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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공정거래법 개정안, 21세기 변화된 경제 환경에 적합한가?

입력 2018-12-3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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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학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지난 11월 27일, 정부는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하고 국회에 넘겼다. 공정거래법은 1980년 12월, 국보위에서 제정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38년 동안 근 30회 가까이 땜질식 일부 개정을 해왔지만 전부 개정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제에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로 정부는 현행 법제가 21세기의 변화된 경제 환경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참고로 정부가 전부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의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제정 당시에 비하여 최근의 경제 환경 및 시장상황은 크게 변화하였고 공정경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높아짐에 따라, 과징금 부과 상한을 높이고, 경성담합(硬性談合)에 대한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며,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도를 도입하는 등 민사, 행정, 형사적 규율수단을 종합적으로 개선하고,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을 합리적으로 보완ㆍ정비하여 대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와 같은 잘못된 행태를 시정하고 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피심인의 방어권을 확대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의 적법절차를 강화함으로써 사건처리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전반적인 법체계 및 구성을 재정비하여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현하고, 21세기 변화된 경제 환경에 부합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제의 전면적인 개선을 하려는 것임.”이다.

공정거래법의 전면 개편 필요성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1980년대에 틀을 잡은 현행 공정거래법은 시대적 적합성 문제 외에 규제의 합목적성, 수단의 적정성과 관련하여 문제되는 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은 경쟁 촉진에 주력하는 선진법제와 다르게 경제력 집중의 억제를 목표로 삼아 기업조직 구조와 경영활동을 사전 규제하는 등, 한국적 예외주의(Korea Exceptionalism) 규정이 많아 그간에도 논란이 많았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금년 3월에 ‘전면개편특위’를 구성하면서 ‘과거 고도성장기·산업화 시대의 규제틀로는 변화된 경제 여건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 현상을 효과적으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 구현을 위해 21세기의 경제 환경을 반영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은 늦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확정한 개정안은 기업집단 법제만 놓고 보면 공정거래법 선진화의 취지에 역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개정안은 현행 공정거래법 제3장(기업결합 제한 및 경제력집중 억제)을 제3장(기업결합 제한)과 제4장(경제력집중 억제)으로 분리하고, 경제력집중 규제를 오히려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개정안은 시대적·국제적 정합성을 무시하고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공약만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기업집단과 경제력집중에 대해 그동안 새로운 발견과 지식이 늘었지만 개정안은 80년대의 인식 및 규제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비유하자면, 기존의 ‘규제 밥상’과 ‘규제 메뉴’를 그대로 둔 채 ‘규제 젓가락’의 개수와 길이를 늘린 것이 이번 개정안의 특징이자 한계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최소한 다음의 4가지 원칙을 감안해 재고해야 한다. 첫째, 경제제도의 국제적 정합성(global compatibility) 원칙이다. 혁신 및 개방 경쟁시대에 우리가 뒤쳐지지 않으려면 공정거래법부터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한국적 예외주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제 법령은 국경의 울타리 안에서만 적용되지만 지금의 시장경쟁은 80년대와 달리 국경이 없다. 미국, 중국, EU 등 세계 총생산의 77%에 이르는 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경쟁하는 지금 상황에서, 한국 국적의 기업에만 적용되는 규제의 족쇄를 채우는 것은 국민경제를 자승자박(自繩自縛)하며 자해하는 행위에 다르지 않다. 국내외 기업들이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경쟁하는 시대에는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경제제도 또한 국제적 정합성 원칙에 맞게 고쳐야 한다.

둘째, 공정거래법은 다른 모든 법제가 그렇듯이 새로운 지식과 사실의 발견을 반영해 올바른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정부 발의 개정안은 기업집단을 경제력집중의 수단이자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수단쯤으로 보는 기존의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기업집단 법제에 관한 한,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 아주 강하다. 80년대에는 기업집단을 후진국에서 나타나는 기형적인 경제조직으로 보는 인식이 많았다. 그리고 계열 출자를 통해 소수의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지배권을 독점하는 기업집단은 구조상 대리인 문제와 경영참호 문제가 심각해서 경영성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기업집단은 미국, 영국 등 일부 앵글로 색슨 국가를 제외하고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업집단의 경영성과가 미국식 사업부제 복합대기업 모형보다 더 낫다는 연구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기업집단의 본질과 기능과 관련, 80년대의 인식과 지금의 평가는 판이하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전부 개정안은 80년대 인식과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집단에는 TPE(Tunnelling, Propping, Expropriation) 문제가 없지 않지만, 이 때문에 기업집단 자체를 원인 부정하는 듯 하는 지금의 규제 태도는 국민 경제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

셋째, 정책의 최적 조합(optimal mix of policies) 원칙 면에서 개정안이 적절한지 다시 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전까지는 공정거래법이 대기업을 규율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경쟁 압력은 낮았고 기업지배 관련 제도의 공백은 심각했다. 10% 이상의 지분 보유를 금지함으로써 경영권을 과도하게 보호했던 구 증권거래법 제200조는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1997년에 동 조항이 폐지되고,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 관련 제도는 형식면에서 선진국 이상으로 보강되었다. 주주의 권리와 경영 투명성 요건은 강화되었고, 외국인 투자자에 의한 적대적 M&A도 가능하게 바뀌었다.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1/2이 넘도록 규제하는 등 내부통제장치도 대폭 보강되었다.

더 나아가 회사법에 회사 기회의 유용 금지를 설치하는 한편, 상속증여세법에서는 계열거래를 일감몰아주기 증여로 의제하여 과세하는 등, 지금은 계열거래를 통한 TPE 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보강되었다. 정책의 최적 조합을 감안할 때 이제는 공정거래법을 소비자 이익 중심의 경쟁법으로 구조조정 해야 할 시점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이 시장지배력과 계열거래를 통해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 규율에 정책 역량을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발의 개정안은 거꾸로 갔다. 공정거래법 이외의 제도 변화를 감안해서 규제 메뉴를 조정하기는커녕 아직도 공정위 홀로 대기업 규제의 총대를 메고 있다는 가정 하에 기존의 규제 메뉴를 강화한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며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끝으로 경제력집중에 대한 사전 규제는 공정성과 효율성 원칙에도 반한다. 애플과 구글의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을 창출하고 독점하고자 하는 열망은 기업가 정신의 요체이자 경제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성장의 동기를 차단하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민 경제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의 성장 의욕을 막는 게 아니라 경제력의 부당한 남용을 막는 일이다. 대기업이 시장지배력 또는 우월적 지위를 부당하게 남용하여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와 거래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기업가적 발견과정을 통한 경제발전의 기회를 봉쇄하는 폐단을 야기한다.

경제력집중 규제는 경제학 이론 및 선진법제 실무와 불일치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헌법 제119조 2항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명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제1조(목적)에서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한다고 한 것과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정부 발의 개정안의 제4장, 경제력집중의 억제는 경제력 남용의 억제로 제목을 바꾸고 공정거래법 체계와 내용을 다시 개정할 필요가 있다. 혁신 성장의 동기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불공정 거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올바른 방법은 경제력집중을 사전 예방하는 규제가 아니라 경제력의 남용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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