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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 ②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정영주와 임진아·황한나·정가희 “전혀 다른 엄마와 딸들 그리고 관계들”

입력 2021-01-1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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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출연진. 왼쪽부터 막달레나 역의 황한나·임진아, 아멜리아 정가희, 베르나르다 알바 정영주(사진=이철준 기자)

 

“우리 배우들이 눈코입도 예쁘지만 사람 자체가 예뻐요.”

 

2018년 초연 이후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오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1월 22~3월 14일 정동극장)의 배우이자 제작자 정영주는 100대1의 오디션을 뚫고 캐스팅돼 다섯 딸들, 노모와 집사, 하녀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해 “예쁘다”고 마음을 전했다.

 

공연계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 10명을 한 무대에 올리며 파란을 일으켰던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프랑코의 군사독재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에스파냐의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의 유작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바탕으로 ‘씨유왓아이워너씨’ 등의 마이클 존 라키우사가 대본·가사·음악을 꾸린 작품이다.

 

둘째 남편 안토니오의 죽음으로 집안 내 최고 권좌에 오른 미망인 베르나르다 알바(정영주·이소정,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각자의 방식으로 폭압적인 그녀에 맞서거나 순응하는 다섯 딸 앙구스티아스(김려원·최유하), 막달레나(임진아·황하나), 아멜리아(김환희·정가희), 마르띠리오(전성민·김국희), 아델라(오소연·김히어라)의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알바의 노모 마리아 호세파(황석정·강애심),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충직한 집사 폰시아(이영미·한지연), 적절한 간섭과 관찰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하녀와 동네사람들(이진경), 어린 하녀(이상아) 등이 함께 한다. 

 

3년만에 돌아온 ‘베르나르다 알바’는 원캐스트로 진행했던 초연과 달리 하녀 역의 이진경, 어린 하녀 이상아를 제외한 배역들에 두명의 배우들이 캐스팅돼 전혀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같은 아멜리아의 대사지만 김환희 배우가 했을 때랑 정가희 배우가 했을 때 다르게 들려요. 매장면, 모든 캐릭터들마다 그런 순간들이 생겨나죠. 그 순간들이 굉장히 예리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게 해소되면 아주 다이내믹해지죠. 그래서 반드시 해소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만큼 자극도 받아요.”



◇오롯이 배우들이 채워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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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배우이자 제작자 정영주(사진=이철준 기자)
“첫째 앙구스티아스에게 ‘못생겼다’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제가 그 대사랑 맞지 않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 같아요. 제가 알고 보니 미모지상주의였네요.”

그리곤 껄껄 웃는 정영주는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색깔과 아우라 위주로 가다 보니 지금의 조화를 이뤘다”며 “심지어 우리 마리띠리오는 대사에 ‘등도 굽고 매부리코’라고 표현된다”고 예로 들었다.

“오죽하면 초연 때 (전)성민 배우는 어깨 굽은 연기를 하느라 병이 났었어요. 실제로 비뚤어져 버려서 공연이 끝난 후 정형외과를 5달 넘게 다녔으니까요. 직업병이죠. 재연에서는 외모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서적 결핍과 결여로 가보자 했어요.”

극장이 바뀌고 새로운 출연진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베르나르다 알바’는 설정과 표현에 다채로운 변화를 맞는다. 정영주는 “(초연됐던 공연장) 우란문화재단과는 달리 정동극장은 관객들의 눈높이가 배우보다 높은 무대”라며 “시야가 굉장히 넓어져서 뭐든 확장해서 써야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무대적으로 생략되고 줄여가는 많은 부분이 많아요. 줄인 만큼 배우들이 만들어가야 하고 에너지를 더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아졌죠. 채우고 책임져야 할 배우들의 숙제가 많아졌달까요.”

그리곤 “그 부분은 공기가 채울 때도, 소리나 액팅이 채울 때도 있다”며 “‘베르나르다 알바’는 비어있는 듯한 공기가 채우는 게 많은 공연”이라고 덧붙였다.

