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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없는 '세계의 화약고'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이세형 '중동 인사이트'

입력 2024-02-24 07:00 | 신문게재 2024-02-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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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아라비안나이트’의 무대,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 ‘세계의 화약고’가 된 곳. 중동(中東)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국제 이슈가 꿈틀댄다. 물과 기름 같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가 싶더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다시 확전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각 나라마다 변화의 기운이 거세다. 중동 특파원 출신인 저자가 현지 취재 경험 등을 기반으로 변화무쌍한 중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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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인사이트|이세형|들녘

 

◇ ‘중동’과 ‘아랍’은 다르다

중동은 지역적 개념이다. 동쪽으로는 이란, 서쪽으로는 모로코, 남쪽으로는 아라비아반도 남단, 북쪽으로는 튀르키예까지를 통칭한다. 아랍은 민족적 개념이다. 아랍어를 쓰는 아랍연맹 21개 가입국을 아랍권이라고 부른다. 이란과 이스라엘, 튀르키예는 아랍 국가가 아니다. 상당수 국민이 이슬람을 믿지만 아랍어를 공용어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사후 권력 계승을 둘러싼 갈등의 결과가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이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직계가 아니라도 통치자인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시아파는 직계 자손만을 인정한다. 현재 무슬림의 85~90%가 수니파이며, 사우디가 종주국이다. 시아파 종주국은 이란이다. 이라크는 인구의 60~65%가 시아파지만 한 때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소수정권에 지배되기도 했다.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에서 갈라진 이슬람국가(IS)는 수니파가 스스로 칼리프임을 선언하고 건국을 선포한 경우다.



◇ 오늘의 중동을 만든 협약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는 1916년 5월에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고 중동 영토 분할에 나섰다. 이 때 종교적 성향이나 문화를 고려 않고 직선에 가까운 국경선을 구획하면서 갈등이 유발됐다. 1917년 11월의 ‘벨푸어 선언’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이끌어냈다. 미국이 세계대전 중 재정에 큰 도움을 준 유대인들에 대한 선물로, 팔레스타인 지역 내 유대인의 나라를 허용해 준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의 씨앗이었다.



◇ 관광사업에 열 올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성지순례 외에는 비자를 잘 허용 않던 사우디가 2019년에 한국 등 49개국에 온라인 관광비자를 허용했다. 2030년까지 연 1억 명 관광객 유치가 목표다. 사우디는 산업 다각화와 국가 브랜드 제고, 일자리 창출 등을 동시에 달성하려 관광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3% 안팎에서 2030년까지 1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처럼 술을 허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관광산업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 이스라엘, ‘분쟁 중심지’에서 ‘첨단과학기술 성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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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비밀 정보부대 ‘유닛8200’ 모습. (사진=이스라엘군(IDF) 블로그)

 

소총 든 군인이 돌아다니는 ‘분쟁국’ 이스라엘이 첨단 과학기술 창업국가로 거듭났다. 정보보안 유니콘 기업의 30%가 이스라엘 국적이다. 자동차용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모빌아이는 인텔에 153억 달러에 매각됐다. 과학·수학 영재들이 고교 졸업 후 ‘유니트 8200’ 부대에서 복무한 후 히브리대 같은 명문대학을 나와 산업계로 진출한다. ‘군-산-학’ 순환 체제다. ‘사이버리즌’은 8200부대 동문 기업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 두바이의 성장과 몰락, 그리고 재기

2009년 말 국영기업 두바이월드 파산으로 두바이 경제가 급 추락했다. 장기 저유가에 주변국들의 투자가 급감한데다, 사우디 등이 카타르와 단교하고 미국의 이란 제제까지 겹치면서 대외 의존도가 컸던 두바이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상류층이 두바이 투자를 늘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특수까지 겹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1530억 달러의 공공부채 등 열악한 국가 재정이 난제다.



◇ 재건을 노리는 이집트

카이로의 열악한 인프라와 과밀화에서 벗어나려 450억 달러를 들여 신행정수도를 건설 중이다. 하지만 상당액을 중국에서 충당해, 수에즈 운하 운영권을 뺏기지 않을지 우려까지 나온다. 사우디에 홍해의 요충지 2개 섬을 빼앗기며 명예와 자존심도 크게 훼손됐다. 군인 출신의 ‘현대판 파라오’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제2 수에즈 운하와 대규모 사막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지만, 종신집권 반대파 무마를 위한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많다.



◇ 글로벌 명문대 유치전 펼치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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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올림픽 축구 경기가 열렸던 에듀케이션 스타디엄과 주변 에듀케이션 시티 전경.

