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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 연극 ‘대학살의 신’ 이지하·송일국 “그런 배우자, 그런 부모, 그런 사람들…어디서나 볼 수 있죠!”

김태훈 연출, 남경주·최정원·이지하·송일국 출연, 야스미나 레자 원작의 연극 ‘대학살의 신’
아내, 삼둥이 대한·민국·만세와의 파리 생활로 메소드 연기 송일국, 베로니끄와 다른 듯 닮은 이지하
정답이 없는 좋은 배우 “소모되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 사이, 딜레마의 연속”

입력 2019-03-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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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하 송일국
연극 ‘대학살의 신’ 베로니끄 역의 이지하(왼쪽)와 미셸 송일국(사진=강시열 작가)

 

“대부분 그렇지 않아요?”라는 이구동성으로 시작해 이지하의 “난 미셸 같은 남편이면 그럭저럭 괜찮은(So So) 것 같은데. 돈 잘 벌지 아내 말 잘 듣고 웬만큼은 맞춰주지….”

송일국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성격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현대인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제가 연기하지만 미셸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베르니끄도 아내로서는 훌륭하죠.”

이지하의 “물론 베로니끄 같은 여자랑 살면 남자는 좀 피곤할 거예요.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아요”에 송일국의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여자예요.” 

 

송일국 이지하
연극 ‘대학살의 신’ 미셸 역의 송일국(왼쪽)과 베로니끄 이지하(사진=강시열 작가)

 

‘그런 배우자’라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연극 ‘대학살의 신’(3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중 깐깐하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데 권위적인 원칙주의자 베로니끄 역의 이지하와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햄스터를 내다 버리는가 하면 경박하기도 한 미셸 송일국은 말 한마디에 마치 만담이라도 하듯 주거니 받거니다.

야스미나 레자 원작의 연극 ‘대학살의 신’은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의 갈등으로 번져 막말과 폭력, 토악질과 주사 등이 난무하는 블랙코미디다. 작가이면서 서점에서 일하는 베로니끄와 수완 좋은 사업가 미셸은 이지하와 송일국이, 부도덕한 제약회사의 법적대리를 맡은 변호사 알렝과 고상하지만 남편에게 억눌린 중압감에 토악질을 해대는 아네뜨는 남경주와 최정원이 호흡을 맞춘다.

자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선과 가식, 지질함, 냉소, 깐족거림 등으로 무장하고 모인 네 사람은 극이 진행되면서 우아함, 지성미, 사람 좋은 웃음 등을 내려놓고 난투극을 벌인다. 한편인 듯하던 두 부부는 대화 주제에 따라 남자끼리, 여자끼리, 서로의 배우자와 편을 먹고 자식들보다도 유치하고 원초적인 싸움을 벌인다.


◇자칭 ‘그리 좋지 못한 아빠’ 송일국의 메소드 연기?
 

이지하
연극 ‘대학살의 신’ 베로니끄 역의 이지하(사진=강시열 작가)
“평범해요. 제 주변은 다 이런 엄마인데!”

베로니끄 정도면 ‘SKY캐슬’급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이지하에 송일국이 “드라마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우리 삼둥이(대한·민국·만세)는 그런 엄마랑 살고 있다”고 말을 보탠다.

“후반부에는 본색을 드러내며 껍질을 다 벗으니까 정말 살풍경하지만 살면서 이런 일이 별로 없잖아요. 평범하다고 하는 엄마들도 베로니끄 보다 더 하면 더 하지 덜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방목하는 엄마도 있지만 그래도 한계는 분명 있어요.”

이지하의 말에 송일국은 “저도 어려서부터 ‘너 하나 잘못하면 도매끔으로 넘어간다’ ‘공부는 못해도 행동거지는 잘해야 한다’고 계속 듣고 자랐다. 그에 대한 강박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저도 어려서 부모님께 이래라 저래라 강요를 많이 당했어요. 첫째다 보니 과도한 기대를 하셨고 ‘네가 알아서 하는데 잘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선지 조금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진짜 큰일이 났다는 강박이 지금도 있어요. 저희 부부에게 아이가 없는 이유기도 하죠.”

