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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혁신’으로 인생 2막 꿈꾸는 애국 펀드매니저

[열정으로사는사람들] 이경준 한앤파트너스자산운용 이사

입력 2017-07-31 07:00 | 신문게재 2017-07-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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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 한앤파트너스자산운용 이사가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혜진기자)

 

“나 자신에게 4가지 중죄가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고자 한다. △공모주 투자라는 비교적 쉬운 수익 실현 기법을 갖고 나태하게 살아간 죄. 진정한 승부인 유통주식에 다시 도전한다. △아침을 비롯한 시간과 인생을 낭비한 죄. 아침 운동을 하고, 집에 있을 때 TV를 켜지 않는다. △음식이 아깝다는 생각에 과식과 폭음을 한 죄. 일주일에 6일 운동한다.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은 죄.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 가진다.”

 

일에 미친 한 젊은이가 최근 스스로 쓴 반성문이다. 이경준 한앤파트너스자산운용 이사(35)는 평일 자산운용사에서 일하며 공모주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주말에는 주식 투자해 번 돈을 나라 사랑에 재투자한다. 집에 태극기가 2개 있을 정도다.


◇ 공모주 투자 1등

이 이사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명하다. 2년 전 그가 JP에셋자산운용에서 공모주펀드 매니저로 일했던 시절 수익률 1위로 평가됐다. 이 이사가 운용한 펀드 수익률은 연 50%가 넘었다. 수익률이 100%를 넘기자 고속 승진했다.

지금은 한앤파트너스자산운용에서 회사 고유계정으로 투자하고 있다.

“케이프투자증권이 된 LIG투자증권에 공채 1기로 입사해 증권가에 들어왔어요. 투자은행(IB) 관련 일을 했죠. IB에 업무에 제가 좋아하는 주식을 접목하니까 공모주 투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들은 부수적으로 공모주에 투자하지만 저는 공모주에만 정성을 들이기 때문에 수익을 잘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지난 2월 한앤파트너스자산운용으로 둥지를 옮겼다. 피씨엘부터 지난 28일 상장한 셀트리온헬스케어까지, 대부분 기업 수요예측에 참가해 이득을 봤다. 기업가치, 수급, 투자심리, 시황, 기업공개(IPO) 업황 등을 분석해 보고서를 쓴다. 본인만의 목표주가를 정해 그에 다다르면 주식을 팔아 수익을 낸다.

“매일 오전 5시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업계 관계자들한테 IPO 소식을 알려요. 그렇게 하려면 4시30분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하지만 시장에 가장 빨리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피곤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연애보다 일하는 게 좋아요. IPO랑 결혼했단 얘기를 들으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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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 한앤파트너스자산운용 이사가 중국 상하이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찾았다. (사진=이경준 이사 제공)


◇ 본적, 독도리 1번지

이 이사는 이렇게 번 돈을 나라 사랑에 쏟아 붓는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을 다녀오는가 하면 평화의 소녀상을 찾거나 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대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빠지지 않았다. 태안반도에 기름이 유출된 2007년 총학생회장으로서 총장과 교수, 학생들을 설득해 현장에 달려가 봉사했다.

같은 해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번지다.

초등학생이던 때 위안부 사진을 보고서 충격을 받았단다. 그래서 어른이 돼 일본에 맞서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았고 생각한 대로 했다.

“독도로 본적을 옮기고 나서 일본에 더 자주 가게 됐어요. 일본의 잘못을 그들에게 직접 알리기 위해서죠. 2014년 4월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독도 문제에 대한 1인 시위를 했어요. 메이지신궁 앞에서 외국인에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쓴 유인물을 나눠줬어요. 오사카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위안부 할머니들 실태를 전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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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 이사가 일본에서 외국인에게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알리고 있다. (사진=이경준 이사 제공)

 


◇ 혁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주식 투자든 나라 사랑이든 지금은 내로라하는 전문가가 됐지만 그의 삶이 순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20대까지 꿈을 못 찾아 여러 일을 했다. 텔레마케터, 자동차 정비공, 컴퓨터 수리 기사, 연예기획사 사원, 게임회사 인턴, 단역 배우 등을 거쳤다.

그러다 주식에 손을 댔다. 초반 수입이 짭짤해 ‘원금이 많으면 돈을 더 벌 수 있겠다’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돈 빌려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고 말았다. 그래서 증권사에 들어가 공부하며 일하며 빚을 갚기로 했다.

“빚 진 게 증권사 들어간 계기예요.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고 하죠. 저는 주식에 중독된 상태였어요. 열심히 공부하며 일을 배웠고 주식에 눈 뜨게 됐어요.”

그의 사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경우다. 이 이사는 앞으로도 살면서 숱한 고비를 맞겠지만 그때마다 주도적으로 헤쳐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이름을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경준이란 이름은 ‘일곱번째천간 경’, ‘준걸 준’이라는 글자예요. 하지만 이 이름은 작명소에서 지어준 이름이죠. 저는 제 인생을 제가 설계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름을 ‘가죽 혁’, ‘새 신’이라는 혁신으로 바꾸려고요. 내년 초 법원에 개명 신청할 계획이에요.”

유혜진 기자 langchemist@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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