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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 세상의 모든 연진이에게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넷플릭스 '더 글로리'보며 중2시절 당한 왕따 떠올라
극 중 고데기보다 더한 트라우마 동시에 가해자들 근황에 씁쓸

입력 2023-03-16 18:00 | 신문게재 2023-03-1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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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피해자의 복수를 생생하게 연기하며 인생 캐릭터를 다시금 펼쳐 보인 ‘더 글로리’의 송혜교.(사진제공=넷플릭스)

 

연진아, 안녕!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너는 수의를 입은 채 죄값을 치뤘잖아. 그곳에서도 일기예보를 하면서 말이야. 사실 얼마전 이사를 했어. 그리고 그 핑계 김에 졸업앨범들을 모두 정리했지. 그 걸 버리면서 발견한 모둠 공책이 있는데 감회가 새롭더라. 남녀공학이었지만 성별이 구분됐던 서울의 한 중학교였고 2학년 담임선생님은 그 공책을 책으로 인쇄해 나눠주셨지.


나는 편집위원은 아니었지만 그걸 계기로 글을 쓰는 기쁨을 알게됐고 고등학교에서는 교지편집부에 들어갔어.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원하던 대학교는 떨어졌고 대학졸업 후에야 모두의 반대를 무릅 쓰고 취업 대신 일반 대학원에 진학해 그 꿈을 이뤘지. 그 이력서 한 줄 때문인 걸까. 어쨌거나 원하던 직업은 아니었지만 여태까지 글 쓰는 직업을 하고 있어.

사진 속 너희들을 보면 한없이 순진한 표정의 어린 소녀들인데 그땐 왜 그렇게 무서웠던걸까. ‘더 글로리’ 파트 1이 공개되고 나서 며칠 잠을 설쳤어. 소재가 된 고데기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때 당했던 괴롭힘이 생각났거든. 지금 기억이 맞다면 나는 분명 실수를 했어. 솔직히 좀 재수 없었을꺼야. 진짜 돈 있는 집안이라면 안 그랬겠지만 나는 그 당시 승용차로 등교했잖아. 너희들 말대로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선도부 오빠가 있을 때마다 교문 앞에 내리는 또라이년”이었지. 아빠가 주말마다 친한 친구들을 불러 당시 무역센터로 불렸던 코엑스에서 온갖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에서 밥도 사주고 한국의 발전사를 보여주며 다닐 때 너희들은 단 한번도 함께 하지 않았어. 당시엔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반이었고 나는 그저 좋아하는 애들과만 어울리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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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은 지난 8일 진행된 ‘더 글로리’ 파트2 GV(guest visit) 현장에서 “가해자들을 지옥 끝까지 끌고 갈 돈이 저에게는 있다. 그러나 동은이는 그렇지 못하지 않냐. 이 세상의 동은이들은 거의 그렇지 못하다”라며 “저처럼 돈 있는 부모를 만나지 못했을 거고 그런 가정 환경이 없을 거다. 그런 분들을 응원해 보고 싶었다”고 전했다.(사진제공=넷플릭스)

 

너희들이 화장실로 불렀을 땐 솔직히 따귀를 맞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내가 가장 믿고 친했던 혜정이가 연진이 너에게 내가 “재네 패거리들 너무 무섭지않아?”라고 했던 말을 옮겨서였지. 연진이 너는 “우리를 패거리로 몬 이상 더 이상 이 학교를 못 다니게 하겠다”고 말했어. 그리고는 담임에게 달려갔지.

지금도 담임선생님이 최선을 다해 중재해주셨던 기억이 나. 부임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풋풋한 20대 선생님한테 10대 중반의 소녀 무리가 갑자기 우르르 몰려가 나를 지목하며 “잘난 척 하고 무시한다. 깡패로 몰고 있다. 억울하다”고 했잖아. 나중에 내가 맞았다는 걸 알렸지만 너희들은 인정하지 않았지. 때린 적이 없다며 “증거 있냐”고 소리쳤지. 다수가 소수를 이긴다는 걸 절감했고 유난히 빈부격차로 문제가 많았던 학군이었던지라 되도록 윗선까지 올라가지 않고 해결하려고 했던 선생님의 표정이 기억 나.

너희의 그 공포감과 위화감은 그 이후가 시작이었지. 교무실에서 그 난리를 치고는 반으로 돌아와선 나와 말을 섞는 아이들은 똑같이 만들어 줄 거라고 ‘엄포’를 놨잖아. 돌이켜보면 고된 1년이었어. 지나갈 때마다 침을 뱉고, 학교 뒷 마당을 청소하다 나만 물벼락을 맞기도 했지. 지금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전학생 주희만이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주희는 곧 다른 학교로 전학가기 전 잠시 들른 상태였기에 아마도 나랑 대화를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아. 주희는 지금도 가끔 만나는데 “너는 그래도 주눅들지 않았잖아. 나는 곧 다른 학교로 가니까 건들이지 않은 거고”라고 말하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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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더 글로리'.(사진제공=넷플릭스)

 

나중에 학부모가 돼 만난 봉순이는 “네가 왕따 당하는 건 알았지만 걔네들이 너무 무서워서 말을 걸 수 없었다”고 10년이 훌쩍 지나서도 기억하는 걸 보면 꽤 집요했던 건 사실이야.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너희의 그 갈굼이 나에게 없던 생존본능을 일깨워 준 건 솔직히 인정할게. 그 당시의 나는 눈치 없었고 금방 사라질지 몰랐던 부모의 재력을 자랑했으며 당연히 여겼어. 하지만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세상이 얼마나 서럽고 억울한 일 투성인지를 알았지.