이지하의 말에 송일국은 “미셸처럼 살아있는 햄스터를 내다버리진 않지만 집안이 지저분한 꼴을 못봐서 애들 몰래 장난감 중 몇개를 제외하고는 죄다 내다 버린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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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학살의 신’ 중 베로니끄 이지하(왼쪽)와 미셸 송일국(사진제공=신시컴퍼니)

 

“미셸의 입장을 너무 뼈저리게 느껴요. 본질과는 전혀 다른 햄스터 문제 때문에 궁지에 몰려서 막판까지 가잖아요. 지금 그러고 살고 있어요. 이제 초등학교 입학했으니 헬게이트가 열렸죠.”

‘어떤 아빠냐’는 질문에 “옆에서 보기엔 좋은 아빠”라는 이지하에 송일국은 “좋은 아빠는 아닌데 노력은 한다”며 신문에서 오려 코팅해 지갑에 넣고 다니는 ‘오은영의 좋은 부모 10계명’을 떠올리곤 한단다.

“실천은 못해도 가끔 지갑을 열 때마다 봐요. 미셸이 베로니끄가 하라는대로 하듯 아내가 짜놓은 커리큘럼 안에서 저는 움직일 뿐이에요. 그게 방송(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잘 비춰졌던 거고 저는 성격 장애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전한 송일국은 “아내와 육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내애들만 키우다 보니 채벌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아내와 그럼에도 체벌은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고 예를 들었다. 

 

송일국
연극 ‘대학살의 신’ 미셸 역의 송일국(사진=강시열 작가)
“그러다 보니 엄한 효자손을 열몇 개는 부러뜨렸어요. 파리에 있을 때는 뛰면서 풀었어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16구와 15구 사이 세느강변에 있던 집에서 오르셰 미술관까지 10Km를 뛰어갔다 오곤 했죠.”


◇베로니끄와 다르지만 닮기도 한 이지하

“(송)일국씨는 메소드(극 중 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 연기에요. 그냥 미셸 같아요. 다만 대본을 봤을 때보다 좀더 다혈질이고 에너제틱해요. 대본 보다 유머러스하고 훨씬 따뜻하게 구현된다고 할까요. 대본 속 미셸은 시니컬한 뉘앙스가 많거든요.”

송일국이 연기하는 미셸에 대해 ‘메소드’라고 표현한 이지하는 “같이 연기를 하면서도 이 사람 참 따뜻하구나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아내에 대한 지적 열등감이나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아무 때나 툭툭 끼어드는 거나 미셸이랑 비슷해요. 특히 ‘내 거’ ‘우리 집’ ‘내 물건’ 등의 대사를 할 때 와닿아요.”

이렇게 말하는 송일국에 대해 이지하는 “알면 알수록 사차원이다. 보기엔 모범적이고 반듯하다. 드라마에서 그런 역할도 많이 했고 예능에서 (삼둥이들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도,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런 모습 뒤에 자신만의 세계가 견고하게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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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학살의 신’ 미셸 역의 송일국(왼쪽)과 베로니끄 이지하(사진=강시열 작가)

 

“나름대로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틀에 맞춰 하나부터 열까지 행동하면서 그 뚜렷한 개성을 감춘다는 느낌을 받아요. 스트레스가 많을 거예요.”

“한 작품을 두 번째 같이 하다 보니 더 잘 보인다”는 이지하에 송일국이 “내 안에 헐크가 있어!”라며 껄껄거린다.

 

“심리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이 있잖아요. 같이 있는 사람에 따라 성향들도 바뀌지 않아요? 이 연극에서도 상황마다 변화되잖아요. 야스미나 레자는 심리학을 잘 아는 작가 같아요. 누구도 캐릭터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순간, 상황, 대화의 주제 따라 이렇게 변했다 저렇게 변했다 하거든요.”
 

이지하
연극 ‘대학살의 신’ 미셸 역의 이지하(사진=강시열 작가)

이렇게 말한 송일국은 “실제 인간이 가진 양면성, 특히 현대인은 본성을 감추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저 역시 베로니끄가 가진 본질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죠. 그런데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요. 저는 폭력적인 것도, 싸우는 것도 싫어요. 세상에서 싸우는 걸 제일 싫어해요. 그래서 싸우는 연기가 너무 힘들어요. 싸우는 에너지를 꺼내야 하고 그걸 극 내내 유지해야하니까요.”

스스로를 “그게 싫어서 안싸우는, 약간 비겁한 스타일”이라고 표현한 이지하는 “베로니끄만큼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기주장이나 생각이 강한 편”이라고 밝혔다.

