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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고양이 같은 남자, 김도훈 작가가 말하는 '낭만이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이 말하는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출간 후 4쇄 돌입
아날로그와 디지털세대를 겪은 X세대 특유의 솔직한 문장, 공감 이끌어
싱글, 고양이 키우는 남자, 패션, 정치, 물욕, 사람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필력 가득찬 에세이

입력 2019-05-08 07:00 | 신문게재 2019-05-0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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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작가2
전문지 기자에서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편집장으로 17년간 글을 써온 김도훈. 그의 첫 잭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가 출간됐다.히로시 나가이의 일러스트가 상큼하게 표현된 책 표지는 역시나 그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사진제공=작가 김도훈)

 

작가 김도훈은 솔직하다. 필력의 순위를 솔직함으로 나눈다면 아마도 전국 0.2%, 그것도 최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그의 첫 책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의 부제를 보자. ‘신경질적인 도시를 사랑하며 사는 법에 관하여’란 말로 자신의 성향을 밝힌다. 마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캐나다와 영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거쳐 서울에 정착해 생활하는 그가 밝히는 태생적 DNA가 이 책에 녹아있다. 거기엔 허영과 부끄러움, 패션, 영화, 사람, 물건, 각종 기억까지 지나치게 솔직한 감정이 가득 담겨있다. 책의 제목이 될 뻔한 ‘나는 포르셰를 사야 했다’는 실제 그가 쓴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간지나게’ 보이지만 문장을 읽을수록 애잔하고 게다가 유쾌하다. 아날로그의 끝물에서 찬란한 디지털시대로의 이관을 겪은 유일한 세대인 40대 초반의 작가가 써내려간 글들은 구절마다 낭만이 녹아있다.

“그동안 책을 내자는 제안을 2번 정도 받았어요. 17년 동안 글을 쓰면서도 ‘묶여 나올 가치가 있는 글일까’ 끊임없이 묻게 되더라고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제가 어떤 글을 쓰든 예전의 기억들을 현재의 상황과 겹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이 정도로 까발려도 되냐?’고 부모님이 걱정하시기도 하는데 저를 드러내지 않으면 글이 써지질 않아요. 내장까지 끄집어낸 문장들이야 말로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쓴 행위임을 느낄 때도 있죠. 서점에 가면 ‘잘 될꺼야’ ‘기운내’ ‘나도 그랬어’ 류의 에세이들이 많잖아요. 적어도 이 책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책은 아니에요. 철저히 나를 위로하기 위한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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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신경질적인 도시를 사랑하며 사는 법에 관하여 | 김도훈 저 | 1만 4000원. (사진제공=웨일스북스)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에는 외항선 선장이었던 아버지가 준 풍족함과 부재에서 온 아이러니, 스무살에 자신을 낳은 엄마가 보여준 친구 같은 감정과 극성이 교차한다. 지금 봐도 세련된 옷차림을 한 사진 속 부모님은 어린 김도훈에게 패션 DNA를 물려줬고 그 호기심은 해외 경험을 주저하지 않게 해줬다. 한국에 와서는 영화전문지와 패션지의 기자로 경력을 쌓으면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게 했다. 그는 “중간챕터(2부 품격과 허영 사이에서)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걱정이긴 하다. 마지막장(4부 옮음과 현실 사이에서)은 좀 정치적인 글들이 많다. 결과적으로는 전 세대가 좋아하는 책이 됐더라”며 첫 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가 ‘베이글을 샀다’란 글 속에서 보여주는 맛의 묘사는 흡사 첫사랑의 찬란함과 맞닿아있다. 빵의 두께와 크림 치즈가 똑같아야 하는 베이글의 기본 조건과 더불어 본고장인 뉴욕에서 먹은 원조의 맛없음을 겪으며 출근길 타국에서 뭣 모르고 먹었던 인생 첫 베이글을 추억하는 것이다. 아마존을 통해 산 쿠션이 남한(South Korea)이 아닌 북한(North Korea)으로 간 상황을 두고 풀어낸 통일에 대한 시각은 ‘평양의 니콜라스 케이지’란 제목으로 완성됐다. 해외구매사이트조차 안중에도 없는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republic of korea)’의 배송 착오 에피소드를 읽노라면 대한민국의 그 어떤 정당도 분단국가에 대한 정확한 현실을 김도훈 작가처럼 예리하게 보지 못함을 깨닫게 만든다. 커피에 대한 찬사를 추억의 애니메이션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주문에 빗댄 글은 또 어떤가. 이 책이 나온 뒤로 ‘카피카피룸룸’에서 파생된 커피집 간판을 본다면 그건 아마도 김도훈 작가의 책을 읽은 독자일 확률이 8할 이상이다.

이른 나이에 전문지 기자를 거쳐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편집장이 된 그는 자신이 겪는 스트레스 그리고 조직이 주는 무게감, 대한민국에서 싱글로 길냥이를 키우며 사는 일상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흡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처럼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모습은 영화 속 캐릭터라고 일갈하듯 실제로는 우울증 약을 먹고 갱년기 증상이 있으며 여전히 장난감에 환장하는 동심을 가진 중년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판 허핑턴포스트는 얼마 전 문을 닫았어요. 세계적으로 디지털 미디어가 주류인 것 같지만 여전히 잡지와 신문이 나오는 시대죠. 그렇다고 불평만 할 수는 없잖아요. 기존 매체에 대한 아카이빙(파일 보관)이 없는 한국은 배려가 없는 시대의 전형이지만 그 끝은 어디일까 한번 보고 싶어졌어요. 콘텐츠를 다른 버전으로 다루고 싶은 욕구도 샘솟고요. X세대로 태어나 전례가 없는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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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로하는 책보다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는 김도훈 작가. 시니컬하지만 위트있는 단문들을 모은 이 책은 출간 후 4쇄를 돌파하며 인기몰이중이다. (사진제공=작가 김도훈)

 

김도훈 작가는 지금도 필름 카메라를 애용한다. 데이터로 저장되는 방식이 아닌 굳이 인화과정을 거치는 수고를 해서라도 기록을 남긴다. 아날로그에 집착하는 성격은 LP를 수집하는 취미로 이어졌다. 키우는 화초와 어젯밤 만들어 둔 카레, 이제는 사라진 정글짐에 대한 단상은 그가 가진 물욕과 사람 그리고 사랑에 대한 예우를 가늠하게 만든다. 예리한 관찰력과 사라진 감정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을 통해 제대로 된 나름의 이별을 하는 법. 그가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하다.

“솔로(그가 키우는 턱시도 고양이)와의 추억을 다룬 고양이에 관한 책과 물건에 대한 에세이가 곧 나올 예정이에요. 단편소설을 써보자는 제안이 있긴 한데 아마도 그것조차 제 이야기일 게 뻔한지라 고민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은 글로 나오질 않거든요.(웃음) 물론 너무 행복할 때도 글이 안 써지는 것 같아요. 책으로 돈을 많이 벌면? 물론 포르셰를 살 생각입니다.”

애초 이 책의 제목은 정우성과의 짧은 인터뷰 중에 나온 말로 대체됐다. 배우의 동의를 얻어 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는 김도훈 작가가 현재 살고 있는 일상이기도 하다. 여전히 낭만을 꿈꾸는 그는 사실 포르셰를 사도 지하 주차장에 ‘쳐박아’ 놓을 사람이다. 이미 책에서도 밝혔지만 사실 운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입부에도 썼듯 김도훈은 솔직한 사람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고양이 같은.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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