“저희 드라마가 굉장히 정적이에요. 여백이 난무하는, 연극 같은 뮤지컬이죠. 어쩌면 ‘뮤지컬 무대가 왜 이리 휑하지?’라거나 ‘왜 멈춰 있지?’ 의아해 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절대 멈춰 있지 않아요. 계속 뭔가 흐르고 있거든요. 그 흐르는 뭔가를 찾으면 기가 막히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둔 공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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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아멜리아 역의 정가희(왼쪽부터), 막달레나 임진아·황한나(사진=이철준 기자)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 정영주는 “그 흐르는 뭔가를 감각적으로 알고 있고 기다리는 데 단련된 배우들 18명이 함께 하고 있다”며 “정동극장 연습실에 오기 전에 진짜 작은 연습실에 있었는데 그 작은 공간이 우리 배우들을 어떻게 버텼나 싶을 정도”라고 부연했다. 막달레나 역의 임진아는 “저희는 하물며 반주도 없다”며 “막달레나의 노래는 심지어 지휘도 안해주시는 ‘리얼’ 공백”이라고 말을 보탰다.

“엄마(정영주) 말처럼 공백이 확 와닿아요. (김성수) 음악감독님이 그러셨어요. ‘광야에서 부른다고 생각하라’고. ‘나도 보는 신’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저만을 바라보는, 제가 오롯이 즐기면 되는 신이죠”

임진아의 말에 정영주는 “무대에서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이라며 “배우가 관객의 에너지를 무대로 끌고 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걸 못견디는 배우들도 있지만 그걸 또 기가 막히게 밀착시켜서 자기화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막달레나를 비롯해 우리 딸들이 다 그렇다”고 전했다.

“캐릭터마다 그런 부분들이 다 있지만 특히 막달레나들은 블랭크 상태에서 하니까 너무 좋아요. 그걸 찾으면 기가 막힌,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고 넘버들이죠.”


◇아프게 떠난 지인을 떠올리며…베르나르다 알바 정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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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포스터(사진제공=정동극장)
“베르나르다 알바는 ‘내 보호 안에서만 평안할 수 있다’ ‘자신의 손 안에 있어야 모든 것이 완벽해진다’는 위험한 생각을 지닌 여자예요. 얼마나 절대적인지…착각일망정 굉장한 믿음이 묻어나죠.”

정영주는 자신이 연기할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해 “본인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 본인이 얼마나 처절한지 모르는, 알아도 외면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 성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 매순간, 매번 자책을 하죠. 자신을 채찍질하면서도 아픈 줄을 몰라요. 쓸데없이 거룩한 삶을 사는 인물이죠. 그 안에서 행복한 순간이 한번이라도 있을까 싶어요.”

그리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는 이 평화와 고요를 즐길거야. 오늘도 무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 보호 안에서는 모두가 편안하게 숨 쉴 수 있지’라는 대사가 훌쩍 다가온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평화도 아니에요. 정막과 정적이죠. 굉장히 고통스러운 가운데 아주 잠깐, 그 순간만큼은 희열이라고 느낄 것 같아요. 초연에서는 그냥 장치적인 고요와 평온에 대한 온도를 느끼면서 좋아했는데 지금은 뭐가 하나 더 생겼어요. 뭐라 설명할 수는 없는 그 뭔가요.”

생활 중에도 느닷없이 플라멩코의 팔라마(Palma, 12박자가 기본인 손뼉리듬)를 치는가 하면 그간의 것과는 전혀 다른 엄격한 말투를 쓸 정도로 캐릭터에 빠져 있는 정영주는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해 “권위적인 캐릭터지만 그것이 알바의 중점적 정서 라인은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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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배우이자 제작자 정영주(사진=이철준 기자)

 

“안타깝게도 한국적 정서로 보면 알바는 박복한 사람이에요. 남편도 둘이나 먼저 보냈죠. 인물을 분석하면서 생겨난 서브텍스트 중에는 두 남편을 다 알바가 죽였을 것이라는 데서 시작한 이야기들도 있어요. 알바라는 사람은 자신이 굳건하게 지키지 않으면 이 집안과 환경이 무너진다고 믿는, 집안을 통제하고 이끄는 걸 ‘숙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학습돼 진 사람이고 기질적으로도, 혈관 안에도 그런 에너지가 흐르는 사람이죠.”

알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정영주는 “스스로는 모르지만 알바 자체로는 보는 사람에 따라 너무 불쌍한 사람”이라며 “자신이 해야하는 거니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단호한 믿음으로 설득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부연했다.

