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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상표 전쟁에서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나

입력 2024-01-07 14:33 | 신문게재 2024-01-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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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정 변리사
전소정 변리사

성경에서 어린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단숨에 쓰러지게 만들었다. 상표 전쟁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중소기업이 애지중지 키운 브랜드와 상표권은 대기업을 상대로 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그 효력을 확실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우기가 어렵다.


영유아 과자를 만드는 중소기업 A는 ‘아이밀’이라는 상표권을 5년 전에 정당하고 유효하게 취득했다.

그런데 ‘아기밀’로 유명한 일동후디스에서 2019년부터 ‘아기밀’을 ‘아이밀’로 브랜드를 변경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식약처에서 영유아식에 ‘아기’ 표시를 금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게 일동후디스 측의 설명이었다.

우선 이 사태에서 상표권의 침해자는 일동후디스이기 때문에 중소기업 A는 당연히 그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상표권 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상표권 침해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소송을 한다는 것은 곧 중소기업 입장에서 매우 부담스러운 비용과 시간, 에너지가 투여되어야 함을 말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법은 보호해 주지 않는다.

중소기업 A는 결국 소송을 제기했고 특허법원으로부터 상표 침해를 인정받아 최근 1심에서 5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어렵사리 얻어냈다.

그러나 일동후디스는 다시 항소심을 제기하였다. 결과적으로 3년이 넘는 소송전은 정당한 상표권자인 ‘아이밀’에게 훨씬 더 큰 ‘피해’를 낳게 되었다. 멀쩡한 상표권자임에도 ‘아이밀’은 졸지에 일동후디스의 모방 브랜드로 전락하여 매출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또한 3년이 넘는 소송전으로 인해 수익 구조가 악화되었고 현재는 대출을 일으켜 사업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자본 규모에서 비교 불가한 대기업과의 소송은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일동후디스는 2019년 ‘아기밀’을 ‘아이밀’로 브랜드를 변경할 때 정말 중소기업 A의 ‘아이밀’ 상표권의 존재를 몰랐을까? 보통 이 정도의 대기업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상표에 대한 모방상표를 모니터링하고 상표 출원 전에도 정밀하게 선행상표 여부를 조사한다. 몰랐다면 법무적인 관리의 부재나 소홀을 의심해야 하고, 알았다면 고의적인 침해로서 물질적인 손해배상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A의 ‘아이밀’이 모방브랜드로 의심 받아 훼손된 신용도 회복시켜 주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일이 ‘아이밀’ 사건 뿐일까. 현장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지식재산권 전쟁에서 중소기업은 아무리 유효한 상표권을 취득해도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본력으로 끝까지 간다는 대기업의 불도저식 소송 전략으로 인해 중소기업의 정당한 상표권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 말았다.

상표권이 대기업의 브랜드만 보호하는 역할만 해서는 되겠는가. 누구에게나 똑같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주체의 협력이 절실하다. 정부로서는 더 이상 중소기업 권리자가 선의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현재보다 더 두터운 소송 비용 지원사업과 구제책을 마련해 주고, 대기업도 중소기업과 상생의 길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주길 바란다. 새해엔 그런 모범 사례를 본 칼럼에서 소개할 수 있길 소망해 본다.

 

전소정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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