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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거짓도 진실로 만드는 음모론… 혹하면 낚인다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톰 필립스·존 엘리지의 '썰의 흑역사'

입력 2024-04-06 07:00 | 신문게재 2024-04-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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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혹 하다’는 말이 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심성은 이제 현대인들의 ‘질환’이다. 진실이 아닌 이야기가 진실이 되고, 이상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에 사실과 터무니없이 다른 극단적인 해석이 따라 붙는다. 이렇게 등장한 ‘썰’은 강력한 힘을 지니곤 한다. 심지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근거 없는 썰 하나가 비극적 역사의 단초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련의 ‘흑역사 시리즈’를 발간 중인 저자의 ‘썰’의 흑역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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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의 흑역사|톰 필립스·존 엘리지|윌북


◇ 우리는 왜 음모론에 사족을 못 쓸까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당일 아침 SNS에 “우리가 크게 앞서 있다. 그런데 저들이 도둑질하려 하고 있다”고 올렸다. 그는 바이든에게 졌고, 이듬해 1월에 국회의사당 폭동 사건이 일어났다. 도처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음모론이 동원된다. ‘무언가가 비밀이었다’는 주장은 음모론의 핵심이다. 음모론에 쉽게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모론은 지속성이 있으며, 힘 있는 자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휘두를 수 있다.

저자는 음모론 사고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사건 음모론이다. 배후에 숨은 음모를 상정해 설명하려는 시도다. 둘째, 체제 음모론은 조직적으로 정부와 기업, 언론 등 각계각층에 침투해 영향을 미치려 한다. 셋째, 여러 음모론이 합쳐진 초음모론이다. 대개 사건 음모론에서 출발해 초음모론을 거쳐 체제 음모론으로 발전한다. 문제는 하나의 음모론을 믿으면 거의 모든 음모론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음모론적 사고의 경우는 반대 증거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르다. 우선, 이론의 내용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 신봉자들이 꼭 사실로 믿고 싶어하는 하나의 주장만은 절대 고수한다. 이게 통하지 않으면 “음모론에 어긋나는 모든 증거가 바로 그 음모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되는 모든 증거를 싸잡아 ‘음모’라고 반박하며, 모든 음모론 자체를 반증 불가능하게 만든다. 큰 사건에는 반드시 큰 원인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비례성 편향’도 그런 믿음을 공공하게 만들어 준다.

음모론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하는 요인들이 있다. 우선, 인지 부조화다. 원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취하려는 ‘확증편향’이나 스스로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자부심을 느끼는 ‘자기합리화’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알고 싶은 욕구다. 불완전한 서사의 구멍을 메우려 음모론에 눈을 돌린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도 한 몫 거든다. 특정한 문화와 사회적 환경 속에서 빚어진 원초적 공포도 한 요인이다. 변화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기이한 음모론도 있다. 제도에 의해 억눌린 욕구와 행동을 발산할 구실로 음모론이 정당성을 얻기도 한다.



◇ 세계적 음모론의 산실 ‘일루미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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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음모론의 산실 ‘일루미나티’의 상징물

 

독일 바이에른에서 태동한 것으로 알려진 ‘일루미나티’는 인간사에 몰래 간섭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대명사다. 200년 넘게 각종 음모를 배후에서 조종한 사악한 무리의 상징어이기도 하다. 이들의 활동, 회원 명단이나 운영 방식 모두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다. 각국 정부를 포함한 권력기관에 침투하거나 전복·대체함으로써 인간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더욱 철저히 통제하려는 목적을 가진 집단이라는 정도 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창설 10년 만인 1786년에 내분으로 사실상 궤멸 상태에 이르렀으나 1789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일루미나티의 음모론이 다시 되살아나 급속도로 세가 확장되었다. 미국 대통령 제퍼슨마저도 일루미나티의 단원이었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음모주의는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배후 동기와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른 기존 음모론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맞물려 확대되었다. 그러면서 ‘음모 산업’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저자는 그 이면에는 여전히 신흥 일루미나티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 우리를 맹신하게 만드는 음모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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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음모론은 1639년 이후 지금까지 줄곳 현재 진행형이다.(사진출처=네이버 지식백과)
 

