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ife(라이프) > 쇼핑

물 건너오니 더 싸고 다양, 그런데… 물건이 안오네

'블랙프라이데이 열풍'이 남긴 해외직구 명과 암

입력 2014-12-11 13:54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1. 경기도 분당에서 네 살 난 딸을 키우는 서희진(33)씨는 블랙프라이데이가 끝난 직후인 지난 11월 말 그야말로 ‘득템’을 했다. 독일 브랜드 빌레로이 앤 보흐의 ‘프렌치 가든 유리잔’을 저렴하게 구입했기 때문이다. 원래 정가는 80달러. 하지만 약 70%를 할인해 28달러에 파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릇 모으기가 취미인 서씨는 남편이 “무슨 물컵이 8만원이냐”라고 툭 던진 말에 속이 상해 구입을 미뤄왔지만 그릇이 도착하면 자랑스럽게 식탁에 내놓을 생각이다.

#2. 이번 달 결혼을 앞둔 직장인 정승호(28)씨는 혼수로 주문한 TV 때문에 남모를 속앓이를 하는 중이다. 미리 찜해 둔 TV를 103달러라는 파격가에 구매한 기쁨도 잠시, 배송비가 80달러나 결제된 사실을 알게 됐다. 싸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카트에 담아 결제했더니, 생각보다 부담되는 카드 고지서가 날아 온 것도 속이 쓰리다.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물건을 사는 바람에 정작 눈 여겨 봐둔 청소기와 전자레인지지 같은 소형 가전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464263169
해외직구가 일반화되면서 소비자들은 그만큼 선택의 폭이 늘어나고 국내외 기업간 경쟁이 활성화되면서 제품 가격도 내려간다. 하지만 해외직구는 장점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다. 상품 분실. 배송 지연, 파손 등 기본적인 소비자 피해부터 과소비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게티이미지)

  

 

올 한해 유통가를 휩쓴 최대 화두는 해외직구였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세일기간을 앞둔 지난 11월에 젊은 직장인과 주부들 사이에서는 해외의 어느 사이트를 가면 무엇이 싸다는 정보가 최대의 이슈가 됐다. 실제로 관세청에 따르면 올 한 해 국내 해외직구 규모는 상반기에만 7500억원을 넘어섰으며, 연말까지 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해외직구가 매년 50% 성장세를 이어가 2018년께는 8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메이시스와 블루밍데일스, 로드앤드테일러, 삭스피프스애니뷰, 니만마커스몰 등 유명 백화점 홈페이지에 한국어로 된 쇼핑안내문이 등장했다. 아시아에서 2번째 구매고객인 한국고객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직구가 일반화되면서 소비자들은 그만큼 선택의 폭이 늘어나고 국내외 기업간 경쟁이 활성화되면서 제품 가격도 내려간다. 하지만 해외직구는 장점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다. 상품 분실, 배송 지연, 파손 등 기본적인 소비자 피해부터 과소비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본지가 해외직구 열풍의 명과 암을 짚어봤다.
 

 

2014121201010005887
미국의 유명 백화점인 메이시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한국 배송'에 대한 안내문이 한글로 적힌 팝업창이 뜬다. 아시아의 2번째 고객인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사진=메이시스 홈페이지 캡쳐)

 


◇해외직구의 명… 소비자의 제품 선택권 확대, 제품 가격 하락

미국처럼 내수시장의 규모가 크면 국내외 기업 간 경쟁이 확대돼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출시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도 자신의 기호에 최대한 가까운 제품을 선택하기가 용이하지만, 국내와 같이 내수시장의 규모가 작으면, 불필요한 기능이나 선호하는 스타일의 제품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스마트폰이나 대형 TV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 LG 등 국내 전자 기업들이 생산하는 스마트폰에는 DMB 기능이 필수적으로 포함돼 있다. 평소 잘 쓰지도 않는 TV 속 다양한 기능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은 미국 소비자들에 비해 같은 제품이라도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품 본연의 기능인 ‘통화’나 ‘TV 시청’에 충실하고 싶으면 해외직구를 통해 더 다양한 제품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다.

해외직구는 경쟁을 유발시켜 가격인하 효과를 일으킨다.

