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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기다려주는 日, 25명… 못 기다리는 韓, 0명

[신간 베껴읽기] 강철구의 '일본에 노벨 과학상이 많은 진짜 이유'

입력 2023-12-23 07:00 | 신문게재 2023-12-2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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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 중 25명이 자연과학 분야에서 나왔다. 이 책은 일본 기초과학의 ‘힘의 원천’을 추적 탐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과학기술 부국(富國)’이 되려면 정부의 리더십과 고도 인재, 기업을 통한 기술력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일관된 정책’과 ‘기다려주기’가 필수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실패는 능력부족 보다는 지속성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따라가는’ 과학이었다면, 이제는 ‘앞서가는 기초과학 강국’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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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


저자는 일본이 1945년 패전 이후 선진기술을 적극 도입하면서 모방과 흡수, 개량과 창조의 과정을 거쳐 과학 선진국이 되었고 그 덕분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쏟아낼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초중고 교과부터 과학기술을 가르치고 보급시키기로 일찌감치 결정했고, 일관된 정책추진에 과학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산-학-연 민간 실무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각종 심의자문기구를 만들어 정치권이나 공무원들의 독주를 견제했다.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 추진이 최우선 목표였다.

과학기술청은 정부-기업 간 긴밀한 협조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2001년에 총리직속으로 만든 종합과학기술회의(CSTP)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자본력, 그리고 일본사회의 ‘기술자 우대 분위기’가 더해졌다. 1995년에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도 5년에 한 번씩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수립케 해 정책적으로 과학 분야를 집중육성하는 기본 틀을 다지게 해 주었다.

◇ 민간·대학 연구개발(R&D) 전폭 지원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일본 기업들도 기초연구 능력을 확충하고 연구개발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주로 전자와 바이오테크놀로지 중심으로 기초연구소 설립 붐이 일었다. 문부과학성은 2016년부터 대학 내 젊은 연구인재를 발굴하는 ‘탁월연구원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들에게는 2년 동안 1200만 엔 한도의 연구비와 연간 200만~300만 엔의 연구환경 조성비가 5년 동안 지원된다.

후지츠 같은 일반 기업도 ‘탁월사회인박사제도’를 도입해 석사과정 학생 중 희망자를 뽑아 박사과정 진학과 동시에 사원으로 채용해 연구에 전념케 돕는다. 일본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물질과 에너지, 지구와 우주, 시간 및 공간과 생명 등을 집중 교육한다. 저자는 “일본은 실험 물리보다 이론물리에 강하다”며 “일본 연구자들의 오타쿠 같은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면서 국내에서의 이론 연구만으로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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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는 최근 로봇을 이용한 재생의학 연구가 한창이다.

 

◇ 일본 노벨상의 산실 ‘리켄’


일본 기초과학의 중심에는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 ‘리켄(RIKEN)’이 있다. 이 민관 연구소가 출범하면서 일본의 과학기술 연구는 조직적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다. 물리학자인 니시다 요시오 초대 연구소장은 젊은 연구자들이 세계 석학들과 만날 기회를 주고, 폐쇄적·연공서열적이던 연구 시스템을 혁파했다. 주임연구원 제도를 도입해 연구 테마와 예산, 인사권 등 전권을 부여해 독립된 연구를 보장해 주었다. 새 연구 계획 아이디어만 제시해도 즉시 일정액의 연구비를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

연구성과로 특허나 실용신안을 얻으면 기업 설립도 허용해 주었다. 특허권과 사용료는 연구소 자산으로 늘려 연구비용을 충당케 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패전 후 페니실린과 비타민 제조에 성공하고 지금은 줄기세포를 연구 중인 ‘리코’이다. 자연과학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이 돈이 없다거나 자리가 없다는 핑계로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 ‘천재’ 라기 보다 ‘오타쿠’가 대부분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은 ‘천재’ 보다는 끈기 있게 집중력을 발휘하는 ‘오타쿠’가 대부분이다. 2002년에 화학상을 받은 학사 출신의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 등이 그렇다. 일본 수상자들은 또 놀랍게도 모두 일본 국공립대학 출신들이다. 우리보다 인구가 2.5배가 많지만 유학생 수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출신 고교도 제국대학 진학을 위한 기초교육기관인 구제고교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젊었을 때부터 안정된 직위에 충분한 연구 환경을 갖춘 국립대학에서 끈질긴 연구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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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 선임연구원.

 

일본 특유의 도제식 연구도 역할을 했다. 스승의 연구를 제자가 계승하는 학문적 연계성이 탁월하다. 4대째 학맥(學脈)의 문화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문부과학성은 2006년부터 박사 학위 취득 후 10년 이내의 젊은 연구자들을 선발해 임기 5년을 보장하는 ‘테뉴어트랙 보급 정착 사업’도 실시 중이다. 저자는 “이것이 진정한 기술과학의 인적 네트워크”라고 부러워 한다.