1966년 11월에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1969년 미국 지역 학생신문에 실렸다. 기사는 3년 전 변고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확인 불가능한’ 증거로 수두룩했다. 19세 학생이 쓴 이 기사는 ‘지금의 폴이 그 폴이 맞느냐’는 음모론으로 발전해, 폴 메카트니가 활동하는 반 세기 동안 꾸준히 회자되었다. 비욘세, 레이디 가가, 마돈나는 물론 르브론 제임스, 톰 행크스도 음모론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섹슈얼리티와 소비적 욕구를 당당히 표현하는 유명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모럴 패닉’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그 본질은, 문화적 아이콘이 가진 힘에 대한 두려움이자, 세대 차이에 대한 두려움, 자녀들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기성세대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코로나 펜데믹을 일으킨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라는 음모론은 아직도 호가사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흑인 생명 존중 운동이나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 같은 사회운동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90년대의 전설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라는 주장도 여전하다. ‘가십’이 점점 음모론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암살 음모론도 그 배후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꾸준히 확대 재생산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던 아세르 아라파트가 2004년에 갑자기 병사했는데, 독살설과 에이즈 사망설이 여전하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단독 저격범이라던 오즈월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마법 총알설’ 같은 황당한 음모론만 남겼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둘러싼 음모론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자동차 사고가 완벽한 암살 계획으로 둔갑한 것이다.

UFO 음모론은 현재 진행형이다. 1639년 미국에서 목격되었다는 ‘하늘에서의 거대한 빛’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음모론 부흥기’의 주역이었다. 1997년에 회고록을 쓴 퇴역 중령 ‘로즈웰’이나 미국의 극비 프로젝트 장소로 알려진 ‘51 구역’은 곳곳에서 재활용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UFO가 러시아나 중국 같은 적성국의 최첨단 정찰기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 상상을 초월하는 초음모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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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코로나 펜데믹 때 이른바 ‘백신 음모론’에 휩쌓여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코로나 펜데믹 때 ‘5G 음모론’이 제기됐다. 5G가 처음 도입된 곳이 중국 우한인데, 5G 기술이 면역체계를 무너뜨렸다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가 전 세계인의 몸 속에 마이크로 칩을 심어 추적하기 위해 백신 접종 의무화를 외친다는 ‘백신 음모론’도 있었다. 저자는 “빌 게이츠가 정말로 획기적인 저전력 나노 마이크로 칩 기술을 발전시켰다면, MS의 스마트 폰은 왜 그렇게 형편없었을까”라고 꼬집었다. 박쥐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실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는 설과 함께, 중국이 세계경제를 무너뜨리려 의도적으로 방출한 생물 무기라는 설도 있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지구 사진의 상당수가 가짜라고 헐뜯는다. 저자는 “결국 중요한 것은 음모론자가 얼마나 진지하게 음모론을 주장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귀에 들어가느냐”라며 “아무리 터무니 없는 음모론도 세상의 누군가는 믿기 마련”이라고 비판했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던 사실이 부정되면 역사 전체가 거짓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 집단 착각의 전성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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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9.11 테러 역시 온갖 음모론 속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사진=연합)
 

9.11 테러 때도 어김없이 음모론이 대두됐다. 미국 정부가 이라크나 IS 등과 전쟁을 벌일 명분을 만들기 위해 9.11을 기획했다는 설까지 나왔다. 특히 이라크에 대규모 살상무기가 있다는 정보를 앞세워 15개월 동안 수색을 벌였음에도 현지에 그런 무기가 없는 것이 확인되면서, 틀린 전제를 전제로 이라크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 때문에 각종 음모론이 성행했다.


최근에는 정부의 ‘자작극 음모론’도 팽배하다. 전쟁의 구실을 만들거나 외국의 쿠테타를 선동하는 목적에 이용되곤 한다. 저자는 이런 트랜드의 한 이유로 인터넷 확산을 든다. 언제 어디서나 음모론에 노출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대한 오랫동안 사이트에 머물게 하려는 소셜 미디어의 기본 철학은, 갈등을 유발하고 서사적 긴박감이 있는 콘텐츠를 보여줄 수 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토끼 굴’에 빠뜨려 헤어나지 못하게 하면 음모론이 확대 재생산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유튜브는 음모론자 양산 공장이 되었다.

이제는 예전에 음모론이 만들어졌던 과정을 엄청난 속도로 똑같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는 음모론이 홍수를 이룬 세상이다. 우리가 아무리 냉철하고 현명해서 평생 음모론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 해도, 우리 주변의 누군가는 그것을 믿는다. 우리 구미에 딱 맞는 음모론이 이미 어디에선가 만들어져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란 얘기다. 저자는 “이제 우리는 모두가 음모론자”라고 말한다.

 


◇ 음모론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없나

음모론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은, 사회에 뚜렷한 해악을 끼치는 것 들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을 공중보건 대책이 아니라 인구조절 수단이었다고 믿는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음모론에 가려 진짜 문제가 주목받지 못하는 부작용도 크다. 저자는 “기후변화의 경우, 특정 기업들에 책임을 물어 ‘소수의 악당들을 잡아내 심판대에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크나 큰 오산”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생각 속에서 음모론을 인지하고 맏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고 간편한 서사에 매몰되고 가짜 패턴에 속고, 모든 불행의 배후에는 사악한 악당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토끼 굴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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