“10명 중 9명이 아니라고 하는데 단 한명과 친구가 되는 사람이죠. 그런 지인이 있었어요. 알바를 연기하다 보면 현재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 친구가 가끔 떠올라요. 초연 때는 미처 못떠올렸는데 지금은 자꾸 그 친구가 생각나요. 그 친구에게는 살아가는 데 가장 첨예한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이 안되면 삶의 끈을 놔버릴 정도로 절대적이고 단호했죠. 그 친구를 떠올리면서 알바가 세상에 없을 모양의 인간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단호한 확신 정영주, 고독한 엄마 이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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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역의 정영주. 사진은 초연 공연 장면(사진제공=우란문화재단)

“이소정 배우가 가진 색을 처음 접한 건 1999년 ‘드라큘라를 같이 하면서였어요. 점잖고 침착한, 쉽게 흥분하지 않고 화내지 않는 친구죠. 그런 자신과 달리 불 같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알바를 힘들어 하고 있지만 저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표현돼서 재밌어요.”

정영주의 말처럼 이소정은 1990년대 ‘미스 사이공’ 킴으로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 전미 지역 투어 무대에 올랐고 디즈니 뮤지컬 ‘알라딘’의 쟈스민 공주, 애니메이션 ‘뮬란’ 등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이소정의 베르나르다 알바 캐스팅 소식에 의아해 하거나 걱정부터 앞세우는 목소리도 있었다.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에 정영주는 “제작사 내에서도 한국 활동 데이터가 없어서 걱정들을 했지만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며 “안정적이면서도 흔하지 않은 보이스가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막달레나 역의 황한나는 “소정 선배님 엄마는 되게 외로워 보이고 고독이 많이 느껴지는 베르나르다 알바”라고 말을 보탰다.

“왜 그렇게까지 모든 걸 자신이 짊어지려고 하는지, 부러질 것 같은 알바죠. (정)영주 언니는 굉장한 확신을 가진 알바예요. 신념이 너무나 확고해서 많은 제스처나 별 것 없이도 위압감이 느껴지죠. 어떤 엄마냐에 따라 딸들도 달라져요.”

막달레나 역의 임진아 역시 “영주 언니가 알바로 등장하는 순간은 ‘한대 맞으면 날아가겠다’ ‘거역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동의를 표했다.

“소정 선배 엄마의 등장에서는 ‘저 여자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정도로 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기력한 임진아, 오롯한 황한나의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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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막달레나 역의 황한나(사진=이철준 기자)

 

“저의 막달레나는 엄마 알바를 긍휼하게 여기면서도 증오하는 것 같아요. 결혼하기 싫어하는 이유도 엄마 모습을 보면서 그랬던 것 같거든요.”

황한나는 엄마 알바에 대한 막달레나의 감정을 이렇게 전하며 “대본이나 극에는 없지만 원작을 보면 막달레나가 아버지 안토니오의 사랑을 가장 크게 받았다”며 “저의 막달레나는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상실감을 안은 채 초연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지켜보는 사람의 모습이랄까요. 안토니오의 열정을 닮은 아델라의 마음을 인정해주면서도 앙구스티아스, 아델라를 제외한 누구와도 컨택이나 접점이 별로 없는 인물이죠. 마르띠리오와도, 아멜리아와도, 엄마랑도 별로 접점이 없는, 굉장히 오롯한 캐릭터예요.”

황한나의 설명에 임진아는 “제가 생각하는 막달레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싶고 잠만 자고 싶은, 무기력한 상태”라며 “극 중 상황에 대해서도 ‘내가 나서봤자 바뀔 건 없다’고 포기한 상태”라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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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막달레나 역의 임진아(사진=이철준 기자)

 

“막달레나의 나이가 30대 중반이에요. (아버지의) 8년상을 치러야 하니 결혼은 포기하고 인생도 다 놔버린 거죠. 무기력하고 잠만 자고 싶고 엄마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엄마에게 복종은 하지만 막내인 아델라 만큼은 원하는대로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죠.”

그리곤 “아델라는 제(막달레나)가 업어 키웠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너무 예쁘고 어린, 한창 남자를 만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인데 집안에 갇혀 있는 게 너무 안타까우니 앙구스티아스에 대한 미움이 더 크게 표현되는 게 저의 막달레나 같다”고 덧붙였다.

