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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택배업계의 이율배반

입력 2020-09-22 14:10 | 신문게재 2020-09-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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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생활경제부장

택배 분류작업 거부를 선언했던 택배기사들이 거부 방침을 철회함에 따라, 추석 명절을 앞두고 우려됐던 택배대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택배연대노조와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과중한 업무 부담에 문제를 제기하며 택배 기사 중 4000여 명이 21일부터 분류작업을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정부는 택배업체들과 논의해 다음 달 16일까지 하루 평균 1만여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았고, 이를 대책위가 받아들인 것이다.

당장 추석을 코앞에 두고 택배대란을 피한 것은 천만 다행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약속한 추가인력 투입이 다음달 16일 끝나면 또다시 택배 물품 분류는 오롯이 택배기사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분류 작업은 택배 노동자들이 처한 장시간 노동의 핵심 원인이다. 하루 13~16시간 노동의 절반을 분류작업에 매달리면서도 그에 합당한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다는 호소다. 택배 기사들은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사실상 분류 작업에 대해서는 보상을 못 받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고 택배물량이 늘어나면서 택배기사들의 분류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2~7월 택배 물동량이 16억5314만개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다고 한다. 통계대로라면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도 20% 늘어났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도 20% 늘어난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업무량의 증가는 올해 들어서만 9명의 택배기사가 산업재해로 숨지는 비극을 낳았다.

그동안 택배업계는 기사들이 개별 사업자들로 노동자가 아닌 사실상 사용자라고 주장하며,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택배연대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불응하며 법정공방을 이어왔다.

택배업계의 주장대로 택배기사가 독립된 개별 사업자라면, 택배사들은 개별 사업자들을 하루에 몇 시간씩 무임금 노동에 동원해 온 셈이다. 택배업계의 논리대로라면 택배사들은 계약상의 우위를 이용해 택배기사들에게 매일 분류업무 추가라는 ‘갑질’을 해온 셈이다.

택배업계가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택배기사가 개인 사업자라고 주장했다가, 다른 한편에서는 택배기사들을 마치 고용인처럼 몇 시간씩 노동에 동원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불합리하기 짝이없다.

언제까지 사업자인지 노동자인지 애매한 택배기사들의 생명을 갈아넣어 연간 수십조원에 달하는 비대면·온라인 경제를 지탱할 것인가.

택배산업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택배업계는 택배기사의 지위를 분명히 하는 한편 그에 따른 합당한 보수와 업무범위를 정하고, 추가 인력을 충원하는 등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소비자들도 택배산업과 택배기사가 온라인 상거래를 가능케하는 핵심 요소임을 자각하고 이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자세를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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