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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넘어 컴백… 나는 행복합니다"

가수→목사→가수로 '제3인생' 윤항기

입력 2014-12-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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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항기4
윤항기는 최근 후배 가수 태진아가 대표로 있는 진아기획과 5년 전속계약을 맺고 새로운 앨범을 준비 중이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음~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노래 ‘여러분’中)

1979년 발표된 ‘여러분’은 당시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다. 가수 윤항기가 작사·작곡을 맡고 그의 여동생 윤복희가 부른 이 명곡은 그 해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후 30년째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에는 가수 임재범, 에일리 등이 방송에서 불러 재조명되기도 했다.

“당시 제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스타에 버금갔죠. 제 라이브 무대를 볼 수 있는 장소가 극장과 음악감상실, 그리고 대학축제였는데 가는 곳마다 여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죠.”

최고 인기를 누리며 숱한 명곡을 남겼던 가수. 그러다 폐결핵을 앓은 후 돌연 목사로 변신했던 가수 윤항기(71)가 제3의 삶으로 다시 가수를 택했다. 그는 최근 후배 가수 태진아가 운영하는 진아기획과 5년 전속계약을 맺고 12월 중 발매를 목표로 새로운 앨범작업을 준비 중이다.

얼마 전에는 데뷔 55주년 기념 음반을 통해 ‘걱정을 말아요’라는 신곡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기도 했다. 칠순을 넘겼지만 그는 자신을 ‘신인가수’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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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넘어 새 출발, 정말 대단한 일 같습니다.

“제게 남아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3의 삶을 살기 위해 가수로 돌아왔죠. 마침 올해가 제 데뷔 55주년이라 긴 세월,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준 이들에게 다시 제 노래를 들려드리기 위해 기념음반을 발표하고 ‘걱정을 말아요’란 곡도 수록했죠.”

-‘걱정을 말아요’는 후크송처럼 중독성 있는 쉬운 멜로디와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보통 윤항기 스타일이라고 하면 ‘여러분’ 같은 곡을 기억하는데 ‘걱정을 말아요’는 고전가요처럼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를 사용했어요. 많은 이들의 구전을 통해 이어지는 노래가 되기 바라는 마음이에요. 가사 역시 시대적으로 국민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걱정을 말아요’라고 썼죠.”

-최근 방송을 통해 어린 시절 고생담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을 때였죠. 한국전쟁 뒤 폐허가 됐고 전국이 아픔과 굶주림에 시달렸거든요. 우리 남매도 그런 어려웠던 시기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더 고생했어요. 부모님만 살아계셨어도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텐데…의지할 곳이 없어서 참 힘들었죠.”

-그렇게 배고픈 시기에도 아버지(성악가 윤부길 선생)가 동생(가수 윤복희)만 무대에 세운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다고 하셨는데, 본래 노래에 소질이 있었나요.

“음악적 DNA가 어디 가겠습니까. 저도 어려서부터 노래와 연극을 좋아했는데 아버님이 동생만 무대에 세우고 나는 못하게 하니 당시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편애한다고 생각했죠. 장성해서 생각해보니 그때 봉건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아버지 당신이 선생님을 하다 연예계로 나간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딸은 몰라도 아들만큼은 그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았던거죠.”

-그렇지만 결국 가요계 진출하셨죠.

“동생이 미8군 무대에 섰고 저도 작곡가 김희갑 선생님이 마스터로 있던 밴드의 연구생으로 몸담게 됐어요. 1959년 12월, 처음을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데뷔했죠. 그리고 1964년 한국 최초의 록그룹 키보이스를 결성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올해가 한국에 그룹사운드가 생긴 지 딱 50년입니다. 처음에는 춥고 배고팠던 시간이지만 그런 고생이 디딤돌이 돼 후배들이 K팝스타가 돼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각광받고 있죠. 후배들에게 발판을 마련해준 이로서 뿌듯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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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합니다” 윤항기는 인터뷰 중 ‘행복하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종종 썼다. 


-당시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는데 폐결핵을 앓으신 뒤 돌연 목사로 변신하셨어요.

“팬 70%가 여성이었죠. 제 아내도 저를 보기 위해 친구와 함께 음악감상실에 왔다가 결혼까지 이르렀어요. 그런데 폐결핵이란 병을 앓으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서원기도 뒤 병을 회복하게 돼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공부를 하게 됐죠. 목회활동도 주로 음악사역을 해 제 55주년 음악인생이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아주 좋습니다. 가벼운 운동과 소식하는 습관을 들였죠. 고지방 섭취는 자제하고요. 날이 좋을 때는 키보이스 출신들이나 미8군 예우회 출신들과 함께 골프를 종종 칩니다.”

-인터뷰 중 종종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행복하죠. 보통 내 나이면 뒷방에서 손주나 볼텐데, 좋은 후배를 만나 가수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또 목사로서, 신학교 총장으로서 해야할 일도 문제없이 잘 마무리지었죠. 정말 큰 축복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조은별 기자

사진=윤여홍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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