“나이도 많고 못생긴 앙구스티아스는 결혼해서 이 끔찍한 집을 떠나게 되는데 왜 꽃 같은 우리 아델라는 이 집에서 시들어가야 하는지…초연 때보다 앙구스티아스에 대한 반감이 더 많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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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아멜리아 역의 정가희(사진=이철준 기자)

◇극과 극의 아멜리아 정가희 


“(김)환희의 아멜리아는 정말 맑고 순수하면서도 욕심도, 열정도, 욕망도 많아요. 그 친구가 가진 욕망이 표출되는 시점들이 정말 매력적이죠.”


초연에 이어 이번 시즌에서도 아멜리아를 연기하는 김환희에 대해 “매력적”이라고 표현한 정가희는 “제가 과연 환희처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환희랑 정반대인 것 같아요. 환희는 이목구비도 예쁘고 소녀스러움이 맑게 표현된다면 저는 밋밋한데다 병약한 느낌이죠. 게다가 제가 가진 정서 자체가 ‘어둡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중적인, 극과 극의 모습을 다 가진 아멜리아로 표현되면 좋겠다 싶어요. 아멜리아는 대사가 많은 캐릭터가 아니에요. 한발 뒤로 빠져서 항상 듣고 반응하는 아이죠. 이를 표현하려고 애쓰기보다 제가 가진 분위기 자체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에 “원래는 말도 많고 시덥잖은 농담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연습실에서는 좀 더 가만히 있어보려고 노력했다”며 “제가 뭘 하지 않아도 아멜리아가 가진 이중적인 모습이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아멜리아를 이해하고 체화하고 싶어요. 처음엔 아멜리아가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저는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질 않거든요. 아멜리아는 모든 걸 혼자 해요. 혼자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판단하고 큰 마음을 먹고 한마디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가 버려요. 그렇더라도 아멜리아는 개의치 않는 친구죠.”


◇엄마 알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딸들 그리고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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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정영주(사진=이철준 기자)

 

“알바는 굉장히 강한 에너지, 때로는 강압적인 명령들로 딸들을, 상황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답습하는 사람이에요. 딸 다섯 중 아델라는 그 답습이 싫어서 일찌감치 자유를 찾아서 떠났을 수도 있어요. 혹은 엄마가 알이든, 막이든, 갇힌 상자든 깨고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알바에게 침을 뱉고 삶을 정리했을 수도 있죠.”

딸들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 정영주는 “남은 딸 넷 중에는 엄마의 방식을 똑같이 답습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집안을 지켜가는 딸도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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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아멜리아 역의 정가희(앞), 막달레나 임진아·황한나(사진=이철준 기자)

“알바의 뒤를 잇는 딸도 분명 있을 거예요. 혹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이후의 이야기를 푼다면 순진하고 맑고 깨끗했던 아멜리아가 그 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너무 순수한 상태에서 습자지처럼 흡수해버린다면 엄마처럼 해야 집안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을 것 같거든요. 이처럼 초연 때는 분석되지 않았던, 아멜리아의 연기적인 부분 몇 가지가 생겼어요.” 

 

정영주의 말에 아멜리아 역의 정가희는 “모든 딸이 그렇겠지만 저의 아멜리아는 엄마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큰 것 같다”며 “두려워서, 엄마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말을 잘 듣거나 복종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부연했다.

“엄마가 원하는 것들을 절대로 엄마 힘으로 이룰 수 없음을 아는 친구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엄마를 측은하게 여기면서 ‘나라도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르게 있어주면 어떨까’라는 마음 같아요. 그렇게 엄마를 따르고 지켜보고 관찰하면서 언니들과 동생들에게도 맞춰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가희의 말에 정영주는 “비극적인 삶을 이미 시작했지만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아서 애를 쓰는 앙구스티아스가 있고 그 모든 것이 내 일이 아니라 접어둔 채 독보적으로 가는 막달레나가 있다”고 말을 보탰다.

“딸들이 보는 엄마 알바가 각각 다른 걸 보면 너무 재밌어요. 무서워는 하지만 어느 딸은 엄마를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기고 또 어떤 딸은 혐오하면서 닮아가고…무대에서 연기하고 드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무대가 휑하니 비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 순간 딸들의 리액션이 각각의 감정, 시각으로 나올 때의 매력이 엄청나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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