“굉장히 집요하죠. 어울렁 더울렁 넘어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베로니끄처럼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포기는 절대 못하죠. 혼자 해결할 방법을 찾아서 나중에 혼자서라도 해요. 어줍잖게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회문제나 인간 본질, 인류애, 환경문제 등을 고민하죠.” 

 

지나가다 옷을 벗어주거나 장사가 안되는 가게를 걱정하기도 한다는 이지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르겠고 그랬다”며 “현실은 엉망인데 관념에 사로잡힌 몽상가였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갑자기 닥치는 자의식과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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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학살의 신’ 미셸 역의 송일국(왼쪽)과 베로니끄 이지하(사진=강시열 작가)

  

“어떻게 우리에게 맞게 녹여내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관계의 수위를 맞춰야 하는지 그 디테일이 문장마다 있어야 했어요.”

극 준비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이렇게 전한 이지하는 “사실 어려운 대본은 아니다. 대사도 많고 연기는 어렵지만 이면, 배면, 후변까지 첩첩이 깊게 파고 들어야 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며 “심플하면서 단면적으로 구성돼 있어서 대본 분석이 어렵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블랙코미디 ‘대학살의 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었다. 캐릭터마다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순간 사투는 시작된다.
  

“호흡이나 핀트가 안맞는 날이 있어요. 아예 다 안좋으면 오늘 공연이나 관객이 그런가 보다 하는데 어떤 날은 저 때문인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관객들이 ‘너 왜 이렇게 못해’라고 질타하는 느낌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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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학살의 신’ 미셸 송일국(사진=강시열 작가)

그리곤 “그런 날은 끝나고 나면 너무 힘들다”는 송일국의 말에 이지하는 “한번씩 자의식이 들어오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스스로와 사투를 벌이게 된다”고 동의를 표했다.



◇2년만에 다시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진짜 웃겼어요. 너무 갑자기 살이 찐데다 머리는 길어서 하비에르 바르뎀인가 했어요. 딱 미셸이었죠.”

이렇게 전한 이지하는 2년 만에 다시 만났던 송일국에 대해 “메소드 연기인데 외형도 미셸이 돼서 나타났다”며 웃었다.

“일부러 찌웠다기 보다 굳이 다이어트를 안한 거죠. 파리 생활 중반쯤 지났을 때 ‘대학살의 신’ 출연 제의를 받았거든요. 그때부터는 어차피 살이 쪄야하는 작품이니 몸도, 머리도 방치했죠. 연출님이 너무 좋아하시면서 더 찌우라고도 하셨죠.”

이어 “저희 연습실 분위기가 늘 이렇다. (이)지하 선배는 웃느라 정신 못차리고 (최)정원 선배는 에너지가 넘친다”는 송일국에 이지하는 “공백기가 있었는데도 2년 전 연습실 그 분위기 그대로였다. 연출님이 어쩜 이렇게 바로 (2년 전) 그날과 붙을 수 있냐고 놀라워했을 정도”라고 말을 보탰다.


◇좋은 배우에 대한 고민과 딜레마, 소모되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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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학살의 신’ 베로니끄 역의 이지하(왼쪽)와 미셸 송일국(사진=강시열 작가)
“좋은 배우가 뭘까요? 좋은 배우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느닷없는 송일국의 질문에 “정답이 있나?”라고 반문하는 이지하.

“진짜 모르겠어요. 배우는 본인, 실제 송일국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역할에 충실해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사람인데…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려면 역할이 아닌 다른 데선 자신을 감춰야 하는데 저는 대중예술인이잖아요. 인터뷰나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미셸이 아닌 송일국으로 보여지는 게 관객들한테는 괜찮을까 싶어요. 제 안에 늘 그런 갈등이 있어요.”

삼둥이와 함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할 때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송일국은 “연극 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신기하게 제 모습과 등장인물이 딱 맞아 떨어져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어요. 미셸의 ‘유모차 모는 거 완전 내 스타일이지!’라는 대사는 애드리브가 아니라 야스미나 레자 희곡의 원본에 있는 거예요. 다들 삼둥이 때문에 들어간 줄 아시더라고요. 정말 드문 경우죠. 저는 ‘소모된다’고 표현하는데 소모되는 게 맞는지, 나를 지키는 게 맞는 건지 늘 딜레마고 숙제예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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