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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끊임없이 따라붙는 ‘비명자들2’, 고통이 고통에게

극단 고래 이해성 작, 연출의 '비명자들2' 11월 30일까지 나루아트센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10대 강력범죄, 티벳 학살 등 전세계 부유하는 아픈 사회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
박이표의 안무, 김성배·박석주 라이브 연주로 표현되는 고통, 박완규·남명렬·강애심·박완규·박윤정·김성일·김동완 등 출연

입력 2017-11-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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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명자들2’(사진제공=극단 고래)

 

흡사 좀비 퇴치 혹은 퇴마의식을 보는 듯했다. 고통에 잠식돼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 그 전염속도는 빠르고 병증은 지독해 세상 모두가 공포에 빠져들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블랙텐트에 머물던 ‘빨간시’ ‘불량청년’ 등의 이해성 작·연출의 ‘비명자들2’(11월 30일까지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살짝 비튼 명칭들로 불리긴 하지만 분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왕따 및 폭력 범죄, 세월호 참사, 빈부격차와 소통부재 등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며 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던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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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명자들2’(사진제공=극단 고래)
각 사건의 사망자 수까지 정확하게 언급하며 연관성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비명자들과 지켜야할 거리인 반경 4km는 십리에 해당하는 수치로 지금 이 땅에 발 디딘 고통임을 암시한다.

이해성 작·연출은 “사회에서 들었던 뉴스, 소식 등을 통해 공명한 사건들, 뼈저리게 아팠던 사연들이 이 작품의 발화점”이라고 표현했다.

극 중 고통이 전염되는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그들이 내는 비명의 날카로움이 더욱 기괴해지는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는 3편의 연작 시리즈로 파생됐다.

가장 먼저 기획·집필된 ‘비명자들2’를 중심으로 내년에 1편, 그 이후로 3편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이 연출은 “전세계에서 큰 폭력과 아픔을 양산하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근간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린 이데올리기가 있다”며 “공산주의의 끝이 티벳에서 가해지는 폭력이고 자본주의, 기독교적인 데서 오는 폭력성의 끝이 이라크 사막”이라고 밝혔다. 이에 2편에는 보현(박윤정)을 통해 티베트인들의 살육현장을 등장시켰고 1편에는 이라크 사태가 실제로 구현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고통을 퇴치하는 일을 맡게 된 재벌2세 요한(박완규)과 동료들 역시 비명자를 방불케 하는 혼란에 빠져 든다. 파사(破邪)라 일컫는 비명자들 퇴치의식은 ‘나쁜 사람이나 외도(外道)ㆍ사도(邪道)를 꺾어 굴복시키는 일’이라는 불교용어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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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명자들2’(사진제공=극단 고래)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내는 것이라 믿는 요한은 파사를 거듭하면서 ‘살인’과 ‘구원’이라는 도덕적 경계에서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외는 주기도문, 그렇게 극단에 선 듯한 종교들도 공존한다.

그렇게 ‘비명자들2’는 사회 안에서 개인이 마주해야하는 고통을 극단적으로 표출한다. 우리 주위 뿐 아니라 전세계를 부유하는 아픔들은 ‘이상증후군’ 등의 안무가이자 프로젝트 댄스그룹 안팍(ANN-PARK)의 리더 박이표에 의해 무용적 요소로 형상화되고 베이시스트 김성배, 기타리스트 박석주 등의 라이브 연주로 증폭된다.

이를 이해성 연출은 “고통을 미학적으로 돌려 승화시킨 표현”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빗댄 페리오 사건, 분명하게 떠오르는 사건이 있는데도 다른 명칭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객에게 날 것 그대로의 고통으로 다가가기보다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공감하며 사유와 성찰을 할 수 있도록 거리감을 만들기 위한 고민의 결과다. 라이브 밴드, 시각적 효과 등으로 무대 스케일은 커졌고 배우들은 안무연습에 매일 8시간씩, 꼬박 3개월을 매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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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명자들2’(사진제공=극단 고래)

 

직접적이거나 적나라한 고통에 대한 완충장치와 거리를 마련했음에도 극은 시종일관 진중하고 무거우며 음울하게 진행된다. 극이 비판하고자 하는 사회 현상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에두르기 보다 직설로 전달된다. 

 

고통 속에서 영위하는 삶과 죽음으로서 잦아드는 고통, 파사와 살인 등 대척점에 선 듯 갈등을 야기시키던 것들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경계를 넘나들더니 급기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게 한다. 비명자들의 고통은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비명자들을 바라보는 인간들도, 그들을 파사하는 이들도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토록 막으려 기를 썼는데도 한 자리에 모인 비명자들. 그 순간은 고통이 아닌 공명, 고통이 고통에게 보내는 위안이다. 누군가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또 누군가는 그래도 살아서 부딪혀야한다 울부짖는다. 이 또한 정답은 없어 보인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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