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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총성 없는 세계대전… '반도체 전쟁' 최후 승자는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크리스 밀러 '칩워(Chip War)'

입력 2023-07-15 07:00 | 신문게재 2023-07-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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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21세기 최고 전략물자다. 모든 반도체 영역이 독과점 체제지만 서로 얽혀 치열한 패권경쟁을 펼친다. 대만의 TSMC는 세계 연산력의 37%를 제공하고, 한국의 삼성과 SK는 메모리 칩의 44%를 생산한다.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머신은 네덜란드 ASML에 100% 의존한다. 미국은 몇 종류의 칩만 생산할 뿐이지만, 그 칩이 반도체 생산 설비에 필수다. 중국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자체 반도체 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자신의 목을 조르는 미국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쓴다. 과연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 페어차일드와 인텔이 주도한 반도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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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역사는 1955년 ‘쇼클리반도체’를 세운 윌리엄 쇼클리가 트랜지스터를 발명하면서 시작됐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엔지니어 잭 킬비가 실리콘 조각 위에 여러 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집적회로 ‘칩’을 발명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밥 노이스 등 쇼클리연구소에서 이탈한 8명 엔지니어들이 차린 ‘페어차일드반도체’였다. 이들은 같은 칩에 많은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냄으로써 칩의 가격을 10분의 1로 낮춰 반도체 시장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노이스와 무어는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Intel)을 세웠다. 그리고 2년 만에 ‘D램’이라는 칩을 처음 만들어냈다. 주기적인 충전이 가능한 D램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인텔의 개발 성과는 괄목할 만했다. 다목적 로직 칩 4004가 결정판이었다. ‘칩에 탑재된 프로그래밍 가능한 컴퓨터’, 즉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1971년에 발매된 이 제품은 컴퓨터 혁명을 촉발시켰다.

 


◇ 미국 리더십의 상실, 그리고 부활

1980년대에 미국은 일본과의 목숨을 건 경쟁을 벌여야 했다. 소니가 만든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휴대용 음악 재생기 ‘워크맨’은 큰 위기감을 안겼다. 급기야 미국 기술업계 거물들이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를 결성하고 ‘세마테크’라는 민·관 컨소시엄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혁신’을 통해 일본을 뛰어넘는 저력을 보여준다.

미국은 대만과 한국에 더 많이 외주를 주어 가격 경쟁력을 낮췄다. 덕분에 펜타곤의 반도체 투자 ‘도박’도 빛을 보게 된다. 미국 군사력이 1990년~2000년 대에 융성했던 것도 치밀한 D램 메모리 칩 덕분이었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비용절감과 제조 공정 단순화가 뒷받침됐다. 덕분에 1998년에 삼성전자는 일본을 제치고 D램의 최대 생산자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변화는 인텔을 긴장시켰다. D램 칩 판매라는 비즈니스 모델의 종말을 예감한 앤디 그로브는 25%의 직원과 설비를 버리고 PC를 위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기로 한다. 때 마침 컴퓨터가 대중화하면서 가격이 급락했고, 덕분에 거의 모든 PC가 인텔 칩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탑재하게 된다. 인텔이 PC용 칩 판매를 사실상 독점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앤디 그로브&빌 게이츠
인텔의 앤드 그로브(오른쪽)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간 제휴로 전 세계 PC 시장은 두 회사의 전유물이 되었다.

 

◇ 반도체 설계와 제조가 나눠지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CEO 도전이 좌절되어 낙담하던 54세의 모리스 창에게 대만 정부가 1985년에 백지수표를 건내며 반도체 공장 설립을 요청했다. 창은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고, 고객이 설계한 칩을 생산해 주는 반도체 회사를 목표로 잡았다. 저자는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나눈 것은 인쇄술의 발명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를 계기로 펩리스 칩 설계기업이 나올 수 있었다.

중국은 1965년에 집적회로를 만들어 냈지만 마오저뚱의 극단적인 철강 우선주의에 박혀 별 진전이 없다가 덩샤오핑 대에 와서 가능성을 보이게 된다. 화웨이의 런정페이 같은 기업가들이 1980년대 말 전자산업에 뛰어들었고 난징 출신 리처드 창이 2000년에 베이징 지도부를 설득해 SMIC를 창업했다. 중국 정부의 엄청난 보조금 혜택에 힘입어 SMIC는 세계와의 격차를 줄여갔다.

그 즈음 네덜란드의 리소그래피 회사 ASML가 태동한다. 현재 ASML은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 장비 제작자로 남아 있다. 2001년에는 미국 최대 리소그래피 회사인 SVG까지 합병해 독점력은 강화했다. 그 사이에 인텔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파괴적 혁신’의 앤디 그로브가 떠난 후 인텔은 애플의 아이폰용 칩 공급 계약을 거절했고, 제품 연구개발보다는 높은 판매 마진과 이윤에만 집중했다.

