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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광화문 수난사

<시니어 칼럼>

입력 2023-11-30 13:24 | 신문게재 2023-12-0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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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일 명예기자
정운일 명예기자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 이후 270여 년간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광화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월대를 설치해 육조거리까지 이어졌는데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문화재청은 파손된 월대를 완전히 복원해 지난 10월 시민에게 공개했다.


월대는 경복궁, 근정전 등 정전 앞에도 있지만 궁궐 정문 앞 월대는 건물의 위엄과 왕의 권위를 한층 더 높이기 위해 난간석을 두른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정문에서 각종 의식을 행하는 기능 외에도 백성과 소통의 무대로 활용되던 광화문 월대와 현판이 1890년대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관광객은 월대-광화문-흥례문-근정전-침전(강녕전·교태전)-후원(건청궁)으로 곧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조선총독부가 월대를 철거할 때 흩어지고 깨져서 복원에 쓰인 돌 대부분이 새것이다. 난간석 중 일부와 월대 중앙의 어도(御道) 맨 앞을 장식한 서수상(瑞獸像) 한 쌍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생전에 수집해 간직했던 것을 유족이 기증해서 정문의 위상을 갖추게 되어 다행이다. 서수상은 왕이 정치를 잘할 때 나타난다는 상상의 동물로 백성을 위해 정치를 잘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광화문은 망한 왕조의 흔적으로 앞엔 폭 5~6m 좁은 인도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경성(京城)의 근대화란 명분으로 서울 도심에 현대식 도로 29개를 내고, 전찻길 내려고 경복궁 담장 허물고 월대 난간석을 제거해 땅에 묻고, 만국박람회를 위해 흥례문 헐고,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뜯어 일본 이토 히로부미 사당 정문 만들고, 세자 침소 자선당 뜯어 일본으로 가져가고,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종묘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어 통행을 막았다. 전각 500여 개 중 남아 있는 것은 36동뿐 이었다. 조선의 문명개화라고 하지만 조선 민족적 자긍심에 상처 주고 일본의 속국으로 삼겠다는 의도였으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해치상은 물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로 경복궁 정문 앞에 세워 화재를 방지했다. 또한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출퇴근하는 관리들이 ‘잘잘못을 분별하는’ 것 이라 믿고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백성을 위해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다. 조선물산공진회 개막에 전차와 관람객 동선에 방해가 된다고 해치상을 철거해 궁궐 담장 밑에 처박아두는 등 일본 만행은 극에 달했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목멱산(남산)에 있는 목멱대왕을 모신 국사당을 인왕산 선바위 아래로 옮기고 그 자리에 조선신궁을 세워 참배를 강요했다.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신궁의 정문이 잘 보이지 않고 방향이 맞지 않아 광화문을 헐어버린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광화문 복원을 지시할 때 조선총독부 청사에 맞추어 각도가 비틀어졌다. 당시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할 것으로 생각해서이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때 일제의 청산 작업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해 버리고 나니 근정전과 일직선이 되지 않아 다시 광화문을 복원한 것이다.

정운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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