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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칼럼] 복지국가의 귀결

입력 2018-09-0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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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현 정권은 참으로 많은 복지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겉으로는 성장 우선인 것처럼 소득주도 성장이나 포용적 성장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위한 복지 정책이다. 기초 연금 조기 인상, 노인 일자리 확대 지원, 사회 초년생 구직 활동 지원, 국민기초생활보장 확대, 아동양육비 지원 대상 확대 및 지원액 인상,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 확대, 최저임금 인상 및 재정 보전, 영세자영업자 지원 방안 모색 등이 그런 것들이다.

복지는 기본적으로 온정주의(paternalism)에 바탕을 두고 있다. pater는 아버지를 이르는 말인 바, 온정주의는 가부장인 아버지가 자식을 돌보고 간섭하듯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간섭하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자식을 양육하지만 paternalism에는 아버지가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며 가지는 명령권은 자식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전인 미성년 기간에 한하며, 자식이 성년이 된 이후에는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된다. 부모가 성년이 된 자식을 돌본다면, 그것은 자애와 사랑에 의한 것일 뿐, 자식을 부모의 의지에 종속시킬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과 양육에 대한 보답으로 평생 부모를 공경하고 부양할 의무를 진다. 이와 같은 부모와 자식 간의 자애, 사랑, 공경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법적 구속에 의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는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온정적 복지정책은, 부모가 미성년의 자식을 돌보듯, 스스로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국한되어야 한다. 그가 어떤 계층이나 집단에 속하든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복지 지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지가 많은 개인들의 삶을 책임지는 수준으로까지 확대되면 어떻게 될까?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표방하는 복지국가의 병폐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은 잘 알려져 있다. 복지 지출이 늘어나면 사람들이 일하려는 유인이 약해져 생산이 줄어들고, 생산이 줄어들면 소득이 줄어들고, 소득이 줄어들면 조세 수입이 줄어든다. 복지 지출은 늘고 조세 수입은 줄어드니 정부 재정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이 정부 의존적이 되어 독립심을 잃고 정신 건강도 나빠진다는 것 등이다.

확대된 복지가 가져오는 더욱 더 심각한 문제는 도덕과 법의 타락에 있다. 도덕 규칙은 평화로운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해 사람들이 지켜야 할 비공식적 제약으로서,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덕 규칙은, 이를 지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유쾌한 감정을 부여하고,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불쾌의 감정을 부여하는 정의감에 의해 지탱된다. 따라서 정의의 확립은 개인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을 타인이 침해하거나 약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에 뿌리를 둔 법이 정의의 범위를 넘어 대폭 확대된 복지정책으로 구체화되는 온정까지 규정하면 남의 재산을 약탈하는 행위를 합법화함은 물론, 이에 저항하는 행위를 범죄시하고 처벌함으로써 국가 사회는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민주정(民主政) 하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열망이 고조되면 수많은 이해 집단이 법을 이용하여 합법적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추세가 보편화된다. 다수가 소수를 착취하는 구조도 고착된다. 특히 시장경제가 개인 간, 계층 간 부(富)의 불평등 원인이라는 오인(誤認) 아래 이런 움직임이 거세진다. 실정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약탈당한 집단도 이를 다시 합법적으로 복구하려는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증폭되고 국가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법을 통한 합법적 약탈이 일상화되어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이제 복지가 온정을 넘어 수혜자들의 권리로 둔갑하면, 정의감은 실종되고 도덕과 법이 빠르게 타락한다. 법적 자선(慈善)은 공공의 번영보다 사람들의 도덕성을 해치는 치명적 결과를 낳고, 그것이 가난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적 재앙을 낳는다. 복지 수혜자들의 권리라는 것도 그들의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 아니라 황폐화시킨다.

그래서 국가 사회의 몰락은 사회 전체적인 정의감의 상실과 도덕 규칙의 훼손, 그리고 법질서의 문란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렇지 아니한가?

김영용(전남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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