해외직구를 통해 소비자들이 접하는 시장이 해외로까지 확대되면 제품 공급자가 늘어나게 된다. 공급자들이 많아지면 경쟁은 그만큼 심화된다. 직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해당 산업의 유통 폐쇄성은 완화되고 공급자들의 진입장벽이 낮아져, 독점 기업들의 초과이윤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의 해외직구가 빠르게 확산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국내 소비시장의 낮은 개방도에서 찾았다. 우리나라의 수입의존도는 OECD 국가 중 11위로 높은 수준이나, 소비 개방도는 OECD 34개 국 중 29번째에 불과하고 수입의 대부분이 원자재에 치중돼 있어 소비자가 직접 구입하는 소비재 수입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강 연구원은 “가방, 의류, 신발, 이·미용품, 가전제품 등 시장이 덜 개방된 소비품목일수록 해외직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이라며 “해외직구가 우리나라 소비시장에 던지는 의미와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4121201020005740
지난 1일 블랙프라이데이 할인 기간동안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를 통해 다시 국내로 들어온 국산 텔레비전 등의 물품들이 인천공항 세관검사장에 쌓여있다.(연합)

 

 
◇해외직구의 암… 상품 부실과 파손, 범죄 악용 우려

직구족들이 늘어나면서 가장 크게 눈에 띄는 부작용은 상품 분실, 배송 지연, 파손 등 소비자 피해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반품·환불 규정이 있더라도 영어 등 외국어로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특히 대형 업체가 아닌 중소형 업체의 경우 사기 사건도 드물지 않아 보다 꼼꼼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해외직구에 따른 범죄 가능성도 제기한다.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열린 관세청 국정감사에서 “해외 직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단속 인력은 줄고 범죄 가능성은 커졌다”고 주장했다.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도 “탈세와 마약 밀수 등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해외 직구를 장려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부산지검 외사부는 개인정보를 도용해 국내에서 개별 소비자가 외국에서 직접 상품을 구매하는 ‘해외 직구’인 것처럼 속여 시가 180억원 어치의 ‘짝퉁’ 제품을 밀수입한 일당을 적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2년간 3만3000여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도용해 위조상표가 부착된 손가방, 신발, 안경 등 4만1000여개를 ‘묶음배송’하는 방식으로 중국에서 항공편으로 밀수입했다.

묶음배송은 외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국내 소비자가 직접 주문해 구매할 때 배송대행 업체가 현지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받아 같은 지역 상품을 한꺼번에 국내에 배송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들은 관세법상 15만원 이하의 ‘소액 자가사용 물품’을 수입할 때 관세를 감면받고 간이신고만으로 수입할 수 있는 특례를 악용했다.

정영학 관세청 외사부장은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해외 직구 열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 특송·유통업체, 관세사, 중국 유통업체 등이 공모해 중국에서 유통되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 국민의 개인정보를 입수해 ‘묶음배송’ 방식으로 위조상품을 밀수입한 것이 특징이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을 미끼로 피싱을 유도하거나 파밍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판매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불특정 다수에게 e메일을 돌려 접속을 유도한 뒤 사용자의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감염시켜 특정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조작해 금융정보를 빼내는 사기 수법도 빈번히 발생한다. 한국소비자원 문상희 행정조사관은 “해외 직구족의 10.5%는 현금으로 결제하는데 그 후 사업자와 연락이 두절되거나 제품이 배송되지 않는다는 민원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직구가 충동구매를 유발해 과소비를 유발한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가 해외직구로 옮겨가며 일부 소비자들의 과시성 소비로 해외직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지금의 해외직구 열풍은 소비자들이 과몰입되어 과소비에 빠지는 게임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며 “해외직구가 승리의 전리품을 전시하기 위한 하나의 쇼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해외직구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전미영 연구교수는 “해외직구는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이라며 “소비자들에게 제품 선택의 다양성을 제공하고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등 국내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직구 증가로 제품 공급 시장이 커지면 국내 유통업체들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내 유통업체들은 역직구 시장을 개척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직구라는 큰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정부가 나서서 해외직구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중구 연구원은 “해외직구가 단기간에 확대되면서 환불 및 교환, 상품 A/S의 제약, 정품 여부 등과 관련된 소비자 피해 등의 부작용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국제간의 거래에 있어 국내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 마련 등 소비자 편익을 보다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희승·김정아 기자 press512@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