위반한 자를 심판하기 위해 설치했던 비상군법회의 조직법인 긴급조치 제2호는 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학생의 모든 정치 관여를 금지하고 소속 학교를 휴업 폐쇄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 제9호도 헌법상의 자기책임 원리에 위반된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 결정의 가장 큰 의미는 외형상으로는 당시 유신헌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었더라도, 현행 헌법에 비추어볼 때 실은 위헌적 행위이며 그런 전체주의적 인권침해는 용납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위헌결정 후 국가 대상 형사보상금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줄을 이었다. 아무리 무소불위 권력이라도 헌법보다 상위에 있을 수는 없다는 헌법 원칙이 확인된 것이다. 저자는 “정의롭지 못하고 정당하지 않은 법률을 헌재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판결이었다”고 평가했다.



*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2014.12.19) - 헌법 제8조 제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는 정부가 헌재에 정당해산을 제소할 수 있으며, 정당은 헌재 심판에 의해 해산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민주적 기본질서에는 기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 선거제도, 사유재산제도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13년 대한민국 정부는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피청구인의 해산 및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구하는 심판을 처음으로 헌재에 청구했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정당 해산과 함께 소속의원직 상실을 판결했다.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해 활동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 통진당 주도세력의 형성 과정, 대북 자세, 활동 경력, 이념적 동일성 등을 기초로, 이들이 북한을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통진당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폭력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는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석기 의원 등 130명이 2013년 참석한 회합도, 전쟁 발발시 북한에 동조해 대한민국 내 통신 등 기간시설을 파괴하고 폭력을 실행하려는 목적의 내란 관련 회합이라고 보았다. 이 결정으로 통진당 잔여재산은 국고에 귀속됐고, 유사한 대체정당 창당도 금지되었다.



* 간통죄 사건(2015.2.26) -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요즘에는 이슬람 국가와 북한, 필리핀 등 일부와 미국의 일부 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가 간통죄를 형사처벌 않는 추세다. 성적 사생활 영역에 국가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논리다. 이 사건은 간통 및 상간 행위를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 제214조 간통죄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한 사건이다. 헌재는 이 전까지 4차례에 걸쳐 이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선고했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판단을 했다. 재판관 5명은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고려할 때, 이 조항은 더 이상 국민의식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해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위헌의견을 보인 1인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국가 형벌권의 과잉행사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았다. 또 다른 1인은 징역형으로만 응징토록 한 것은 책임과 형벌 간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저자는 “간통죄의 종국적 폐지와 폐지에 따른 보완대책은 국회에서 국민여론 수렴과 논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 그럼에도 국회가 이런 고려 없이 2016년 1월 6일 법률 13719호로 형법에서 간통죄를 삭제 폐지했다”며 아쉬워했다.



* 대통령 탄핵 사건(2004.5.14/2017.3.10) - 우리 헌정사에 대통령 탄핵심판은 두 차례 있었다. 헌재에서 기각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심판은 사실관계가 비교적 단순했다. 국회 탄핵소추 의결의 절차상 하자, 적법 절차 원칙 위배 여부 등과 같은 절차적 쟁점이 주된 문제였다. 반면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심판은 절차적 쟁점과 함께 대통령의 직권남용, 비밀엄수 의무 위배, 공무원 임면권 남용 여부 등과 같은 실제적 쟁점이 문제 되어 재판관 8대 0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었다. 노무현의 경우 선거가 임박한 때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선거법을 관권선거 시대의 유물로 폄하하고, 헌법상 허용되지 않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 등이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와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대통령직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으로 보진 않았다. 반면 박근혜는 비밀 문건을 유출해 국가공무원의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반했고, 특정 인물의 사익 추구를 돕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으로 기업들에게 특정 재단에 대한 출연을 요구하는 등 현행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보았다. 다만,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은 그 자체로 소추 시유가 될 수는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자는 “두 탄핵 사건에서 보여준 헌재의 명확한 메시지는 ‘최고권력자인 대통령도 결코 헌법과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헌법적 확인과 선언이었다”고 말한다.



*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2018.6.28) - 양심적 병역거부란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 전쟁 참가, 무지 소지 등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입영 회피자를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병역법 제88조 제1항과 이 조항의 전제가 되는 ‘병역의 종류’를 한정적으로 열거하는 병역법 제5조가 헌법에 위배되는지가 쟁점이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헌법 소원이 제기되었지만 그때마다 헌재는 합치 결정을 선고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병역법 제5조가 대체복무제도를 규정하지 않아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았다. 헌법상 보호되는 양심은 사회 다수의 정의관이나 도덕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양심은 이른바 소수자의 양심이 되기 마련이라고 보았다. 특정 종교나 교리를 특별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었으나 헌재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다 해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병역의무를 전적으로 면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단순히 군 복무의 위험과 어려움 때문에 병역 의무 이행을 회피하려는 다른 병역 기피자와는 구별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체복부제처럼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를 조화시킬 수 있는 ‘제3의 길’이 있다면 국가는 그 길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결정 이후 병역법이 개정되어 2019년에는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도 만들어졌다.



* 낙태죄 사건(2019.4.11) - 낙태는 모체 밖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를 인공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으로 제한적이나마 합법적 낙태의 길이 열렸지만, 태아가 임부 신체의 일부이고 태아의 생명권은 임부의 자기결정권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여전했다. 2012년에 재판관 4(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낙태죄가 합헌임을 인정했던 헌재는 2019년에는 4(헌법 불일치)대 3(단순 위헌)대 2(합헌)의 의견으로 낙태죄가 헌법 불일치임을 선고했다. 위헌결정에 필요한 6인 정족수를 넘겼기에 위헌결정이 선고됐다. 헌법불일치는 선고 이후 입법자의 법률 변경 때까지 잠정적으로 해당 법률이 존속하는 형태의 위헌결정이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법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되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했다고 보았다. 특히 임신 22주 내외부터는 태아의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며, 이때까지의 낙태에는 국가가 생명 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불합치결정에 따라 2021년 1월 1일 형법상 낙태죄는 폐지되었다. 하지만 국회와 행정부는 헌재가 제시한 2020년 12월 31일까지 해당 법률을 개정해야 함에도 이를 방치해,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할 낙태죄(임신 22주 이후의 낙태 등)까지 처벌하지 못하게 되는 ‘입법 공백’ 사태를 빚었다. 저자는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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