◇ 기초과학 투자에 너무 늦은 한국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으로 GDP 대비 R&D 비중이 4.96%로 OECD 국가 2위다. 일본은 평균인 2%에도 못 미쳤다. 우리는 인구 1000명 당 연구원 수도 세계 1위다.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다. 저자는 그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일본이 R, 즉 기초과학에 집중지원한 반면 우리는 산업계의 응용분야와 기술개발 D에 집중했다. 고도성장이 시급했기에 기초연구나 이론연구에 소홀했고, 특허출원도 반도체 통신 등 특정 산업에 편중되었다. 인재들은 의치한(의대 치해 한의대)과 ‘인 서울’ 대학에만 쏠리니 지역 기반 대학은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어렵다. 우리도 2008년부터는 기초연구비가 응용연구비를 추월했지만, 순수기초 연구비 30%에 목적기초연구비가 60%다. 하고 싶은 연구보다 정부 연구프로젝트에 목을 맨다는 얘기다.

둘째, 일본은 정부 R&D를 구체적인 항목 지정 없이 대학에 블록 펀딩 형태로 지원한다. 정부는 연구 방향과 총액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기관장에게 일임하니 중장기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일본은 또 2001년의 21세기 COE(Center of Excellence) 프로그램을 계기로, 상위 10여 개 대학에 지원을 집중한다. 세밀하고 투명한 운용한 덕분에 논란이나 반발도 없다.

셋째, 과감하고 지속적인 연구비 투자다. ‘리켄’ 설립 때 일본에서는 “우리의 폐단은 너무 조급하게 성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 때가 1917년이었다.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생활문제로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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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에 일본 최초의 노벨상(물리학 부문)을 수상했던 유카와 히데키.


◇ 우리에게 부족한 ‘기다려주는 문화’

일본에는 몇 십 년짜리 지원사업이 많지만 우리는 대부분 1~3년짜리다. 그 안에 성과를 못 내면 연구비가 끊긴다. ‘정부가 관심을 갖는 순간 그 사업은 망한다’는 얘기도, 단기 성과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우리 기초과학 과제의 80%는 5000만 원 미만의 소액이다. 5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수주해도 간접비, 인건비 등을 제하면 연구에 쓸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내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주요 사업비가 25% 삭감된다.

저자는 “일본은 30,40대 연구자들을 위해 ‘탁월연구원제도’에까지 예산을 쓰는데 우리는 오히려 성취욕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방향성 잃은 평등의식’도 비판한다. 우리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 모든 분야에 골고루 예산을 나눠주어야 탈이 없다. 자유 공모는 5%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기획과제다.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키워드가 들어가야 선정율이 높아진다. 기획서에 ‘화장’을 해 주는 브로커들이 판치는 이유다.

◇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릴 때 꿈이 과학자라고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이런 꿈이 물거품이 된다. 고 3 때까지 수능에 목숨을 거는 교육제도 탓이다. 저자는 “당장 돈이 안된다고 기초과학을 무시하면 영원히 ‘넘버 투’에 머물 것”이라고 비판한다. 연구자 도덕성도 꼬집는다. 작년에 문을 연 한전공대가 200억 연구프로젝트 사업비를 인건비로 전용해 물의를 일으킨 것이 우리의 현주소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그러나 우리가 일본보다 늦은 1977년에야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했고, 창의적 연구 진흥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6년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일본의 150년에 비해 이제 경우 30년을 넘긴 셈”이라며 “일본은 1868년부터 기초과학에 투자해 1949년에 첫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를 배출했다”며 “우리도 너무 조바심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주는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에 일본학술진흥회 연락사무소를 두고 4,5명을 상주시켜 교류하고 게이오대학 등 다수 대학들도 MOU를 맺고 연구자들을 파견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저자는 “우리는 충북도 교육감이 노벨상위원회 위원장과 면담하고 사진 찍는 게 전부”라며 “차라리 학생들을 10명 뽑아 보냈다면 이들이 더 큰 꿈을 갖고 돌아왔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표> 노벨상에 근접한 한국 후보자들

* 생리의학
-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마이크로 RNA(miRNA) 생성과정을 2006년 세계 최초로 밝혀냄.
- 방영주 서울대 교수. 위암 임상 세계적 권위자. 위암의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치료효과를 첫 입증.

* 화학
- 유룡 한국에너지공과대 교수. 나노다공성 물질 구조 규명. 구조규칙적 메조다공성 탄소합성법 개발.
- 김기문 포항공대 화학과 교수. 2011년 논문 피 인용지수 세계 100대 화학자에 이름을 올림.

* 물리학
- 김필립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의 물리전기적 특성을 최초로 밝힘,
- 현택환 서울대 교수. 실온에서 온도를 서서히 올리는 방식으로 나노 입자를 균일합성하는 방법 개발.
- 임지순 포스텍 석좌교수. 한국 물리학자 최초로 미국과학학술원 외국인 종신회원으로 추대됨.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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