그 전에는 유니콘이 가득한 무지개 색이었는데 드디어 재준이가 바라보는 세계를 목도하게 된거야. ‘더 글로리’에서 극 중 연진이를 연기한 임지연은 “ 상대에 대한 괴롭힘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 결과를 알아도 문제가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죄책감이 없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는데 나는 직접 당해봐서인지 그걸 몰랐을까 싶더라. 김은숙 작가는 그 나이또래의 과시를 간과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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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포함해 브라질,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베트남, 터키, 멕시코 등에서 1위를 기록한 이 작품은 특히 아시아와 유럽, 남미, 중동 등 3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각각 3위, 2위에 오르는 등 글로벌 인기를 증명했다.(사진제공=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보며 무엇보다 더 아팠던건 나 같은 아이들의 연대였어. 내가 몰랐던 신세계였지. 쉬는 시간에 너네 패거리들에게 교묘하게 괴롭힘을 당했던 애들이 미약하나마 위로를 건네거나 뭉치는 걸 느낄 때 나는 위로받았거든. ‘더 글로리’를 보며 당시의 기억이 더욱 생생해 지더라. 요즘 애들 말로 ‘일진’이라 표현하는 너희들은 학교가 끝나면 항상 운동부 합숙을 하거나 부모님 대신 너희를 키우는 할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봐주거나 아빠의 가게 일을 돕느라 바빴어.

가끔 가출을 하거나 바로 옆 남자 고등학생 오빠들과 사고를 쳐 정학을 맞기도 했지. 솔직히 고백할게. 그 때는 ‘왜 퇴학 안 시켜?’라는 생각도 매일하고 투서를 쓸까도 고민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동은(문동은)이처럼 치밀한 복수는 아니더라도 매일 저주를 퍼부었던 것 같아.

하늘이 도우셨는지 너희들 사이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며 균열됐어. 그리고 나를 가장 먼저 밟았던 혜정이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라를 밟았고 사라도 혼자 죽지 않고 결국 연진이 너의 등에 칼을 꽂았잖아. 네가 제일 좋아하는 오빠와 사귀면서 말이지. 그때 처음으로 면도칼을 껌처럼 씹어 뱉을 수 있다는 걸 목도한 것 같아. 고작 15년을 산 인생에서 그 정도로 인간이 사악해질 수 있나 지금도 의문이지만 ‘더 글로리’의 설정이 고작 한 두살 차이의 고등학생인 걸 보면 성악설이 타당하지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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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가해자 역할의 서사를 오나전히 제거함으로서 빌런을 자처한 임지연의 연기야 말로 ‘더 글로리’의 신의 한 수다.(사진제공=넷플릭스)

 

가끔 친정에 가면 동네에서 너희들을 봐. 혜정이는 몰래 연모했던 남자이자 친구의 남자였던 오빠의 아이를 임신했고 미혼모가 됐잖아. 우리 큰 언니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알게 된 사실이지.

내 첫 조카를 보러 간 신생아실 앞에서 혜정이는 핏덩이를 안고 나에게 “아직 혼인신고는 못했지만 행복해”라고 자랑했잖아. 미안해 못 알아봐서. 너는 한때 단짝이었지만 내 가해자들의 앞잡이였고 또래보다 이른 애 엄마로 내 앞에 서 있었어. 사실 남편이 뭐 중요하겠니. 그 아이는 내 조카와 같은 나이일테고 벌써 성인이 됐을 테니 부러울 따름이야. 그만큼 빨리 독립했을테니.

무엇보다 성형을 하고 미인대회에 나갔다던 연진이는 준재벌을 만났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 그런데 세상은 공평한지 시어머니 될 분이 뒷조사를 하는 바람에 주폭인 아버지의 존재와 고등학교 자퇴, 드라마에서나 보던 부모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혼한 뒤로는 한국을 떴다면서. 실제로 우리 나이에는 암이 흔하다지만 20대 초반에 암에 걸려 수술한 사라의 소식은 충격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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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더 글로리'.(사진제공=넷플릭스)

 

이 지면을 빌려 말할게. 너희들은 그저 불량소녀들이었어. 우리는 그때 너무 어렸고. 나는 ‘잘난 체 하고 눈치 없는 데다 재수없는 중2’였어. 비록 나에게 한 행동을 기억조차 못한다 해도 이후 너희들이 겪은 그 ‘단내나는 경험들’ 때문에 그 죄값이 후대엔 가지 않는다는 게 다행임을 엄마가 돼 보니 알겠더라.

부디 지금 생에서 그 죄값을 만끽하기를. 내가 동은이처럼 치밀하지 않은 걸 감사하길 바라. 무엇보다 ‘더 글로리’를 통해 이 세상 학폭의 씨앗이 될 만한 것들이 근절되기를 간절히 빌어. 국가 권력 최고봉이라는 검찰 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무산되게 한 게 자식의 학폭인 시대잖니. 돌고 도는 게 인생 아니겠니.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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