 


◇ 반도체 제조설비의 해외이전 러시

1980년대 말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펩리스 회사들은 제작을 대부분 TSMC에 의탁했다. 이런 펩리스 모델 덕분에 반도체 회사들은 수십 억 달러의 자체 제조시설 없이도 새로운 반도체 설계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반도체 설계와 제조의 분리는 더욱 가속화되었고, 반도체 제조는 점점 더 해외로 밀려나게 된다.

모리스 창은 이 즈음 ‘모바일’이 확연한 변화의 원동력이 될 것임을 눈치챘다. 경쟁사들이 반도체를 설계하는 반면 TSMC는 중립적 입장이었기에, 펩리스 회사들에 있어 TSMC는 가장 믿을 만한 파트너였다. 창은 내친 김에 ASML이 선점한 극자외선에도 도전한다. 하지만 ASML에 상당한 지분까지 있던 인텔은 경쟁에서 뒤쳐졌다. 저자는 “관료제가 인텔을 멍청한 회사로 만들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이제 2020년대 말 최첨단 프로세서를 제조할 수 있는 회사는 단 둘, TSMC와 삼성 뿐이다. 여기서 미국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같은 지역에 있고, 중국과 북한이라는 위험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 창
모리스 창은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분리함으로써 반도체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대만과 중국의 전쟁 가능성이 큰 리스크를 안겨주고 있다.

 

◇ 중국의 거친 도전, 그러나 그 한계

시진핑은 중국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데이터센터를 움직이게 하는 반도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스스로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작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다. 2015년 현재 85%에 달하는 반도체 수입비중을 2025년에는 30%까지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참여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반도체 산업에 ‘통합’되기 보다는 반도체 산업을 ‘다시 만들기’를 원했다. 저자는 “일찌감치 중국이 이 생태계에 참여해 더 큰 몫을 가져가려 했다면, 중국의 야망은 아주 수월하게 달성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뜻대로 풀리지 않자 중국은 미국 기업을 압박해 중국 협력사에 기술을 이전하도록 했다. 많은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반도체 기업에게 중국은 너무도 탐나는 시장이었기에 기술 이전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몇 몇 기업은 심지어 중국 지사의 통제권을 통째로 넘길 것을 제안받기도 했다. IBM, AMD, 암이 중국과 맺은 계약들은 사실상 기술 유출의 위험을 키운 행동들이었다.

 


◇ 미국, 늦었지만 ‘반도체’ 무기로 중국 숨통을 조이다

중국과 달리 미국 정부 고위직들은 2010년대 중반까지 기술적 우위에 취해 있었다. 화웨이가 TSMC의 두 번째로 큰 고객이 될 동안 내버려 두고 있었다. 심각성을 먼저 인지한 것은 국가 안보 기관들이었다. 이들은 화웨이와 ZTE의 중국 정부 연루 가능성을 계속 지적했고, 결국 이들 기업에 부품 수출 등을 제한하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한 상품 중 다수가 반도체였다.

반도체가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미국은 미국산 기술로 만든 모든 제품의 화웨이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중국은 당시에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다. 화웨이가 사라져 버리는 것보다는 2등 테크 업체로라도 살아남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에 훨씬 큰 지원을 하게 된다.

저자는 “여러 나라에 걸친 공급망을 지닌 분야에서 기술독립은 허황된 꿈”이라고 단언한다. 중국이 매년 100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어도 최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모두 국산화하려면 10년 이상 수조 달러의 자본투입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이 미국을 벗어난 공급망을 만드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정 영역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반도체 산업에서 갖는 중량감을 키워서 가능한 많은 병목 지점을 차지해 버리는 것 정도가 중국이 품을 수 있는 현실적인 야심”이라고 말한다.



◇ 미국 주도 반도체 생태계… 대만이라는 변수

지금 미국은 떨어지는 칩 제조 점유율을 반전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국이 뒤쳐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정부가 미국에 설비투자하라고 TSMC와 삼성을 설득했지만, 두 회사 모두 최첨단 기술은 자국에 두려 하기에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라는 ‘당근’으로도 그런 결정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가 대만에 의존하는 현 구도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제는 TSMC다. 대체 불가일수록 위험 역시 커지고 있다.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나 중국이 TSMC의 펩을 박살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이후 남게 될 설비들이 모두 미국 영향권에 있어 중국 역시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이다. TSMC 설비를 탈취한다고 해도 핵심 소재나 소프트웨어, 장비 모두 미국이나 일본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대만은 현재 전 세계 메모리 칩의 11%, 로직 칩의 37%를 제조하고 있다. 컴퓨터와 전화, 데이터 센터, 전자 장비 대부분은 로직 칩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대만이 재앙을 겪고 나면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조 달러’ 단위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전쟁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지난 50년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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