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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의 무비가즘]'착한 영화'라 불리는 '증인'의 진실… #배우#감독#그리고 열린마음

손익분기점 200만명 가뿐히 돌파...300만 고지 향해 '우뚝'
장애우들에 대한 열린 시각 저 너머의 '다른 편견'봐야 할 때

입력 2019-03-0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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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관계자들이 ‘흥행’을 우려했다. 제작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착한 영화네”였단다. 그 뒤로 바로 이어지지 못하는 평단의 반응이 ‘영화는 좋은데 흥행은......’을 말해주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제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대전 대상 수상작인 ‘증인’은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의 이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유력한 살인 용의자를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변호사와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결론은 개봉 17일만에 손익분기점인 200만명을 거뜬히 넘었고, 지금도 흥행 순항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증인’은 배우들에게도 꽤 의미있는 영화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배우들의 연기 경력이다. 극중 정우성과 김향기가 각각 25년 14년의 연기경험으로 표현해 내는 39년차 합은 27살의 나이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찰떡 호흡으로 이어진다.

우선 정우성에게 ‘증인’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작품이다. 과거 ‘비트’,‘똥개’,‘태양은 없다’ 등을 통해 시대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그는 최근작 ‘더 킹’,‘아수라’,‘강철비’를 통해 색다른 옷을 입었다. 이른바 ‘개념 배우’라는 타이틀이다. 사회적인 이슈를 소재로 기성 세대들의 욕망을 응집한 캐릭터가 그에게 안긴 결과물이었다. 평소 인터뷰를 통해 종종 “시나리오가 주는 의미”를 중요시했던 그이기에 ‘작품=정우성’이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덧씌여 졌을 수도 있다.

가장 확실한건 배우 본인이 그런 스테레오 타입의 시선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대중의 시선과 별개로 자신의 소신을 위해서 바위에 던지는 달걀이 되기로 기꺼이 자처한 사람같다. 일례로 난민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댓글 공격을 받고, 몇몇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라 또다시 언론의 소비성 뉴스로 치환될지언정 그는 여전히 ‘난민보호’를 외치고 세월호에 대한 미안함을 가진 ‘아재 역할’을 기꺼이 껴안는다.

그렇기에 ‘증인’속 캐릭터인 순호는 정우성에게 여러모로 대중의 기대와 걱정을 한 몸에 받게 했다. 아쉬울것 없는 톱스타 정우성이 또다시 ‘뻔한 연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팬심의 걱정과 ‘소셜테이너’로서의 입장을 반복할 것이냐는 우려의 시선. 하지만 ‘증인’의 초반 10분이 흐르자 그 걱정은 기우였음이 증명됐다. 오프닝부터 순호는 광화문 길을 건너며 핸드폰으로 늙은 아버지를 타박하며 등장한다. 버스에 몸을 싣고 퇴근한 그를 반기는 건 옥색 변기와 세면대가 놓인 낡은 아파트 화장실에서 아버지가 소변을 지린 팬티를 빨아야 하는 현실이다. 그의 올곧은 성품을 이용하기로 한 로펌 대표는 그에게 ‘때’를 묻히며 점차 그를 자신의 세계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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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의 카리스마를 스크린속의 진자함으로 녹여낸 이규형. 김향기의 변호사로 나온다.(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증인’이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배우들의 선한 노력’도 한 몫했다. 영화의 감정선은 정우성이 이어가지만 그걸 증폭 시키는 역할은 김향기가 맡았다. 지우가 순호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은 수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도 없었지만 이 한 감독이 각색에 참여하며 넣었다는 후문이다. 이 감독은 “좀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의도가 있었고, 그 대사를 통해 정우성이 가진 선한 눈빛과 자폐 스펙트럼을 훌륭히 연기한 김향기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랬다”고 말했다. 이미 전작 ‘우아한 거짓말’을 통해 한 차례 호흡을 맞춘 이 한 감독과 김향기는 감독과 배우로서 두터운 신뢰가 쌓인 사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영화를 보는 유년 시절을 보낸 이감독은 ‘감독이 되면 좀더 세상의 좋은 점을 알리는 영화를 찍고 싶다’는 소신을 지켜왔고, 김향기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어린 배우’였다.이제는 최연소 ‘5000만 배우’로 성장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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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하고 희생적인 가사 도우미로 영화속 반전의 키를 쥐고 있는 염혜란.(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정우성과 대립점에 서는 반대편 변호사 희중역할의 이규형의 존재감도 탁월하다. 자폐아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가장 최적화된 ‘배려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며 관객들을 교육 시키고 때론 웃기며 조련자 역할을 자처했다. 뮤지컬과 연극계를 주름잡던 그의 존재를 몰랐던 영화 관계자들이 즉흥 오디션을 펼쳤고, 스스로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한 이규형이 다시 재오디션에 도전했을 정도로 애착을 보인 인물이다. 순박한 가사 도우미이자 사회의 약자로 나오는 미란 역할의 염혜란은 ‘증인’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역할로 나온다. ‘해무’의 시장 아낙네 역할로 나왔던 짧은 분량을 눈여겨 본 이 감독은 ‘아이캔 스피크’에서 확신을 얻고 ‘증인’에 캐스팅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시사회전 영화속에 등장하는 청포도 사탕을 쥐어주며 취재진을 속였던 제작진의 ‘꼼수’가 제대로 먹히는 천역덕스런 연기로 특유의 연기혼을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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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주책맞지만 결정적 한방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아버지 역할로 나온 박근형.(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박근형과 장영남의 존재감은 ‘증인’이 부모가 챙겨봐야 할 교육영화임을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끊임없이 아들의 선자리를 권유하는 주책스런 모습에서 결국 순호를 옳은 길로 이끄는 손 편지를 쓰는 장면은 무뚝뚝하지만 마음만은 차고 넘치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다. 원작에는 없던 두 사람의 관계를 부각시킴으로서 아직 이 세상에는 선함이 존재함을 부각 시켰다. 지난 10년간 김향기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4번이나 모녀로 나온 장영남 역시 세상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딸을 위해 ‘든든한 내편’이 되어주는 좋은 예를 보여준다. 장애를 가진 부모의 희생보다는 세상에 나서는 용기를 붇돋아주는 캐릭터를 십분 살렸다.

무엇보다 ‘증인’은 적어도 한국에서 자폐아들이 겪는 다양한 편견에서 가장 선두에 서게 됐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숫자’혹은 ‘기억력’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우를 범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국내 작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장애우들이 ‘말아톤’의 초원이처럼 강철 다리를 갖지 않는다는 걸 현명한 관객들이라면 안다. ‘증인’은 상대방을 평가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봐주길 원하는 영화다. 이제는 착함의 저 너머에 있는 영화의 진실을 봐야 할 때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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