 

노스웨스턴대 미디어학부,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부, 카네기멜런대 경영학과·컴퓨터학과·생명과학과…. 카타르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에듀케이션 시티’에 유치한 대학들이다. 유학가지 않고도 세계 최고 대학의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여성인력 양성 효과도 크다. 재학생의 75%가 여성이다. 아랍에미리트도 뉴욕대 경영학과, 프랑스의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등을 유치하는 등 선진 중동 국가들이 앞다퉈 해외 명문대 유치에 나서고 있다.

 


◇ “경제영토 넓혀라” 중동의 국부펀드들

자산총액 상위 20개 국부펀드 중 중동 국가 소유가 10개다. 아부다비 펀드가 7900억 달러로 3위, 쿠웨이트 펀드가 7500억 달러로 4위, 사우디 PIF가 6100억 달러로 6위다. 4500억 달러로 9위인 카타르 펀드까지, 톱 10에 4개나 포함될 정도로 투자시장의 ‘큰 손’이다. 하지만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언제든 왕실 개인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트럼프의 맏사위 쿠슈너를 직간접 계속 지원한 것이 알려져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중동 국가들의 ‘자국민 고용’ 프로젝트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자국민 고용 확대 바람이 거세다. 자국민들의 동요도 막고 내수 경기도 일으켜 보려는 심산이다. 사우디는 올해부터 자국에 중동지역본부를 두지 않은 기업은 공공 프로젝트에서 배제키로 했다. 아랍에미리트는 5년 내 정부 기관 관리·감독직의 90% 이상을 자국민으로 채용할 방침이다. 두바이 사태 때 고액 해외 인력들이 대거 탈출했던 경험 탓도 있지만, 아직 그런 퀄리티의 인력 충원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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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서안지구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화해 분위기를 깨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면 반 이스라엘 정서가 고조될 것이란 기대였다. 서안과 가자 지역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인정하라는 압박에도 반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우기’에 전력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원해 온 이란이 개입할 가능성이 점증하면서 확전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 중동의 ‘무장정파’들

탈레반과 하마스. 헤즈볼라. 근본주의 이슬람 정신을 추종하고, 무력과 민간인 테러까지 자행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궁극적으로 국가나 지역 장악을 목표로 선거와 정책 기획까지 망라해 ‘국가를 경영하는 테러 단체들’이다. 탈레반은 2021년 미군 철수 후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했다. 하마스는 2006년 가자 지구 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시아파를 대표하는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작은 이란’으로 불린다.



◇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2020년 8월에 사우디의 맹방인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외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아브라함 협정’이다. 위협적인 이란을 견제할 나라는 이스라엘 밖에 없다는, ‘적의 적은 친구’라는 판단이었다. 카타르는 사우디 등과 왕실 뿌리도 같지만 이란과 가깝다. 걸프만의 해양 천연가스를 함께 쓰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사우디 등의 단교선언 때도, 항복 대신 튀르키예 군대 주둔 허용과 OPEC 탈퇴 선언 등 ‘분열’을 택했다.



◇ ‘중동의 해결사’ 자처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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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사우디와 이란이 외교관계 복원에 합의한 것은 세계적인 층격이었다. (사진=연합)

 

2023년 3월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관계 복원을 중국이 중재해 충격을 주었다. 중동권 ‘탈 미국화’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경제 제재를 이겨내려면 이란은 중국이 필요했고, 사우디도 네옴 프로젝트 등에 투자여력과 개발 노하우가 풍부한 중국이 절실했다. 위안화로 원유를 결제할 조짐도 보인다. 미국의 중동 내 경제적·군사적 입지는 아직 탄탄하지만, 중국 주도의 ‘차가운 데탕트’는 매우 껄끄럽다.

 


◇ 중동의 이슈 메이커들

‘미스터 에브리싱’이라 불리는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는 비 석유 부문으로의 산업 다각화, 여성 자유 허용, 관광시장 개방 등 중동 개혁의 상징이다. 바이든의 원유 증산 요청과 러시아 경제제재 요청을 거부할 정도로 배짱도 갖췄다. 2023년 4월에는 러시아 군함의 제다항 입항까지 허용해 미국을 긴장시켰다. 1조 달러 이상이 투자될 ‘네옴 프로젝트’도 주목을 끈다. 하지만 주변에 비판자나 조언자가 딱히 없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대판 술탄’으로 불린다. 사실상 종신 집권체제를 구축했다. 칠면조와 발음이 비슷하다며 나라 이름을 튀르키예로 바꾸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면서 러시아판 사드라는 S-400 미사일 체계를 도입하는 등 친 러시아 행보를 보인다. 스스로의 몸값을 키우면서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중이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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