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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마음이 살찌는 기분… 노란조끼 입으면 힘나"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김명희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노원지구협의회 회장

입력 2024-01-08 07:00 | 신문게재 2024-01-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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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회장. (대한적십자사 제공)
 

 

 김명희(66)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노원지구협의회 회장이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 내내 하나라도 더 설명해 주려고 바쁘게 움직였던 그의 입술은 한 일(一)자가 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노란조끼를 딱 입고 가면 자동으로 힘이 생겨요. 이 노란조끼의 힘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김명희 회장이 순간의 정적을 깼다. 그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희 후원 봉사자들을 보험설계사나 영업사원으로 매도하지 말라.”


대한적십자사 봉사회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재해·재난 등 구호활동부터 취약계층 지원활동, 지역사회 봉사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김 회장을 만나기 위해 기자가 서울시 노원구 대한적십자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봉사회 단원들은 지역 어르신들에게 전해줄 밑반찬을 손수 만들고 있었다. 모두 십시일반 모인 ‘기부금’이나 ‘후원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후원금 이야기를 꺼내는 봉사단원에게 모질게 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지역사회를 위해 묵묵히 봉사활동을 이어온 김 회장도 그런 말들은 가슴에 비수가 됐다. “왜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는지,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충격적인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적십자사 봉사단의 상징인 ‘노란조끼’를 보면 힘이 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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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봉사회원들이 최근 김장김치 담그기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우리나라에서 봉사단체의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닥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부금 횡령’ 뉴스는 신뢰를 더 떨어트린다. 이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기부금 순위는 세계 ‘꼴찌’에 가깝다. 2022년 기준 영국 자선지원재단이 발표한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은 119개국 중 88위에 그쳤다. 49위를 기록한 중국에도 한 참 못 미쳤다. 코로나19가 휩쓸었던 2021년에는 110위까지 떨어졌다.

기부참여율도 매년 떨어지고 있다. 13살 이상 국민의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21년 21.6%로, 같은 기간 기부 의향은 45.8%에서 37.2%로 각각 줄었다. 이 여파에 국내 기부 총액도 매년 줄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기부금 총액은 전년보다 5000억원 줄어든 15조1000억원에 그쳤다. 경제는 선진국을 자처하지만 온정을 나누는 마음은 아직도 후진국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부분은 김 회장도 아쉽다. 그는 “경기가 좋지 않아 어려운 점이 없을 수는 없는데 이런 부분을 잘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어려울 수록 더욱 나눠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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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김 회장이 후원금 모금을 위해 사재까지 털어야 했던 이유도 이 통계가 설명해 주는 듯했다. 그는 “회장을 맡고 보니까 환경이 너무 열악했고, 적십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면서 “그래서 이건 안 되겠구나, 그런 마음으로 뭔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생각은 쉽지만 막상 실천이 안 되는 게 기부나 봉사활동이다. 김 회장의 해법은 간단했다.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직접 해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 역시 오래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갖은 고생을 했지만 기부와 봉사활동은 빼먹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 취약계층에 갈비탕을 전해주는 봉사활동에 나섰다가 가슴이 벅차 올랐다는 경험담도 들려줬다. 한 어르신이 자신의 손을 꼭 쥐고선 “너무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자신도 말을 잊지 못해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분의 우울한 얼굴이 맑아지는 모습을 봤다”면서 “어르신들이 하루하루 건강을 되찾으신 것 같아 굉장히 뿌듯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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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이 서울시 2024년도 적십자 특별회비 전달식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5살짜리 손주가 있다는 김 회장은 “잠 한숨 안 자고 대리운전도 하고 먹고 살기 위해 엄청 열심히 일했다”며 “손주도 할머니가 주는 용돈을 모아 조금씩 기부를 한다”고 자랑했다. 이어 “봉사나 기부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아쉬워한 그는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 가서 돈이나 벌어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봉사를 하다 보면 지금은 힘들더라도 내가 가질 수 없는 그 뿌듯한 마음을 갖게 돼 진짜 부자가 된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사업이 잘 안돼서 임대아파트에 살게 됐어요.” 김 회장의 나눔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자신이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잊지 않고 다시 사회에 돌려준 것이다. ‘나눔의 선순환’이 시작된 셈이다. 대한적십자사 봉사회도 김 회장이 스스로 찾아왔다. “직접 찾아와 이력서를 냈어요. 내가 어려운 시절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뭔가 베풀어야 되겠단 생각이 컸죠. 주민자치 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작년부터 이곳 회장을 맡고 있어요.”

봉사에 대한 김 회장의 마음은 단단하고 튼튼했다. “저는 제가 직접 찾아와서 했기 때문에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적이 없어요. 집이 지금 의정부인데도 제가 새벽에 와서 지역 어르신들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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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봉사 활동을 진행한 대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 제공)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힌 김 회장은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소외 된 곳이 없는지 두루두루 봐야 한다”며 “어려운 세대를 발굴해 도와주고 있는데, 미흡한 부분이 많아 더욱더 신경 써서 세세하게 도와 함께 손잡고 가야 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간의 소회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도 ‘실천’을 강조했다. “나눔의 세상이 좀 이렇게 확 활성화돼야 하는데 요즘은 경제가 힘들잖아요. 근데 내가 봤을 때는 그냥 생각하기에 달려 있어요. 있는 사람들이 더 안 하듯 어려운 사람들이 후원을 더 잘해요. 그래서 이 마음들을 좀 바꿔서 정말 이 어려운 사람들을 좀 위에서 덮어주고 아래에서는 이렇게 쳐다봐 주고 감싸주면 좋겠습니다.”

김 회장은 끝으로 “저는 묵묵히 봉사만 하겠다고 들어왔는데 하다 보니 꽁꽁 마음을 묶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풀어서 적십자를 좀 더 집중적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제일 첫 번째 목적이 됐다”며 “어려운 세대가 지금 우리 눈에는 다 보이는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동네 통장들도 다 페이가 있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저희가 직접 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이런 곳에 다시금 눈길을 한번 더 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마쳤다.

천원기 기자 1000@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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